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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를 닫으려는 정부... 그래도, 우리는 승리해 왔다

[세종보 천막 소식 85일-86일차] 물 빠진 농성장... 장마가 지나가는 길목의 천막농성장

등록|2024.07.24 17:38 수정|2024.07.24 17:47

농성장 주변 여치베짱이여치베짱이가 농성장 주변에서 발견되어 풀숲으로 놓아주었다. ⓒ 박은영


"어릴 때 살생을 많이 했어. 나이 드니까 왜 그랬다 싶더라고."

테이블에 여치가 너무 가까이 앉아 화들짝 놀랐다. 가만히 보고 있는데 그라운드 골프 치러온 할아버지가 여치베짱이를 살짝 들어서 풀숲에 놓아준다. 고맙다고 하니 아니라고 살포시 웃으신다. 그러고는 "어렸을 때는 심심하니까 들에 나가서 수도 없이 잡고 괴롭혔다"면서 "너무 많은 살생을 해서 이제는 잘 놓아주게 된다"며 말을 이었다.

도시에는 불볕 더위라지만 농성장 다리 사이로 부는 바람 덕분에 너무 덥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비가 온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뭉개뭉개 뭉쳐진 먹구름이 기세를 드높이며 거세게 흐르는 금강 위로 말달리고 있다. 구름도, 바람도, 선풍기나 에어컨 없는 농성장에서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새파란 초록이 빛나던 여치베짱이의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 며칠 사이에 쓰레기봉지 위, 테이블 위를 오가면서 눈에 자주 띄었는데 진작 숲으로 놓아줄 생각을 못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사람이 자주 오가니 밟힐 수도 있을텐데, 미물의 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환경운동가, 아직 갈 길이 멀다.

댐과 보로 홍수 조절하겠다는 환경부 장관 후보

지난 22일에는, 김완섭 환경부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환경단체들이 생태 파괴의 주범으로 꼽았던 한화진 환경부장관의 후임은 누구일까? 윤석열 정부에 기대하는 바는 없지만, 그래도 궁금했기에 농성장에서 국회방송을 실시간 시청했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 정혜경 의원, 김완섭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게 낙동강 주남저수지 '녹조라떼' 전달 ⓒ 정혜경의원실


김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자료를 통해 홍수 피해를 예방할 방안으로 "그간 소극적이었던 댐 건설과 하천 준설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 4대강 보를 "댐, 하굿둑과 연계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하도준설, 제방보강을 통해 홍수방어 효과가 나타났으며, 둑 높임 사업, 보 저수량 확보를 통 수자원이 확보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성명을 내고 환경부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했다(관련 기사 : 환경부장관 후보 "4대강 보 활용"... 환경단체 "자진 사퇴하라" https://omn.kr/29izg). 장관 후보가 말하는 댐과 보 활용, 지난 6월 말에 만났던 환경부 물관리정책실장과 판박이였다. 환경부장관 후보로 환경 현안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토한 흔적이 없이 환경부 관료들의 이야기를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버티는 이유… 사랑이 이긴다
 

천주교대전교구 세종보 재가동 중단 거리미사김대건 신부가 집전하는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세종시가 1만 4천원짜리 과태료 고지서를 가지고 왔다. 하천 불법점용에 대한 과태료였다. 우리의 불법에는 이렇게 천 원 한 장 정확한 이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민관합의를 위반해 온 환경부에게 과태료를 부여할 길은 없을까. 멸종위기종을 보호해야 할 직무를 유기하고, 강을 파괴하는 데 직권을 남용한 이들이 전해주려던 과태료 고지서, 씁쓸했다. 법을 짓밟고 직무를 유기했으며, 생명을 유린하는 행정부처가 먼저 처벌을 받아야 한다.

지난 23일, 천주교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와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들이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위한 거리미사를 봉행하려고 농성장을 찾았다. 다리 아래 입당 성가가 울려퍼지자 순식간에 농성장은 교회로 변했다. 농성장 주변으로 울려 퍼지는 찬송가는 강에 깃들여 사는 뭇 생명과 금강의 평화를 지키려는 황홀한 고백이었다.

어떤 이들은 농성장에 쳐진 빈약한 텐트와 간이의자를 보면서 '유난을 떤다', '불법이다', '민폐다'라면서 깎아내리지만 강을 사랑하는 이들의 눈에는 애처로울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한다. 생명을 지키고 더불어 사는 일을 알려주는 일, 서로를 사랑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을 농성장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해 9월, 공주보 담수 반대 천막이 공주시에 의해 무참히 뜯겨 나갈 때, 한 평 남짓의 천막 모퉁이 기둥을 잡고 버텼을 때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물이 빠진 뒤 천막농성장 있던 자리모래와 자갈섬으로 평평하게 남아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물 다 빠졌다, 내려가 보자."

다시 자갈자갈 흘러가는 물길이 반갑다. 천막이 있던 자리가 넓고 평평한 모래자갈섬으로 만들어졌다. 장마는 위대한 청소부였다. 다시 드러난 자갈은 깨끗하게 씻겨나갔다. 흐르는 물도 맑다. 교각 밑에 그려진 아름다웠던 벽화는 빛이 바랬지만 다시 그려 넣으면 될 것이다. 마치 고향집에 돌아온 듯이 평안했다.

하루빨리 녹색천막을 쳤던 곳으로 내려와 새롭게 벽화도 단장하고, 아침마다 찾아오는 할미새의 발자국과 물떼새들의 산책을 지켜보고 싶다. 흐르는 금강 곁에 가까이 있어야 세종보 수문이 언제 올라갈지 몰라 애태우던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또 다시 '행정대집행이니' '하천불법점용이니' 하며 다투겠지만 그래도 강 곁에 서 있어야 한다.
 

다시 차려진 재난안전본부곧 천막농성장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물이 빠진 것을 보고 게이트볼 장을 가로질러 원래 재난안전본부가 있던 자리에 그늘막을 쳤다. 바람에 나부끼는 그늘막이 개선장군처럼 늠름해 보였다. 사실 우리는 세종보를 닫으려는 윤석열 정부에 맞서서 90여 일 가까이 승리해 왔다.

금강이 눈에 보이는 자리, 이제야 비로소 장마가 지나가는 길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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