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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보다 깊고 긴 계곡을 살아서 통과하다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 2,548km를 횡단하면서 느낀 것들

등록|2024.07.28 14:14 수정|2024.07.28 14:14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문화를 나눈다. [기자말]

▲ 계곡과 산이 맞닿은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Sierra Madre Occidental) ⓒ 이안수


멕시코 라파스의 달콤한 정주를 뒤로 하고 다시 길 위에 오른 지 보름. 코르테스 해를 건넌 우리는 멕시코 서부지역을 남북 약 1,500km(약 930 마일)로 뻗어 있는 장대한 산맥,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Sierra Madre Occidental)을 횡단하기로 마음먹고 산중으로 향했다. 그리고 보름 만에 그 횡단을 마치고 치와와에 닿았다.

우리는 산중으로 들어선 지 열흘 만에 전화벨 소리를 들었다. 버스 속 어떤 메스티소의 전화기 벨소리였다. 와이파이나 데이터 사용이 불가능한 단절의 시간은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져서 그동안 잊었던 하늘 위에 별빛을 되찾는 마음이 되었다.
 

▲ 새벽 등반에 동네의 개들이 따라 나섰다. 대부분 주인 없는 길에서 사는 개들이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 무작정 따라온다. 그곳이 산길이든 들길이든... 처음에는 두렵다가도 험로를 가다 보면 동료로 변하고 위로가 된다. ⓒ 이안수

  

▲ 치와와주의 제로카후이(Cerocahui) 마을의 사자바위에서 내려다본 마을과 강과 숲. ⓒ 이안수


단절이라고 여겼던 것은 오히려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자 소통이었다. 내 옆 사람과 장엄한 자연과 나의 내면과 접속이었다. 편리함이라고 여겼던 것들에게도 빼앗긴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인들은 나와 다른 마음이었다. 갑자기 소식이 사라진 상황을 염려했다. 많은 분들이 우리 부부의 안전이 궁금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안부를 물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오랜만에 이동하시는 거라 저희도 두근두근... 혹여라도 한치의 불안한 마음 때문에 기도하며 기다렸지요^^."

지인의 이 마음을 전해 받고 무사히 협곡을 살아나왔다는 안도보다 기도하며 기다린 이의 마음에 더욱 울컥해졌다. 저희의 뜸한 소식에 각기 다른 언어, 같은 마음의 기도로 길 위의 안전을 빌었을 이들에게 서둘러 안부를 전했다.
 

▲ 구아초치(Guachochi)의 고코요메(Kokoyome). 자연속에서 압도당해 두렵다가도 점점 어머니의 품속 포근함을 느낀다. ⓒ 이안수

  

▲ 바토필라스(Batopilas)로 가는 산길은 때때로 산사태로 길이 막힌다. 무너진 돌을 치우고 길을 가야 한다. ⓒ 이안수


웅대한 산맥 속에서의 시간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때문에, 또한 높이 때문에 시시각각 두려웠지만 어느 순간 어머니 품에 안긴 듯한 안도가 찾아왔다.

영어로 코퍼 캐니언(Copper Canyon)으로 불리는 '바랑카 델 코브레(Barranca del Cobre)'는 장대한 경이로움 때문에 흔히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 비교되곤 한다. 수백만 년에 걸쳐 콜로라도 강이 깎아 만든 그랜드 캐니언보다 넓고 깊은...

동양화보다 더 동양화 같은 선경을 만났으며 그곳에서 주어진 모습 그대로의 삶을 지속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만났다.
 

▲ 은광의 주인이었던 갑부는 떠나고 그가 살았던 대저택 아시엔다(hacienda)는 폐광과 함께 버려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 이안수

   

▲ 폐광된 은광. 지금은 박쥐가 주인이 되어있다. ⓒ 이안수


6,000피트(1,800m) 깊이의 6개 협곡이 나락처럼 입을 벌린 이 협곡 곳곳에는 경이로운 삶과 죽음이 펼쳐지고 있었다. 포식자들과 절연하기 위해 바위 절벽 험난한 환경의 삶을 택한 산양이나 큰뿔양처럼 스페인 침략자들에 타협하거나 맞서는 대신 더 깊고 높은 곳에서 은둔하는 삶을 지속하고 있는 타라후마라(Rarámuri) 사람들이 그들의 습속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금과 은과 구리의 부를 찾아 그 협곡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만났다. 인간의 도덕과 법을 넘어서는 범죄의 현장을 만났으며 그 잔혹함에 맞서 질서를 사수하려는 사람들을 만났다.

트레킹 중에 발아래의 쓰레기를 줍기 위해 연신 허리를 굽히는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깊은 계곡 여울의 바위 사이에 모여 맴돌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남자를 만났다.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을 횡단하는 이 여정은 사전에 계획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도상에서는 10여 km의 직선거리로 보였지만 중간에 넘을 수 없는 산이 가로막혀 백 수십 km를 돌아야 하고 불과 몇 km의 직선거리이지만 건널 수 없는 계곡으로 막혀 다시 수십 km를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현지에서 그 사정을 파악할 수밖에 없으며 그 길 조차도 현지인들에게 탐문할 수밖에 없다.
 

▲ 아레코 호수(Lago arareko) 변을 걷다가 조우한 타라후마라 모녀. 그들은 원색의 옷을 선호하지만 사람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말을 아낀다. ⓒ 이안수

   

▲ 산맥의 중턱 바위 산정에서 절벽 아래의 양들을 몰고 있는 타라후마라(Raramuri) 여성 ⓒ 이안수


우리의 이번 여정에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변해서는 안 되는 것과 변해야 하는 것'에 관한 생각들이었다. 그리고 역사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살아남은 시간들을 만났다. 그래서 뉴스의 헤드라인 속에서는 종말을 맞는 순수를 애도하는 시간만이 남은 듯하지만 여전히 어느 곳에서는 순수가 파릇하게 싹을 틔우고 있는 모습을 목도했다.

우리 부부가 보고 들은 이 모든 것을 어떤 글로도 사진으로도 그림으로도 모두 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의 안부를 염려한 이들의 은정에 대한 변명처럼 우리가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을 통과해 오늘에 닿은 약 2,548km 여정의 경험을 짬짬이 전한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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