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자연광을 중시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왜 그랬을까

[인터뷰]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 저자 이관석 교수

등록|2024.07.26 10:04 수정|2024.07.26 10:04
르코르뷔지에는 혁신적인 건축설계와 시대를 앞서나가는 이론으로 건축사에 큰 업적을 남긴 현대 건축의 위대한 거장이다.

그의 건축 작업 1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현대건축의 도래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후를 고려한 건축적 대응을 르코르뷔지에 같은 위대한 건축가가 정말로 등한시하거나 소홀하게 다루었을까?

선입견에 가려져 있었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실은 누구보다 자연광을 통한 친환경 건축에 큰 관심을 둔 건축가였다. 삼성건설에 재직하며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현장을 경험하고, 르코르뷔지에의 정신을 이어받은 앙리 시리아니 교수 밑에서 수학한 르코르뷔지에 전문가 이관석 경희대 교수는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에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친환경 건축의 시각에서 재조명했다. 사용자의 위생과 환경을 고려해 자연광을 활용한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 친화성을 집중 조명한 최초의 책이다.

▲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 - 친환경 건축을 추구한 빛의 건축가, 이관석(지은이)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은 오늘날의 건축이 추구하는 친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건축을 그러한 인식조차 전혀 없었던 20세기 초에 이미 르코르뷔지에가 시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가 어떻게 친환경 건축을 추구하게 되었을까? 저자 이관석 교수에게 친환경 건축을 추구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세계에 관해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 저자 이관석 교수[인터뷰]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 저자 이관석 교수 ⓒ 이관석


-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세계를 자연 친화적 건축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점이 새로운데요.
"르코르뷔지에가 주로 활동했던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자연 친화적 건축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론되지 않았을 시기입니다. 구태여 찾는다면, 지역 기후에 맞춰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해온 토속 건축 정도가 있었겠지요. 그래서 건축가를 막론하고 그 시기의 건축 작업을 자연 친화적 건축의 측면에서 들여다보는 경우는 드뭅니다.

특히 르코르뷔지에는 지역의 기후나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지 않는 근대 건축의 대표주자로 여겨지면서 그의 건축 세계를 자연 친화적 관점으로 보는 발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1970년대 이후 탈근대주의 시대로 접어들며 도시 환경의 생태적 위기와 단조로움, 장소성 상실을 해결하기 위한 도시의 환경 및 문화, 역사적 맥락에 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됐습니다. 이런 시기에 역사와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는 성상 파괴자로 오인된 르코르뷔지에와 자연 친화의 접점을 찾는다는 생각을 저도 오랫동안 하지 못했었습니다."

- 그동안 르코르뷔지에가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했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이 비환경적으로 인식된 이유가 있을까요?
"여기에는 르코르뷔지에가 평생 투쟁해야 했고 대부분의 경우 소수자로서 개인적 피해를 봐야 했던, 당시 건축계를 주도했던 보수주의자들과의 첨예한 갈등이라는 바탕 위에 누적된 편견이 작용했습니다. 최근 들어 그가 역사와 전통에 매우 진지했고 이를 중시했으며 토착성을 강조한 건축가였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현상을 직시해 시대정신이 결여된 채 과거를 무분별하게 재생하고 기술의 발전과 동떨어진 건축 행태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한 것만 부각되고 그가 전통, 토착성, 민속 문화,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거로부터의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고 거듭 역설하고 실천한 것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형식을 대단히 일찍 예견하는 아방가르드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했겠지요."

- 르코르뷔지에가 자연광에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해발 1,000미터의 알프스 산중 도시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르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서의 눈을 뜨게 해준 장기간의 건축답사 중 자연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답사 중 만난 뛰어난 고전 건축물들에서 빛과 그림자가 공간성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했습니다. 또 지중해 인근의 마을들에서 건축가가 아닌 이들이 지은 백색의 전통 주거들에서 자연광의 아름다움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가 경험한 지중해의 감동은 단순히 빛과 색채에 대한 것 이상으로 예술성 자체의 근원적인 감동이라 볼 수 있고, 그것이 새로운 예술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매체가 됐습니다. 급기야 "여러분이 상상하듯 나는 빛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나에게 빛은 건축의 기본입니다. 나는 빛과 함께 구성합니다"라고 토로하게 됐지요.

저도 처음에는 빛과 공간의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 작업에서의 빛의 아름다움과 공간에서의 의미에 대해서만 주목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왜 다른 건축가들에 비해 이렇게 유별나게 자연광을 중시했지?'라는 의문이 들면서 그가 활동했던 시기에 파리의 사망원인 1·2위가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거나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독감과 폐렴임에도 건축과 도시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주목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다수의 그의 건축 이론과 실무, 도시계획안 등에 빛과 환기에 의한 위생적 환경 도모의 의지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됐고, 그가 이룬 이론적·실천적 성취를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주요 연구대상이었던 미적인 관점에서의 빛 이전에 거주자를 위한 건강한 생활환경을 조성해야 할 건축가의 기본 책무에 르코르뷔지에가 소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연광을 통한 공간 드러냄에 의지하는 롱샹성당자연광을 통한 공간 드러냄에 의지하는 롱샹성당 ⓒ 경희대출판부


- 르코르뷔지에의 대표적인 건축인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 부속성당에서 자연광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 부속성당에 유입되는 자연광은 이 두 건물을 가장 높은 수준인 감동으로서의 공간이 되게 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외부로의 전망이 자제되고 거친 마감으로 이뤄진 이곳 예배공간은 성스럽고 숭고하지요.

하나는 매우 조형적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한 상자형이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형상과 내부공간임에도 이 두 예배공간의 자연광은 유입구의 엄선된 위치 선정과 절묘한 모양 및 방법의 선택으로 인해 빛을 동반하는 색과 어우러지며 두 예배공간을 '형언할 수 없는 공간'의 대표작이 되게 합니다. 건축에서 자연광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웅변하는, 깨달음을 얻게 하는 장소지요.

유입된 모든 빛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또한 조합되어 또 다른 존재 의미를 창출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건축가들에게 20세기에 지어진 건물 중 가장 우수한 것을 묻는 설문에서 이 두 건물이 단연 1위와 2위로 뽑힌 적이 있는데, 건축 전공 여부와 무관하게 방문해 건축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과 자연광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 르코르뷔지에는 인도처럼 무덥고 냉방설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열악한 기후조건에 건축적으로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영국에서 독립한 지 3년밖에 안 된 빈국이었던 인도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열대의 태양이라는 엄청난 장애물을 두고 현대적 건설기술과는 거리가 먼, 아주 저급한 재료와 기술로 서구적 도덕과 미학보다는 인도의 신념과 필요를 충족시켜야 하는 임무에 부닥쳤지요.

그는 냉방설비는 꿈도 꿀 수 없는 여건에서 극도로 적은 예산으로 오늘날의 패시브 건축이나 건축의 지속가능성 모두에서 주목하는,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자연통풍에 의한 원활한 환기를 극대화하는 방안에 집중했습니다. 태양의 궤적과 계절별 각도를 확인해 차양을 뜻하는 브리즈 솔레이어와 그늘막 지붕을 설치했습니다.

또한 가장 더운 시기의 주요 풍향을 확인하고 자연통풍으로 열기가 내부에서 빨리 빠져나가도록 건물의 방향을 정하면서 복층형 내부공간을 도입하고 건물 안쪽 깊숙이 외부가 들어오게 해 짙은 그림자의 공간을 제시했지요.

이런 조처는 전기나 기계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그늘을 만들거나 바람을 활용해 공기 순환이나 증발 냉각을 유도하는 등 전통적이고 자연적 현상을 활용해 실내온도를 낮추고자 하는, 저탄소 냉각 성장 방안 중 하나인 수동 냉방(Passive Cooling) 방안과도 상통합니다."

- 르코르뷔지에의 친환경 건축은 오늘날의 건축계에 시사하는 바가 큰데요. 그의 친환경 건축이 오늘날의 건축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지극히 적은 예산으로 무더운 인도에서 냉방설비가 없이 살며 일하는 공간을 제공해야 했던 르코르뷔지에의 방안이 평균 이상의 초기 비용 투입을 요구하는, 오늘날 말하는 것만큼의 안락과 쾌적함을 보장하는 친환경 건축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앞서 말한 인도에서의 대응법은 이후의 건축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차양이나 그늘막 지붕 도입, 상시 더운 곳에서 내부 깊숙한 곳의 외부화같이 르코르뷔지에가 활용한 방안은 더운 나라들의 이전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지혜가 녹아든 대응법이기도 합니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런 과거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을 오늘날의 재료와 구법으로 풀어냈습니다.

르코르뷔지에의 인도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제자로서 인도 건축가인 도시(Balkrishna Doshi)를 2018년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로 결정하면서 심사위원회는 "좋은 건축, 좋은 도시계획은 단순히 '용도와 구조물의 결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후, 입지 특성, 지역적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가 기술 및 장인정신 등과 어우러져야 한다는 사실을 도시가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그가 설계한 건물이 "시적이면서도 기능적이다. 인도의 역사, 문화, 전통건축 양식과 아울러 변화하는 시대상이 담겨 있다"라고 치하했습니다. 이는 도시가 인도의 기후조건에 대응하는 르코르뷔지에의 근대적 방식에서 큰 교훈을 얻은 덕분이었지요.

자신의 여러 작업에 그늘막 지붕을 도입해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생활 수준이 낮은 빈국인 부르키나파소에서 별도의 공조설비 없이 내외부 환기와 온도 유지가 가능케 해 2022년에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케레(D. F. Kéré)의 작업도 지역의 토속적인 자재와 기술을 혁신적으로 적용한 사례입니다."

- 갈수록 지구온난화가 심화되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에 건축적으로 어떤 도전과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요즘의 급변하는 기후를 보면 거주환경 개선 문제를 넘어서 이제는 인류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프랑스 파리 등 그동안 냉방설비 없이 더위를 버텨온 지역에서도 지구온난화의 피해가 엄습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고자 에너지 효율성 향상,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 친환경 재료 적용, 기후변화 적응 설계 수행 등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패시브 디자인, 재생 가능 에너지 활용, 저탄소 건축 자재나 생분해성 재료 같은 친환경 재료 사용 방안 등이 연구되고, 최대의 에너지 효율을 도출하기 위한 AI 및 머신러닝 활용, 그린 빌딩 인증제도 같은 법규 강화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