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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리려 헬멧 썼더니, 더 대박 난 가수

[명반, 다시 읽기] 다프트 펑크 2집 < Discovery >

등록|2024.07.28 18:44 수정|2024.07.28 18:44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음악은 발견의 연속이자 순환이다. 멋진 음률에 관한 탐구 혹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발견, 과거의 산물이 돼 잊혀 가던 요소들의 발견, 그것들을 현시대로 옮겨 재조립하는 방법에 관한 발견, 그렇게 탄생한 새롭고 흥미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대중과 매체.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의 흐름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1993년 3인조 록 밴드 달링(Darlin')으로 음악계에 출사표를 던졌던 프랑스 출신의 토마 방갈테르(Thomas Bangalter)와 기마누엘 드 오멩크리스토(Guy-Manuel de Homem-Christo)는 당시 평단으로부터 '멍청한 펑크 쓰레기(Daft Punky Thrash)'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달링은 사라졌으나 이후 클럽 문화에 관심을 가진 두 사람은 1994년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로 새롭게 돌아온다.

다프트 펑크의 1997년 데뷔작 < Homework >는 1990년대 테크노 흐름에서 10년 정도 내려간 1980년대 하우스의 재발견으로 주목을 받았다. 단순히 정형화된 유행의 틀에서 벗어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에 존재하던 곡들의 일부를 뜯어 재조립해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는 샘플링 기법을 주력으로 신선한 매력을 발산한 것이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특히 선공개 싱글 'Da Funk'는 둔탁한 비트와 날 선 신시사이저의 반복과 변주로 지루한 틈 없이 즐겁게 춤추기 좋은 전자음악의 본질을 꿰뚫었다. 'Around the Worid'는 7분 내내 단순한 패턴과 음성의 반복으로 이루어졌으나 과하지 않고 중독성이 강해 큰 호평을 받았으며 여기에 미셸 공드리가 감독한 독창적인 미감의 뮤직비디오까지 더해졌다.

전자음악 시대의 아이콘
 

▲ 다프트 펑크 ⓒ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코리아


과거에는 쓰레기라며 손가락질했던 언론이 프랑스 일렉트로닉 뮤직의 신성으로서 토마와 기마누엘을 재주목하자, 갑자기 쏟아진 매체의 관심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그들은 로봇의 하드웨어를 장착했다. '1999년 9월 9일 9시 9분에 샘플러가 터진 이후로 로봇이 됐다'라는 나름의 설정과 함께 유니크한 디자인의 가진 헬멧과 복장을 착용한 것이다.

이는 그저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알 수 없는 미래가 기다리는 새천년의 도래와 함께 전자음악이 떠오르는 새로운 시대에서 그들을 더욱 아이코닉한 존재로 만들었다.

2001년 3월 13일, 모든 전자음악 팬이 기다렸던 2집 < Discovery >가 발매됐다. 제목부터 발견이다. 다프트 펑크는 지난 1980년대 하우스의 발굴 현장에서 더 깊숙하게 파고 내려가 1970년대 디스코에 도달했다. 수많은 원석을 채굴해 섬세하게 제련한 그들은 마침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음악을 창조하는 연금술에 성공했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깔끔한 비트와 반복적인 구성에 다채롭고 화려한 디스코를 섞으니 새로운 댄스 플로어가 펼쳐졌다.

첫 번째 트랙이자 다프트 펑크의 히트곡 'One More Time'은 혁신의 시작을 맞이하는 환희의 축제처럼 다가온다. 중독성 강한 비트와 멜로디의 반복은 가사에서 말하듯 춤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그야말로 < 토요일 밤의 열기 >의 디스코 파티와 레이브 파티가 충돌한 지점에서 서로의 조화로운 만남을 기뻐하는 자유의 현장이다. 강하게 내리치던 비트가 잠깐 멎고 보코더의 잔향과 오토튠 보컬만이 울려 퍼지는 중반부는 아련한 감정을 끌어 올리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다음 트랙 'Aerodynamic'을 듣는 순간, 'One More Time'에서의 기쁨은 충분한 근거에 의한 자신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잠깐의 고요한 종소리 후 휘몰아치는 펑크(Funk) 사운드와 거칠고 현란한 기타 솔로, 그리고 몽환적인 마무리까지. 자칫 모든 것이 이질적일지도 모를 요소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완벽한 곡을 이룬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모든 곡이 과거와 현재를 경계없이 오가며 미래로 나아가며 놀라움을 선사한다. 'Face to Face'처럼 부드러운 질감의 팝이 있는가 하면, 묵직하고 빠른 비트와 속도감 있는 신시사이저가 특징인 'Superheroes'는 광기 어린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앰비언트풍의 'Nightvison'은 공허한 밤의 어느 바를 연상케 하는가 하면 'Short Circuit'에서는 펑크로부터 더 나아간 브레이크비트를 들을 수 있다.

수록곡 중 가장 유명한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는 그 인지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펑크 뮤지션 에드윈 버드송(Edwin Birdsong)의 'Cola Bottle Baby'를 샘플링한 해당 곡은 짧은 문장들을 반복적으로 나열하는 동안 점점 화려해지는 구성을 취한다.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듯하면서도 디스코 펑크 리듬이 어우러진다. 여기에 변칙적인 후반부 하이라이트까지 잡아낸다. 어쩌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좋게 만들고, 더 빠르게 행하고, 우리는 더 강해진다'는 단순한 가사는 음악을 대하는 본인들의 열정적인 탐구 자세를 표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AI에는 없고 다프트 펑크에는 있는 것
 

▲ 다프트 펑크 'Infinity Repeating (2013 Demo)' 뮤직비디오 갈무리 ⓒ Daft Puck


기계의 몸과 인간의 심장을 동시에 가진 다프트 펑크는 차가운 전자음악에 온화한 감성이 깃들도록 했다. 이는 < Discovery >의 핵심이자 다프트 펑크 고유의 아이덴티티다. 대표적으로 조지 듀크(George Duke)의 'I Love You More'를 샘플링한 'Digital Love'는 달콤한 꿈을 꾸는 듯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가사와 화려한 신시사이저 멜로디로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Something About Us'는 사랑을 갈망하면서 대상을 그리워하는 애틋함이 느껴지는 다운 템포 곡이다.

규칙적으로 조율된 전자 음악에 불어넣은 인간의 숨결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왔다. 여기에 일본의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가 제작한 전 트랙 뮤직비디오 겸 장편 애니메이션 < 인터스텔라 5555 >가 화룡점정을 장식했다. 대표작 < 은하철도 999 >를 통해 기계인간이라는 주제로 우주에 관한 상상력을 펼쳐 보였던 만큼, < Discovery >와 가장 잘 어울리는 콜라보레이션이었다.

< Discovery >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앨범 차트 2위, 빌보드 200에서 23위에 오르고 각종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샘플링이 보편화되고 장르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자, 해당 앨범의 진가는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를 샘플링한 곡 'Stronger'로 인기를 끌었고, 드레이크(Drake)와 21 새비지(21 Savage)는 'Circo Loco'에서 'One More Time'을 샘플링했다. 과거의 음악을 발견해 만든 음악이 이제 발견의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2013년, 다프트 펑크는 4집 < Random Access Memories >를 통해 2010년대 레트로 유행의 서막을 알렸고 그래미상 3관왕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더 지나 2021년 2월 22일, 그들은 공식적으로 해체를 알렸다. 마치 로봇으로서 본인들의 할 일은 모두 마쳤다는 듯, 헬멧을 벗고 인간 토마와 기마누엘로 돌아간 것이다.

2020년대는 AI가 음악을 만드는 세상이다. 감성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창조적인 일들마저 쉽게 수행한다. 그러나 AI에게서 탄생한 작업물들은 여전히 공허하게 느껴진다. 미래를 향해 전진하면서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모순된 감정을 알아주는 것은 결국 인간뿐일 것이고, < Discovery >에는 그러한 마음을 인지한 따스함이 있다. AI가 해당 앨범의 기술적인 부분 자체는 모방할 수 있을지언정 그 속에 담긴 세밀한 정서까지 포착할 수는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들에게는 심장이 없고, 다프트 펑크의 음악에는 심장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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