"존경하고픈 위원장님"과 여당의 '인사 파업'
[取중眞담] 국회 출입기자의 한 달, 국회에서 눈에 띈 세 가지 풍경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질의 도중 국민의힘 의원 의석을 향해 “여기 웃고 계시는 정신 나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라고 발언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사회부 사건팀에서 정치부 야당팀으로 옮긴 지 한 달, 큰 정치 흐름을 내다보긴 어렵지만 하루하루 일정들을 따라가며 마주한 풍경들이 있었다. 상대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는 극한 대립의 씁쓸한 장면들이다.
첫 번째는 22대 국회 첫 대정부 질문에서 나온 장면이다. 지난 2일 대정부 질문에 나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당을 향해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이라고 소리쳤다. '한미일 동맹'이라고 언급한 국민의힘 논평을 두고 한 말이었다. 여당 의원들은 사과를 요구했으나 김 의원은 굽히지 않았다. 여야 충돌로 이날 회의는 2시간 만에 파행됐다.
장애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 '정신 나간'이라는 표현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본회의 파행 책임을 둘러싼 여야 공방에 묻혔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도발'이 최고위원 선거를 의식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만이 회자될 뿐이었다.
여당 의원들의 '인사 파업'
▲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두 번째는 채상병 특검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지난 3일 필리버스터 1번 주자로 나선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그동안 국회에서 발언 전과 후에 관례적으로 해오던 국회의장에 대한 인사를 거부했다. 유 의원은 "인사 받으실 만큼 행동만 해주시면 인사하죠"라며 끝까지 인사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예의를 지키라"고 고성을 내질렀다.
전날 본회의에서도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우 의장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김승수 의원은 인사를 하자는 우원식 의장에게 "인사는 존경심이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 뒤 곧바로 발언을 시작했다.
서로를 존중하며 화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의 정치적 관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서로를 적대하는 분위기 속에 여야의 대화의 문은 꽁꽁 닫혀있다. 여야는 채상병 특검법 두 번째 재의결이 있었던 25일 본회의에서도 국회의장 인사 문제로 설전을 벌였다.
세 번째는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 풍경이었다. 지난 6월 21일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증인 선서를 거부하고 답변을 회피하자,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10분 퇴장' 지시를 반복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발은 점점 거세졌고 나흘 뒤인 25일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의 대응도 더 강경해졌다.
보통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의원들이 상대를 향해 발언을 시작할 때 '존경하는'이란 수식어를 붙이는데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작심한 듯 '존경하고픈'이라는 말로 바꿔 정 위원장의 의사진행 방식에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결국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존경하고픈 위원장님"이라고 입을 떼자, 정청래 위원장은 "발언 중지"를 명령하면서 여야는 다시 충돌했다.
토론과 선거 같은 이벤트에서 승리하고 상대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정치의 목표일 순 없다. 현실 정치가 승패를 가리는 싸움판일 수밖에 없더라도, 그 싸움이 지나간 자리에서 논쟁하고 타협하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서로에 대한 존중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룰을 지키고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데 필요한 덕목이다.
그럼에도 "존경하겠다"는 의원의 말
그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존경하고픈 위원장님" 대신 "존경하는 위원장님"을 언급해야 한다는 의원이 있었다.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이다.
"저는 국회가 대화가 살아 있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한 분, 한 분 앞에 계시는 우리 동료 의원분들을 존경하는 건, 사실은 그분들을 뽑아 준 우리 국민들을 존경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때로는 조금 미운 마음이 들더라도 이분 한 분과 대화하는 건 이분을 뽑아 주신 국민들과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또 존경하고, 또한 대화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의 말을 옮기는 이유는 앞선 세 가지 풍경의 막말과 조롱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또 다른 정치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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