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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전통 문화가 살아있는 영덕

집성촌, 종가와 고택, 각종 사당이나 서낭당 등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고장

등록|2024.07.25 16:05 수정|2024.07.25 16:05
대게로 유명한 영덕에 대한 첫 기억은 1989년이다. 당시는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간첩을 잡는 작전 위주였다. 야간 경비 중에 영덕항에서 조업 나온 어선을 정밀 검색했다. 젊은 선원에게 국민이 다 알만한 상식적인 내용을 물었는데, 답을 하지 못한다. 잔뜩 의심하는데, 영덕 출신 갑판장이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눈짓을 한다.

해파랑길을 따라 걸으면서 느끼는 영덕은 잊혀 가는 종갓집과 사라져가는 서낭당 등이 아직 살아있는 매우 뿌리 깊은 마을이다. 병곡면 면사무소 안내판에, 삼국시대 이전에 천호국이라는 부족 국가의 수도라고 자랑한다. 이곳 고래불은 목은 이색이 고래가 노는 것을 보고 "고래가 노는 펄"이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색은 외가인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다.

목은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도은 이숭인 등과 함께 고려 말 유학자이다. 목은과 포은, 그리고 사람에 따라 야은 혹은 도은을 3은(隱)으로 꼽는다. 숨을 은(隱)자가 스승을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나라 말기에 나타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영남 유학의 전형적 마을인 괴시리는 'ᄆ'자 기와집이 모여 있다. 마을 북쪽에 호지라는 연못이 있어 호지마을이라 불렀다. 이곳 함창 김씨 외가에서 태어난 이색이 원나라 구약 박사의 괴시(槐市, 회화가 있는 큰 마을) 마을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하여 괴시라 이름지었는데, 대표적인 사대사상이다.

괴시 마을은 영양남씨 집성촌이 되었고 우연히도 이색의 외할머니가 남씨다. 나는 외할머니 남씨 때문에 집성촌이 된 것으로 생각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축산항 입구가 영양남씨 시조가 살던 곳이다. 중국 당나라 이부상서 김충이 755년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에 여기에 표류하였다.

경덕왕이 당나라에 알리니, 살고 싶은 곳에 살라고 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 왕이 영양현을 식읍으로 주고, 영의공으로 봉하면서 영양남씨 성을 하사하였다. 일광대와 월영대는 해와 달을 벗 삼아 영의공이 거닐던 곳이다. 큰아들은 영양김씨로 하였고, 영양남씨는 나중에 의령남씨와 고성남씨로 나눠진다.

5일 동안 영덕을 걷고 떠나면서, 언제 다시 오나 싶어서 인양리 전통 마을을 찾는다. 영해면에서 자고 괴시리 걸을 때 걸었으면 좋았으련만, 영덕읍 시외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간다. 인양리는 명현들이 많이 배출되고, 어진 분이 많이 나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괴시리는 집성촌이라 오래된 집(고택)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면, 여기는 성씨가 다른 종가라 조금씩 떨어져 있다. 이 마을 외에도 종갓집이 많은 것은 넓은 들판과 바다에서 나온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안동과 가까워서일 것이다.

영덕의 또 하나 특징은 다른 곳보다 서낭당이나 사당이 많다. 부흥해변에 멀리 보이는 건물이 척 보니 사당이다. 왕만이 지낼 수 있었던 제사가 종묘사직(宗廟社稷)인데, 땅을 지키는 사신당(社神堂)이 있고, 두 마리 황금 거북이를 만들어 놓았다.

다음 마을에는 동네를 지키는 동신당은 금줄이 쳐져 있고 단청도 잘 되어 있다. 또 축산항 입구에 명신각과 숭신문이 있는데, 명신각에 금줄이 쳐져 있다. 축산항 동네에 있는 나무 담장에도 금줄이 쳐져 있다. 어렸을 때 아기를 낳아도 금줄을 치고, 당산나무에도 금줄을 쳤다. 최근에 일본 신사에서 나무에 친 금줄을 봤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금줄은 오랜만이다.

천장군신위와 해불신위영덕에는 사신당과 동신당, 명신각과 숭신문, 해신당과 신위 등에 금줄이 쳐져있고, 제물로 소주가 놓여 있다. 다른 지방에서 없어지거나, 건물만 남아 있는 해신당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괴시2리 마을에는 한 마을에 두 곳, 그것도 佛자가 들어있는 천장군신위와 해불신위가 있다. ⓒ 이병록


괴시2리 마을 안에 수호신 '천장군신위'가 서있고 소주병이 놓여있다. 동네 식당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이 마을 본래 신위는 해신당이라고 한다. '해불신위'(海佛神位)로서 불(佛)자가 들어간 신위는 처음이고, 한 마을에 신위를 두 군데 모시고 있는 곳도 처음이다.

사진 3리는 바위를 신으로, 축산항 입구에는 나무를 신으로 모시고 있다. 원주민이 죽으면 지구에서 말(언어) 하나가 사라지듯이, 신자가 사라지만 신(神)도 사라지는 법이다. 신당마다 소주가 놓여있는 것을 보니 신자가 있는 살아있는 신이다.

영덕에는 망일봉과 망월봉, 일광대와 월영대 등 해와 달의 이름을 조화롭게 지었다. 백석 마을에는 '백석1길'과 '흰돌로'라는 표지판이 나란히 있다. '길'과 '로'가 서로 바뀌어 있는데, 우리 글에 자신감을 가지고 '흰돌길'로 했으면 좋겠다. 영덕은 산과 바다를 잘 살려서 길을 냈고, '영덕 블루로드'라고 이름 붙였다. '쪽빛 파도의 길'이나, 다른 한글로 이름을 붙이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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