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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00시간 근무에 심부름까지, 그래도 그만두지 못한 이유

최저임금 받으며 생계유지 위해 투잡 뛰기도... "법적 보호 제도가 없다"

등록|2024.07.25 17:42 수정|2024.07.25 17:59

▲ 장애인 활동지원 계약상 당사자를 지원하는 범위가 규정돼 있다. 그러나 심부름 같은 업무외 노동이 주어지곤 했다. 현장의 활동지원사들은 그런 업무를 거절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freepik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이 고용불안과 낮은 임금으로 생계 안정을 호소하고 있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보조하기 위한 활동지원서비스는 필수노동자로 분류된다. 보건복지부가 책정하는 급여에 따라 임금 기준이 결정되지만, 정작 활동지원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할 정부와 지자체는 활동지원센터에 인력 관리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활동지원사들은 과중한 노동과 열악한 임금 조건 안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용자들의 활동지원 서비스 품질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최저임금에 가족들 심부름까지, 하루 만에 잘리기도...

"활동지원제도가 도입되고 볼펜으로 손수 활동일지를 써왔을 때부터 일을 해왔어요. 그때부터 최저임금 정도를 받아오면서 고충도 많았죠. 발달 장애인 아들을 둔 부모로서 사명감으로 일하며 지금껏 버틸 수 있었죠."

18년 차 활동지원사 A씨(60대)는 사회가 보장하지 않는 장애인 자립과 돌봄 부담을 온전히 떠맡고 있으면서, 활동지원사의 고충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꼈다.

A씨는 장애인 이용자들에게 사회 활동 및 이동 지원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용자와 센터나 병원을 동행해 재활·치료 일정을 돕고 가정 내 돌봄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해왔다.

"자차로 이동하면서 월급의 절반은 기름값으로 나갔어요. 율량동부터 가경동을 거쳐 용암동까지 하루에 청주 시내를 다 돌 정도로 바쁠 때도 많았어요. 이용자 가정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가족들이 심부름 같은 업무 외 요구를 하기도 했었죠."

활동지원 계약상 당사자를 지원하는 범위가 규정돼 있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 거부할 순 없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A씨는 첫 번째 이유로 "아들 같고, 딸 같은 마음"에 계약된 내용 밖의 요청도 응해주곤 했다고 답했다. 두 번째는 안정적이지 못한 근무 환경에 거절할 수 없는 입장임을 꼽았다.

A씨는 "이용자 가정의 요구를 거부하면 활동지원사를 바꿔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려 한다"며 "요구를 거부하거나 쓴소리를 한번 했다가 3년 넘게 일했던 가정에서 하루아침에 잘리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휴가는 꿈도 못꿔"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이용자 일대일 매칭 구조로 일을 하다 보니 활동지원사에게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겨도 대체할 인력이 없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이용자의 입장에선 갑작스레 일상이 중단되는 셈이다 보니 연차와 휴가는 생각하기도 어렵다.

A씨는 "가족이 상을 당한 와중에도 일을 나갔어야 했다"며 "활동지원사들은 일에 자신의 삶을 전부 매진해야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환경에 이직을 택하는 활동지원사도 많이 봐왔다 A씨는 "사명감 없인 버티기 힘든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활동 지원 인력이 이탈하고, 서비스의 전문화를 저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용자들의 중단 없는 활동지원과 선택권 보장을 위해선 활동지원사 처우개선과 더불어 안정적인 노동 환경이 뒷받침될 필요성이 있다.

"30년 넘게 장애인 자녀를 돌보면서 아무리 말하고 외쳐도 변하지 않았던 게 장애인 인권이죠. 활동지원사 일도 지금껏 해왔지만 월급도 변함이 없어요. 적어도 같이 일하는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부당한 대우를 겪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망은 있어야죠."

그럼에도 A씨가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장애인 부모로서 위로와 힘을 얻기 때문이다. 활동 지원이 이용자 가정의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못하던 아이가 제가 이동 지원을 하면서 말이 트였어요. 차 안에서 같이 노래도 따라 부르고 이야기를 할 땐 정말 뿌듯했어요.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이용자와 그 가족들은 이따금 연락이 와요. 그럴 때 감회가 새롭고 힘이 많이 됐죠."
 

▲ 지난 4월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 기자회견 중 공공운수노조 충북본부 윤남용 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종은 기자) ⓒ 충북인뉴스 이종은


"활동지원 종사자 보호 제도 마련해야"

공공운수노조 충북본부는 활동지원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선 보건복지부의 안정적 고용 환경을 위한 관리·감독 강화, 지자체의 활동지원사 처우개선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공공운수노조 장애인활동지원지부 권임경 충북지회장은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지원은 많은데 이를 사회가 받쳐주지 못하니 활동지원사의 업무 영역은 훨씬 넓어질 수밖에 없다"며 "장애인 이동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활동지원사 개인 차량을 이용해 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활동법에 따라 수급자의(이용자) 활동 지원 범위를 규정하고 있긴 하나 A씨와 같이 범위 내 일만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권 지회장은 업무를 가중시키는 부당한 요구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활동지원지부 다사리분회 신창숙 사무국장은 "지역에 장애인 이용자 수는 한정돼 있어 활동 지원 수요가 일정하지 않다"며 "이용자가 활동지원 중단을 요청하면 활동지원사분들은 언제 새로운 이용자가 매칭될 수 있는지 확답을 할 수 없다. 생계가 끊긴 채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부당한 사유로 매칭이 끊기지 않도록 센터 차원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이용자가 다른 센터로 떠나면 끝이다"라며 "활동지원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공공운수노조 장애인활동지원지부 권임경 충북지회장. (사진=이종은 기자) ⓒ 충북인뉴스


"월 300시간 노동까지... 관리책임은 나 몰라라"

노동조합은 안정적인 고용환경을 위해선 열악한 임금조건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시급제 방식에서 월급제로 전환해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안전망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활동지원센터에 지급되는 활동보조 급여는 시간당 1만6150원이지만 이중 활동지원사들의 몫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보건복지부 지침상 1만6150원 급여 중 25%는 센터 운영비로 들어가고 남은 인건비 75%에는 4대 보험료, 연차수당 등 각종 수당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급제로 인해 "일을 많이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되면서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월 300시간 이상 일을 하는 기형적인 노동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공공운수노조 충북본부 윤남용 본부장은 "활동지원센터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각 지원사가 배정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의 한계를 정하고 있지만, 인력 유입을 위해 근무 시간을 300시간 이상 배정하는 센터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우 센터는 활동지원사가 타 센터에서 근무를 해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A센터에서 100시간, B센터에서 200시간을 배정받아 활동 지원 서비스 300시간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바우처 이용시간에 따라 지원센터에 급여를 지급하는데 과중한 노동 실태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문제를 보건복지부에 질의했으나, '센터의 재량인 사항', '부정수급 정황이 있느냐'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이들은 "관리·감독의 책임은 활동지원기관에 있다며 부정수급 문제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더라"며 "공공서비스를 운영하고 예산을 지원하면서 어떤 책임도 맡지 않겠다는 태도가 황당하다"고 분개했다.

제도개선, 정부와 지자체의 고용안정 인식부터 

노동조합은 예산을 통해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보건복지부가 활동지원사의 관리 주체로서 책임을 가진다는 입장이다.

활동지원사의 임금이 포함된 활동지원급여의 책정 기준은 보건복지부의 예산과 지침에 따라 정해지고 있다.

윤남용 본부장은 "보건복지부가 활동지원사 당사자와의 논의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요양보호사와 마찬가지로 위원회를 통해 노동자와 전문가를 포함한 논의 절차를 거쳐 임금을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또한 예산을 지원하고 조례를 통해 이들의 노동 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로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속 요구하고 있다.

활동지원사 처우개선 조례 등을 통해 ▲ 실태조사 및 중장기 계획 마련 ▲ 활동지원사 교육 및 수당 지원 ▲ 휴식지원 및 쉼터 조성 등 구체적 사항을 명시해 지자체의 지원과 노력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장애인 인권과 활동지원사 노동권의 충돌이 아닌 각각의 권리 증진을 통한 활동 지원 제도의 근본적 개선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간의 '을들의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회서비스 책임 주체인 정부가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 빈틈없는 복지가 요구되지만 결국 값싼 노동력을 부려 이를 메우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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