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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공시 의무화에 소송 증가 우려 "기업, 법적 리스크 대응 준비 필요"

한국 ESG 공시 도입 시점엔 전문가 의견 엇갈려

등록|2024.07.24 09:12 수정|2024.07.24 09:13

▲ 지난 22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대한상공회의소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으로 ‘ESG 법률 포럼’을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ESG 관련 소송이 증가하며 국내 기업 역시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대한변호사협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소송이 증가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 역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시 중구 상의회관에서 'ESG 법률 포럼'을 열고 국내외 ESG 법제화 동향과 기업 대응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포럼은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개최됐습니다. 현장에는 17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박일종 대한상의 부회장은 "유엔환경계획(UNEP)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발생한 세계 기후소송이 2180건이었다"며 "5년 사이 2.5배 증가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이어 한국도 ESG 공시 도입을 앞둔 만큼, 국내 기업들의 관련 소송 건수도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박 부회장은 강조했습니다.

한국 ESG 공시 초안은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지난 4월 공개했습니다. 현재는 회계기준원이 관련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의견 수렴 기간은 오는 8월 말까지입니다. 금융위원회는 KSSB 공개초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ESG 공시기준과 시기를 확정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날 현장에서는 ESG 법적 리스크 대응을 위한 기업의 대응책 고심과 정부 지원 마련에 대한 제언이 나왔습니다.

ESG 공시 우려점은? "소송 빌미 가능, 신중 기해야"

먼저 조선희 법무법인 디엘지(DLG) 변호사는 주요국의 ESG 공시와 공급망 실사 의무화 동향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각국에서 ESG 관련 규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세분화되는 상황을 짚었습니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의 ▲ 핵심원자재법(CRMA) ▲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보호무역장벽이 여러 갈래로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최근에는 삼림벌채금지법(EUDR) 등 생물다양성 관련 규제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조 변호사는 덧붙였습니다.

이재찬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ESG 공시 의무화로 인해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공시 내용에 문제가 있을 경우 꼬투리를 잡는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는 주식을 구매한 한 투자자를 예시로 소개했습니다. 기업이 ESG 공시를 못 지켜서 주가가 하락할 경우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따라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작성에서 법률적 검토의 선행과 신중하고 충실한 이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이 변호사는 현재 국내 ESG 소송 관련 판례나 법리가 마련되지 않은 점을 꼬집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사법정책연구원에서도 ESG를 직접 다루는 연구는 계획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사법정책연구원은 사법 현안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대법원 산하 기관입니다.

ESG 관련 공급망 소송 증가, 밸류체인 전반 '주의' 필요

박준엽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다국적 기업의 실제 소송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프랑스는 시민단체에 원고 적격을 인정한 후 소송이 급증했고, 독일은 공급망실사법 시행으로 추후 많은 분쟁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최근에는 공급망 실사 분야에서 소송이 증가해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2010년대 이미 국가별로 공급망 실사와 관련해 법제화가 이뤄진 것과 관련됩니다. 2015년 영국 '현대판 노예법', 2017년 프랑스 '실사의무화법'이 대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박 변호사는 주목하는 소송 사례로 2021년 영국 유조선 중개회사 마란의 손해배상 소송 건을 소개했습니다. 폐유조선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건에서 해체 거래를 중개한 기업이 고소를 당한 사건입니다. 사망자 유가족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 측은 마란이 노동환경이 열악한 기업을 연결했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소송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박 변호사는 "이 사안은 공급망을 넘어 밸류체인(가치사슬)까지 공급망 실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 패널 토론은 분야별 전문가 7인이 참여해 ESG 법률 리스크와 대응 전략을 주제로 진행됐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권성식 한국표준협회 센터장, 양정배 한국SGS 부장, 이승길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황정환 삼정KPMG 상무, 이선경 그린에토스랩 대표. ⓒ 그리니엄


"ESG 공시, 한철 유행 아냐" 기업에 진지한 대응 당부

"ESG가 지나갈 유행, 흐름으로 생각하는 대표님들이 많더라. 소규모 사업장도 (ESG 공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한다."

패널 토론에 참석한 권성식 한국표준협회 센터장의 말입니다. 그는 최근 공급망 실사 점검을 다니면서 중소기업의 준비 부족에 대해 이같이 꼬집었습니다. 권 센터장은 "제품 단위의 에코디자인, 탄소배출량 추적 등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도 최소한 탄소배출 관련 사항은 기록과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협력사 공급망 사슬에서 배제될 수 있단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이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ESG 평가 결과를 입찰 조건으로 한 표준계약서를 새로 마련 중이란 소식이 지난 6월 전해진 바 있습니다. ESG 평가 점수가 70점을 넘지 않으면 재계약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는 EU의 '기업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 도입에 대한 대응으로 알려졌습니다.

양정배 한국에스지에스(한국SGS) 부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실사 대응 이니셔티브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 전기·전자 부문의 '책임 노동 연합(RBA)' ▲ 자동차 부문의 '드라이브 서스테이너빌리티' ▲ 화학 부문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협력(TfS)' 등이 대표적입니다. 각 업계가 자체적인 이니셔티브를 만들어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단 점이 특징입니다.

최근에는 핵심광물 공급망 대응을 위해 각 분야의 기업이 '책임광물이니셔티브(RMI)'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7월 기준 RMI에 참여 중인 기업 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500여 곳에 이릅니다. 양 부장은 많은 한국 기업도 이러한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권역과 규모에 따라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진다고 그는 꼬집었습니다. 중국·베트남·인도 등 아시아 지역 내 위치한 현장에서는 노동 인권 관련 부적합 사례가 많이 발견됐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이에 양 부장은 국내 기업의 해외 공급망 관리에 있어 현지 모니터링과 실사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따라가기'식 ESG 대응 대신 거버넌스 구축 필요

한편, 전문가들은 ESG 대응에 있어 정부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구축의 시급성을 촉구했습니다. 이선경 그린에토스랩 대표는 국가별 ESG 정책이 각국의 상황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EU는 유럽의회가 중심으로 ESG 공시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금융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공시를 추진 중입니다. 이 때문에 적용 범위와 항목이 다릅니다.

한국도 고유의 철학과 가치 그리고 산업 현황에 입각해서 ESG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 대표는 "SEC의 항목도 가져오고 EU 항목도 가져오는 등 따라가기는 현명한 방식이 아니다"라고 성토했습니다. 예컨대 EU의 경우 유럽의회가 민간 전문가들을 초청해 ESG 공시 준비를 체계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지적입니다. 이에 ▲ 임기제 전문가 추천 ▲ 서면 중심 의견 제시 ▲ 투명한 운영 등 유럽식 거버넌스 구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승길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ESG 중에서도 사회(S) 부문의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어렵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주무부처가 흩어져 있어 논의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 교수는 고용노동부가 중심이 되면서도 정부부처 간 단기적·중장기적 과제를 담당하는 체계가 정립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 주요국은 앞다퉈 ESG 등 지속가능성 공시를 수립해 발효를 예고한 상황이다. ⓒ 한국회계기준원


한국 ESG 공시 의무, '빠른 도입 vs. 자율공시' 의견 갈려

ESG 공시 도입 연기에 대해서는 전문가 간 입장이 엇갈렸습니다. 한국 금융당국은 국내 ESG 공시 도입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한 상황입니다. 구체적인 도입 시기 확정을 두고 관계부처 협의와 의견 수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황정환 삼정KPMG 상무는 빠른 도입을 주문했습니다. 해외 도입 현황을 볼 때 국가 경쟁력의 차원에서 한국도 이를 따라가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특히, 예측가능성의 측면에서 도입 시기를 빠르게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황 상무는 "문제는 언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며 "2029년이든 2028년이든 예측가능성을 제시해야 기업들이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장 도입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국가에서 ESG 의무공시를 먼저 시행하되 난이도를 고려해서 단계적 도입이나 일부 책임 면제를 적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ESG 공시를 이해하고 연습할 시간과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반론도 나왔습니다. 이 대표는 "(ESG 공시를) 미룬다는 지적이 어떻게 보면 맞고 어떻게 보면 틀렸다"고 일갈했습니다. 그는 이미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ESG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종의 자율공시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주장입니다. ESG 의무공시 도입 시 기업에게는 소송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앞서 한국경제인협회 또한 한국회계기준원에 법적 의무공시보다 자율공시로 추진할 것을 건의한 바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후테크·순환경제 전문매체 그리니엄(https://greenium.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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