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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다른 마을... 주민들이 더 신났습니다

[2024 공동리포트 - 국민휴가위원회] 충남 부여 덕림마을에서 보낸 하루

등록|2024.08.08 11:54 수정|2024.08.08 11:55
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친환경 여행, 도시 탐방,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는 휴가, 오토바이 여행, 숨겨진 명소 등 다양한 형태의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국민휴가위원회'가 나섭니다. 무더위와 고물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편집자말]
 

▲ 드론으로 촬영한 충남 부여군 장암면 점상3리 덕림병사 ⓒ 오창경

 
"우리 동네 좀 와보셔유. 마을 회의도 해야겠고 마을 계곡도 정비하는데 오시면 좋겠네유."

반딧불이 마을 축제를 소개한 기사 "여기로 오세요... '반딧불이' 별천지가 펼쳐집니다"(https://omn.kr/28uvd)를 쓴 이후 축제추진위원장과 이장의 전화를 자주 받았다. 충남 부여군 장암면 덕림마을은 반딧불이가 나오는 덕림병사와 아기자기한 마을 길, 1급수가 흐르는 아담한 계곡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사는 부여가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도 비 폭탄이 피해 가지 않았다. 뒷마당에는 토사가 흘러내려 낯선 땅처럼 변했고 현관 앞은 황토 얼룩으로 밤새 물이 찼다 빠진 흔적이 역력했다. 하룻밤 사이에 집중호우로 부여 전 지역이 산사태와 토사 유출, 시설 하우스 침수 피해 등으로 난리가 났다.

덕림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사람들과 통화했던 그날 밤 쏟아진 폭우로 마을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토사가 논을 덮쳤고 마을 안길이 꺼지기도 했다. 생활 공간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였다.

가는 곳마다 일거리가 생기는 사람을 두고 '일복이 많다'고 한다. 휴가를 계획 중이었는데 빗물 폭탄이 터져버렸다. 휴가는 개뿔, 조짐이 불길했다. 이제부터는 산비탈 농가 뒤뜰에서 삽질을 하거나 흙 부대를 나르고 하우스에서 흙탕물 뒤집어쓴 농작물을 걷어내는 모습이 많아질 것이다. 휴식과는 거리가 멀고 가는 곳마다 일이 생기는 일복 많은 내 팔자를 극한 호우가 여지없이 증명했다.

덕림병사 계곡에 모인 마을 사람들

"워쩐대유? 별일은 없슈? 워쩔 수 없지유. 하늘이 하는 일인디... 다행히 덕림병사 쪽은 비 피해가 없으니께 우리는 계획한대로 진행할규."

덕림마을 이장의 전화였다. 수해 피해가 있어도 한번 잡은 날짜를 변경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덕림병사 계곡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니 원시림 같은 곳이다.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가 있고 반딧불이들이 산란하고 유충들의 숙주가 되는 다슬기며 달팽이들이 풍부한 계곡이다.

그곳에 중장비를 동원한 개발은 반딧불이를 비롯한 생물자원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것을 잘 아는 마을 사람들이 수작업만으로 반딧불이 탐방로를 내기 전에 계곡 탐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덕림병사 계곡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덕림산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조신의 묘가 있는 곳이다. 태종이 무학대사를 보내 스승이었던 조신의 묫자리를 잡아주게 했다는 역사가 전한다. 그 바람에 마을 안쪽에 있던 조신의 묘를 명당터라는 덕림산으로 이장하고 덕림병사를 지어 후손들이 기리게 했다.

옥녀직금(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짜는 형국)의 명당이라는 조신의 묘를 쓴 후에 풍양 조씨들은 조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의 업적을 남겼다. 21세기에도 밤하늘에 선녀가 짜 놓은 옷감 같은 은하수 궤적이 보이고 반딧불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덕림산은 명당이 아닐 수 없다.
 

▲ 자연친화적인 다랭이 논을 덕림마을 계곡에서 찾았다. 덕림마을에서는 고라실논이라고 부른다. ⓒ 오창경

 
일주일 전 빗물 폭탄이 지나간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장이 걷히지 않았다. 장마철 숲속에 예초기와 낫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스릴러 영화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다. 준비해 간 장화를 신고 마을 사람을 따라 계곡을 뚫고 나가니 벼를 심은 손바닥만 한 계단식 논들이 있었다.

"우리 풍양 조씨 종중 논인데유. 후손 중 한 사람이 자연농법으로 벼를 심고 관리하고 있어유. 이런 습지를 보존한 논이 있어서 반딧불이가 많이 나오는 것 같어유."

역시 풍양 조씨 문중인 조동진 축제추진위원장이었다. 넓은 들판이 있는 논만 보다가 골짜기 계단식 논 앞에 서니 낯선 여행지에 도착한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 숨은 비경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에 이 골짜기를 찾아오면 새로운 볼거리가 될 것 같았다.

햇살은 구름에 가려졌지만 공기는 무겁고 눅진했다. 쉴 새 없이 땀이 흘렀다. 계단식 논 옆은 바로 계곡이었다. 낮은 산이 많은 부여는 계곡 경관이 잘 갖춰진 곳이 별로 없다. 덕림산과 계곡을 잘 정비하면 비밀의 계곡에서 즐기는 여름 휴가처가 될 것 같았다. 가벼운 도시락을 가지고 발을 담그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쉬기에 좋은 계곡이 여기 숨어 있었다.

반딧불이 축제로 학습한 공동체 활성화
 

▲ 덕림마을 사람들과 초복 달임을 하며 지낸 하루 중 점심 식사 ⓒ 오창경

 
"그만 나오라니께. 샛거리도 드시고 점심도 드시게 나오셔유."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한 음식이 왔다. 삼계탕 대신 닭볶음탕과 마을에서 재배한 복수박도 왔다. 복수박으로 우선 목을 축이고 숲길 정비를 했던 사람들이 그늘에 앉아 쉬는 동안 부녀회원들은 익숙하게 한 상을 차렸다.

"여름엔 오이냉국만 있으면 다 필요 없다니께."

부녀회장이 아이스박스를 풀고 오이냉국을 한 사발씩 퍼주기 시작했다. 미역과 채 썬 오이에 얼음을 가득 넣은 냉국을 보자마자 제일 반가워했다. 정겨운 대화가 오가고 갓 담근 열무김치와 부추겉절이, 닭볶음탕이 있는 점심은 꿀맛이었다.

여름 음식과 자연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풍경이 덕림마을에 있었다. 지방 소멸, 인구 위기, 기후 변화 등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한 시골 마을의 복날 이벤트는 사라져 가는 중이다. 하지만 덕림마을에서는 반딧불이 출현으로 고양된 공동체 의식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빗낱 던지기(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니께 그만 철수하고 회관으로 모이세유. 마을 회의를 해야 하니께."

점심을 먹고 나자 해를 가리고 있던 구름이 덕림산 마루에 걸렸다. 일사불란하게 덕림계곡가에 펼쳤던 자리가 정리되고 마을 사람은 회관으로 움직였다.

덕림마을은 부여군 백마강에 인접한 장암면에 속하지만 남면과 충화면의 면계에 위치했다. 강변 뷰보다는 산골 마을의 아기자기한 풍경과 순박한 사람들이 자원이다. 반딧불이가 출현하지 않았으면 마을 사람끼리 오순도순 사는 산골 마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6월 1일 반딧불이 축제로 학습한 마을 공동체 활성화 효과로 마을 사람들이 더 긴밀해지고 마을 관광 사업에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회의를 지켜보니 2015년부터 해돋이 행사, 달집태우기, 어버이날 효 잔치 등 행사를 강화하며 마을 화합을 도모하기는 했으나 더 이상 마을 자원과 역량을 끌어내지 못하고 침체 국면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욕구가 넘쳤다. 마을에는 풍양 조씨 문중의 조선시대 유적이 많았지만 관광 자원화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상태였다.
 

▲ 덕림마을의 하루 중 조현명 묘소의 무인석에 대한 강연 ⓒ 오창경

 
"이장님, 언젠가 부여 신문에서 덕림산 귀록공 할아버지 묘지 앞의 무인석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유. 오 기자님한테 부탁해서 자료를 찾아보면 어때유?"

축제추진위원회 조성완 총무가 회의 중에 불쑥 내게 과제를 던졌다. 짧은 내 지식의 한계가 드러날 질문이었으나 그 분야 전문가를 연결할 만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다. 부여군 향토 연구가 이진현 선생을 덕림마을로 초빙해 깜짝 강연을 듣기로 했다(다행히 이진현 선생 댁과 덕림마을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부여 신문에 무인석에 관한 기사를 쓴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분은 조선 영조시대 영의정을 지낸 조현명(趙顯命)의 묘입니다. 부여에서 무인석이 있는 곳은 단 두 곳밖에 없습니다. 1734년에 조성된 묘의 무인석이지만 마치 왕릉의 무인석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고 우람합니다. 왕릉 외에는 무인석을 세우지 않는다고 우기는 학자들도 있지만 조선 중기 조현명 선생 묘의 이 무인석이 그 이론에 대한 반박 증거인 셈이죠."

덕림마을의 하루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후 덕림마을에 해가 들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에서 뒷정리하던 민경희 부녀회장과 회원 세 분을 내 차에 태웠다. 오전에 대강 길을 내고 잡목을 정비한 덕림계곡으로 향했다. 점심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분들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였다. 계곡에 돗자리를 펴고 시내에서 마을에서 공수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펴놓았다.

"비 오는 날 우아하게 샌드위치와 커피 어때요?"
"우리가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는데... 너무 좋지유. 아니 여기 계곡이 있었네."
 

▲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긴 덕림계곡의 휴식 ⓒ 오창경

 
내년 반딧불이 마을 축제를 위해 정비했던 계곡에 덕림마을 부녀회원들이 첫발을 디뎠다. 점심에 내렸던 소나기가 계곡 물소리를 더 청아하게 들리게 했다.

"아유, 우리 마을에도 이런 계곡이 있었네. 작년에 갔었던 수락 계곡이 너무 좋아서 부러워했는데 우리 마을에도 이런 아담하고 좋은 계곡이 있었네."
"딸네 가족이 휴가받으면 내려온다는데 여기로 오면 좋겠네."

덕림마을 부녀 회원들은 모처럼 여가에 싱글벙글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구슬은 실에 꿰어야 보배가 되는 법이다. 반딧불이가 이끈 덕림마을 사람들의 앞길이 밝아 보였다. 이왕 덕림마을 사람들과 초복 달임을 시작한 김에 부녀회원들과 본격적인 마을 여행을 하기로 했다.
 

▲ 덕림마을에서는 자손들에게 미래의 덕림마을을 물려주기 위해 700여 그루의 편백을 심어 숲길을 조성했다. ⓒ 오창경

 
탁족을 마친 부녀회원들의 안내로 편백 700그루를 심은 숲에 들러 피톤치드 풍부한 산림욕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기도 하고 천일홍과 무궁화를 심고 가꾸는 마을 안길을 걷기도 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 어쩐지 올해 휴가는 이렇게 마감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덕림마을 부녀회원들도 모처럼 마을을 안내하고 탐사하는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했다. '덕림마을의 하루'가 내 여름휴가의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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