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딸의 말대꾸 앞, 화내기 전 문득 떠오른 생각
나는 못 그랬는데... 아빠가 되어 다시 되돌아본 내 어린 시절
"아빠가 진작에 학교 준비물을 챙겨줬어야죠! 아빠가 잘못했네요!"
일주일 전 쯤, 학교 준비물이 준비 안 돼 있다는 이유로 열 살 딸이 내게 한 말이었다. 그 며칠 전부터 "준비물 챙겨라"라고 얘기했건만, 그럼 아빠인 내가 딸 가방에 넣어주기까지 해야 하는 건가.
회사에 지각할지 모르는 촉박한 아침 시간에 내가 뭘 잘못했냐고 딸이 대드니, 그런 딸을 보며 북받치는 감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 준비물이면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하지? 충격, 실망, 허무, 슬픔, 만감이 교차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부당거래> 속 명대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화를 내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 난 입을 닫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1초간 숨을 참았다. 마지막으로 온몸의 근육을 조였다. 이로써 집이 무너질듯한 고성을 내지를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야!!"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입에서 나오려는 찰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부모인 나도 그랬을까? 나는 어릴 적 어땠을까.'
무작정 혼내기만 하던 아빠...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로 기억을 거슬러 가봤다. 성인인 아빠와 초등학생인 내가 대치하고 있던 순간으로. 대치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 경험은 많아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빠와 나의 대치 상태였다.
나는 화를 내는 아빠의 말을 들으며 일방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아빠는 결국 나에게 윽박질렀고, 손찌검까지 했다. 그런 아빠에게 어렸던 난 당당하게 말하거나 내 입장을 얘기할 수 않았다. 핑계를 대면 대든다며 더 큰 화가 돌아올 게 불 보듯 뻔했고,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면서 나를 타박하실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쌓여서 지금 다소 소심한 성격의 내가 됐고 대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니, 갑자기 마음이 아렸다. 화는 났지만 당장 내 앞의 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력이 흐려졌다.
아빠인 나는 딸의 행복을 바란다.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잡아야겠지만 잘못된 수단이 그 목적을 정당화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우리 사회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 실패라고 보는 경향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구태를 답습하고 싶진 않았고, 잘못을 모두 아이에게만 전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이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결과가 아니라, 거기까지 이르게 된 과정과 맥락을 알고 싶었다. 아이의 입장과 설명을 고려해보게 됐다.
딸은 전날 밤늦게까지 영어 숙제를 했다. 과목이 영어라 옆에서 함께했다. 영단어, 지문 길이가 3학년이 하기엔 어려웠는데,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면 더 어려운 과제가 나온다며 힘들어했었다. 결국 딸은 견디다 못해 울었다.
그런 딸을 감싸주고 안아주고, 얘기를 들어주는 거 말고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 잠에 든 게 새벽 1시였다. 지쳐서 준비도 하지 못했고, 늦잠을 자니 바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더구나 딸은 아직 열 살, 미성년자다.
그러고 나니 딸이 화낸 걸 다시금 보게 됐다. 본인도 준비물 생각을 하긴 했단다. 어릴 적 나처럼 아빠가 무서워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못 그랬는데,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대견하기도 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딸에게 내 상황과 감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빠가 그래도 어른인데 먼저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어제 우리 늦게 잤고, 아침에 바로 회사에 갈 준비를 하느라 미처 생각을 잘 못했어. 그렇지만 바쁠 땐 서로 도와줬으면 좋겠어."
딸은 혼자서 구시렁대면서도 씩씩하게 가방을 쌌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바로 풀리기를 바란 건 아니었으니.
딸과 허둥지둥 집에서 나와 평소 하던 대로 서로 손을 잡고 학교로 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딸이 되길 바란다고. 대신 상대를 존중하되, 네 감정과 상황에 대해서 용기있고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고 말이다.
일주일 전 쯤, 학교 준비물이 준비 안 돼 있다는 이유로 열 살 딸이 내게 한 말이었다. 그 며칠 전부터 "준비물 챙겨라"라고 얘기했건만, 그럼 아빠인 내가 딸 가방에 넣어주기까지 해야 하는 건가.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 준비물이면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하지? 충격, 실망, 허무, 슬픔, 만감이 교차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부당거래> 속 명대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화를 내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 난 입을 닫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1초간 숨을 참았다. 마지막으로 온몸의 근육을 조였다. 이로써 집이 무너질듯한 고성을 내지를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야!!"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입에서 나오려는 찰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부모인 나도 그랬을까? 나는 어릴 적 어땠을까.'
무작정 혼내기만 하던 아빠...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로 기억을 거슬러 가봤다. 성인인 아빠와 초등학생인 내가 대치하고 있던 순간으로. 대치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 경험은 많아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빠와 나의 대치 상태였다.
나는 화를 내는 아빠의 말을 들으며 일방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아빠는 결국 나에게 윽박질렀고, 손찌검까지 했다. 그런 아빠에게 어렸던 난 당당하게 말하거나 내 입장을 얘기할 수 않았다. 핑계를 대면 대든다며 더 큰 화가 돌아올 게 불 보듯 뻔했고,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면서 나를 타박하실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쌓여서 지금 다소 소심한 성격의 내가 됐고 대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니, 갑자기 마음이 아렸다. 화는 났지만 당장 내 앞의 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력이 흐려졌다.
아빠인 나는 딸의 행복을 바란다.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잡아야겠지만 잘못된 수단이 그 목적을 정당화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우리 사회는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 실패라고 보는 경향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구태를 답습하고 싶진 않았고, 잘못을 모두 아이에게만 전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이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결과가 아니라, 거기까지 이르게 된 과정과 맥락을 알고 싶었다. 아이의 입장과 설명을 고려해보게 됐다.
딸은 전날 밤늦게까지 영어 숙제를 했다. 과목이 영어라 옆에서 함께했다. 영단어, 지문 길이가 3학년이 하기엔 어려웠는데,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면 더 어려운 과제가 나온다며 힘들어했었다. 결국 딸은 견디다 못해 울었다.
그런 딸을 감싸주고 안아주고, 얘기를 들어주는 거 말고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 잠에 든 게 새벽 1시였다. 지쳐서 준비도 하지 못했고, 늦잠을 자니 바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더구나 딸은 아직 열 살, 미성년자다.
▲ 서로 잡은 손 ⓒ 김승훈
그러고 나니 딸이 화낸 걸 다시금 보게 됐다. 본인도 준비물 생각을 하긴 했단다. 어릴 적 나처럼 아빠가 무서워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못 그랬는데,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대견하기도 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딸에게 내 상황과 감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빠가 그래도 어른인데 먼저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어제 우리 늦게 잤고, 아침에 바로 회사에 갈 준비를 하느라 미처 생각을 잘 못했어. 그렇지만 바쁠 땐 서로 도와줬으면 좋겠어."
딸은 혼자서 구시렁대면서도 씩씩하게 가방을 쌌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바로 풀리기를 바란 건 아니었으니.
딸과 허둥지둥 집에서 나와 평소 하던 대로 서로 손을 잡고 학교로 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딸이 되길 바란다고. 대신 상대를 존중하되, 네 감정과 상황에 대해서 용기있고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SNS에 게재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