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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효리의 편지... 지금 이런 상태입니다

[박정훈이 박정훈에게] 다시 국회 본회의 올라간 노란봉투법, 조목조목 뜯어봤더니

등록|2024.07.25 09:08 수정|2024.07.25 09:08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기자말]

▲ 2014년 아름다운 재단이 공개한 이효리의 손편지. ⓒ 아름다운 재단


국회에서 이효리씨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 때문입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을 기억하시나요? 회사와 경찰은 일자리를 잃고 절망 속에서 투쟁을 벌였던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47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2013년 12월 <시사IN>을 통해 소식을 들은 한 시민이 4만 7천 원과 편지를 봉투에 담아 언론사에 보냅니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 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 명이면 되더라고요." 

이 편지를 계기로 많은 시민이 모금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죠. 과거 월급봉투가 노란색이었던 것에 착안해 노란봉투 캠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법 개정도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과도한 손배가압류를 막기 위해 노조법 2조와 3조를 개정해야 했는데 이 개정안을 '노란봉투법'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가수 이효리씨가 동참하여 전국민에게 알려졌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 당시 편지를 쓴 시민의 이름은 배춘환씨. 이후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손잡고'의 대표가 되십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인터뷰가 올라왔으니 여러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노란봉투캠페인 10년, 밖에서 희망이 몰려왔다"  https://omn.kr/26w0k)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미 지난 국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죠. 정훈님은 지난 편지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정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셨는데, 대한민국 정부를 이끄는 감독과 코치야말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합니다.

노란봉투법이 민주노총 방탄법?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정상화법
 

▲ 지난 16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소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정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 연합뉴스


장관과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노동조합이 불법파업을 해도 사용자가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거짓말합니다. 민주노총 방탄법이라고도 부릅니다. 국민이 법안을 읽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란봉투법을 뜯어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보려 합니다. 우선 신설하려고 하는 노조법 제3조 3항을 읽어봅시다.

"제3조 ③ 법원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손해배상 자체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손해배상책임을 개인별로 따로 물리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측이 어떻게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을까요? 조합원 100명이 있는 사업장의 사측이 노조의 파업으로 100억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조합원 1명당 1억 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게 아닙니다. 사측은 1명에게만 100억 원을 청구할 수도, 100명에게 100억 원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측은 조합원 개개인이 누가 얼마나 파업에 가담했는지 귀찮게 입증할 필요 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법률용어로 부진정연대책임이라고 합니다. 사측은 이를 악용해 개별조합원을 접촉해 노조를 탈퇴하면 손해배상에서 제외시켜주는 방식으로 노조를 파괴합니다.

사측의 회유를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하는 소수의 조합원과 간부들은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100명이 100억을 책임지면 1인당 1억인데, 90명이 나가고 10명만 남으면 1인당 10억을 부담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손배가압류가 노동조합을 없애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헌법을 유린하고 있으니 제한을 하자는 겁니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에서도 현재의 손배가압류가 노동3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고쳐야 할 법입니다.

현재 노조법 3조에서도 합법적인 쟁의행위에 대해서 노동조합과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합법적인 쟁의행위 범위가 너무 좁은 게 문제입니다. 사용자도 불법행위를 합니다. 지난 2022년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군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기억하시죠? 사측은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습니다. CJ 대한통운은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합의를 파기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너무 불합리하니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항하는 파업은 손배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게 노조법 3조 2항의 개정안입니다.

현재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파업을 벌일 때만 합법으로 인정받습니다. 근로조건을 결정할 때가 언제일까요? 바로 단체협상과 임금협상을 할 때입니다. 이때만 파업을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늘 노동조합에 임금인상요구만 가지고 파업한다고 욕을 하는데, 임금을 요구하지 않는 파업은 불법입니다.

그런데 단체협약을 맺고 나서 사측이 약속을 안 지킬 수 있지 않습니까? 임금체불이 벌어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때는 근로조건을 '결정'할 때가 아닙니다. 2년에 한 번, 1년에 한 번 하는 임금단체협상 기간이 아니니깐요. 그래서 이번에 개정하려고 하는 노조법 2조 제5호에 '노동쟁의' 규정을 근로조건 '결정'에서 '결정'만 삭제해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일 때도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바꾼 겁니다.

이것도 새로운 법은 아닙니다. 1996년 신한국당이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킬 때 새긴 '결정'이라는 단어를 28년 만에 삭제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후진적인 겁니다.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 보호법
 

▲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공정한 플랫폼을 위한 사장님 모임,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생경제연구소,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동조합, 소비자와함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네트워크,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공동주최로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본사 앞에서 "자영업자, 배달노동자 다 죽이고 국민 외식비 폭등시키는 배민 OUT" 배달의민족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정민


사실 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이 불법파업과 손배가압류 문제에 치중한 것이라면, 노조법 2조 개정은 산업구조의 변화로 권리를 박탈당한 비정규직과 새롭게 증가하는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조 사용자 정의는 노동조합이 자신의 근로조건에 관한 문제를 논의할 대상을 규정합니다.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복잡한 다단계 구조 때문에 진짜 사용자를 알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틀렸습니다. 현장에서 일해 보면 누가 진짜 사장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사장이 누군지 알아도 협상테이블에 앉히는 게 어렵습니다. 이번에 통과시키려는 노조법 2조 2호는 돈을 쥐고 경영적 판단을 하는 진짜 사장을 협상장에 앉힐 수 있도록 합니다.

"제2조(정의) 2.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수 있는 지위에 있는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

진짜 사장을 찾더라도 또 한가지 난관이 있습니다. 기존의 노동법은 증가하는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를 담기 어렵습니다. 노조법 제2조 라목에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플랫폼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지만 업무과정에서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고 플랫폼사업주들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습니다.

간접고용과 플랫폼노동이 혼종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배민과 쿠팡의 배달을 플랫폼 노동자들이 수행했지만, 최근에는 하청사장님들을 모집해 이들에게 플랫폼기업의 배달물량을 넘기고 중간 사장이 배달라이더들과 위탁계약하는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물류산업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를 파견업체로부터 공급받아 일을 시키는데 근로계약서가 아닌 인적용역사업자로 3.3%의 세금을 내는 계약을 맺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렇게 3.3%를 내는 비임금근로자가 무려 847만 명에 이릅니다. 흔히들 민주노총이 특수고용 플랫폼 등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대통령과 장관은 민주노총 대신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하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습니다. 화물연대 건설노조가 대표적이지요. 그래서 이번에 개정하려고 하는 법안에서는 노조법 제2조 라목을 삭제하려고 하는 겁니다.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법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노란봉투법만으로는 작다
 

▲ 김형수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지회 지회장이 2022년 9월 1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회사의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법이다. ⓒ 공동취재사진


그러나 이번에 통과시키려는 노조법 2,3조는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플랫폼노동자들은 현행 노조법만으로는 충분한 보호가 힘듭니다. 노조법의 취지는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집단의 힘과 행동으로 대등한 노사관계를 만들어 노사협상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하라는 겁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법률로 노동3권이 주어지더라도 실질적 행사가 불가능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앱을 통해 끊임없이 신규 채용 됩니다. 파업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하던 노동자들이 일을 멈춰 생산에 차질을 주어 협상권을 얻는 것인데, 파업을 대체할 인력이 실시간으로 공급되어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됩니다.

따라서 노조법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근로기준법은 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합니다. 근로기준법이 없이 동네 편의점 사장님과 알바노동자가 1:1로 임금을 결정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월적 지위를 가진 사장님에 의해 근무조건이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집단을 이루어 단체행동을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특별하게 개입해서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고, 휴식과 근무시간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입니다.

플랫폼노동자에게도 이 같은 국가의 특별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근로기준법이 경제적 권력관계에 의한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플랫폼시대에는 정보비대칭에 의한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근로기준법이 필요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지금 일감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일감을 가져가기 위해 접속한 노동자의 숫자가 얼마인지, 플랫폼이 제시하는 임금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노란봉투법은 이런 변화된 산업과 노동을 담기에는 너무나 작습니다. 일단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고, 더 큰 봉투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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