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통상 규제에 한국 수출기업 '비상'
녹색전환연구소, 중소·중견기업 탈탄소화 위한 6가지 분야 개선점 꼽아
▲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현장의 소리를 듣다, 중소·중견기업이 원하는 탄소중립 지원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 그리니엄
탄소중립이 주요국의 주요 정책으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의 탈탄소화를 위한 지원이나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030년 전후로 저탄소 제품에 대한 시장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이때 대비가 늦은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토론회는 국회기후위기탈탄소경제포럼·녹색전환연구소·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동 주최했습니다.
지 부소장은 "(2203년 기준) 한국 사회의 수출 의존도가 86.1%에 달할 정도로 높다"며 "그럼에도 해외 주요국과 달리 거시적인 녹색산업 정책과 제도 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후통상 규제에 한국 수출기업 비상, 정부 지원 빈약"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지 부소장은 녹색전환연구소가 최근에 중소·중견기업의 탈탄소화 전환을 주제로 수행한 연구 결과를 공유했습니다. 온오프라인 구술 방식으로 지난 3개월(2024년 4월~6월) 수행된 연구입니다.
제조업 분야 수출 중소·중견기업 15곳, 수출 대기업 3곳 등 30곳이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대해 지 부소장은 "탄소중립이란 허들을 넘는 것을 목전에 두고 있다"며 "그런데 중소·중견기업은 키가 작고 돈도 인력도 모두 부족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탈탄소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탄소중립을 모르는 경우도 발견됐단 것이 그의 우려입니다.
이 가운데 수출기업들은 비상이란 것이 지 부소장의 설명입니다. 국내외 고객사로부터 탈탄소화를 요구받은 수출기업 중 일부는 재생에너지를 찾아 다른 국가로 사업장을 옮기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조사에 참여한 A기업 관계자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사례로 언급했습니다. 2023년 10월부터 시범 시행 중인 CBAM은 국내에서는 대표적인 기후통상 규제로 소개됩니다.
그는 "CBAM 대응이 필요한 중소·중견기업조차 아직 기후대응의 중요성이나 규제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습니다. 실제로 2023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 결과, 기업 10곳 중 8곳은 CBAM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지원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었습니다. B기업 관계자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컨설팅과 교육 지원은 제도 소개에 그치고 있다"며 "실무자들이 필요한 궁금증을 풍분히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기업 실무자들이 EU가 제공하는 실무 안내서까지 찾아서 알아보는 실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C기업 관계자 역시 "국내 지원사업이 단기적이고 유형적 설비투자"라며 "기업의 요구사항(니즈)에 충분히 부합하지 않다"고 꼬집었습니다.
▲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이 ‘현장의 목소리: 중소?중견기업이 원하는 탄소중립 지원 방안’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 그리니엄
중소·중견기업 위해선 로드맵·탈탄소 예산 수립 필요
이에 지 부소장은 중소·중견기업의 탈탄소화 지원 정책과 관련해 개선이 필요한 6가지 분야를 꼽았습니다.
① 산업 부문 탄소중립 정책·제도 기반 마련 ② 탈탄소 예산 ③ 정부 지원사업 ④ 배출량 측정 및 공시 ⑤ 온실가스 감축 지원 ⑥ 재생에너지 조달 순입니다.
먼저 지 부소장은 산업 부문 탈탄소화 정책과 관련해 거시적인 로드맵이 없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EU 등 주요국은 이미 시장이 아닌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입해 녹색산업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중장기적 예산 로드맵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50년까지 국내 기후금융 수요를 연간 최대 82조 원으로 추산합니다. 이 중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기후금융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부재합니다.
정부는 기후대응기금을 통해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따른 유상할당 수입을 재원으로 합니다. 그런데 탄소배출권 가격 하락으로 인해 재원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 부소장은 "(유상할당 수입을 통해) 기금 규모를 2조 원에서 늘린다고 했다"며 "그런데 배출권 가격 하락으로 인해 사실상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수혜 대상이나 주무부처 역시 불분명하단 점도 문제로 제기됐습니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예산에서 탈탄소화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낮습니다. 2024년 중기부 예산 14조 9479억 원 중 탈탄소화 예산은 5.2%에 그칩니다.
공시·배출량 측정 개선돼야… "탄소데이터 플랫폼 예고"
공시와 배출량 측정 관련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D기업의 관계자는 "정부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정책이 너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ESG 공시 의무화 시기가 불명확하여 기업 차원에서 대응이 어렵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인력 충원과 예산 계획을 수립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지 부소장은 "(국내외 고객사로부터) 원자재 단위까지 세세한 배출량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영업비밀 노출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한 기업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부가 배출량 측정에서 있어 적극적으로 탄소회계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또 '전과정 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박근형 산업통상자원부 기후에너지통상과 서기관은 "민관합동 산업 공급망 탄소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일본, 중소기업 직접 찾아가 지원사업 안내… 한국도 참고해야"
중소·중견기업들이 지원사업으로부터 접근성이 떨어져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현재 중기부 산하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여러 지원사업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기업마당' 서비스를 운영 중입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분류방식이 복잡해 하나하나 찾아 들어가야 한다"며 "탄소중립에 관한 분류 카테고리만 있어도 좀 더 수월할 것"이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이 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단 것이 지 부소장의 말입니다.
그는 일본처럼 '푸시형 지원체계'를 참고할 수 있는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 대표들의 고령화 등으로 지원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이에 금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직원들이 직접 중소기업을 찾아가 탈탄소화나 기후대응 지원사업을 설명하도록 합니다. 일본의 GX(녹색전환) 추진 전략에 따라 추진되고 있습니다.
지 부소장은 "중소기업은 기존 설비나 프로세스가 아니면 (지원사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단순 지원이 아니라 연구나 타당성평가 또는 실증 연구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국내 수출기업 상당수는 고객사로부터 RE100 이행을 요구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리니엄
"재생에너지 물량 부족"… 한국 공장 동남아로 이전 사례도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수출기업들의 애로사항도 공유됐습니다.
한 사물인터넷(IoT) 기업 관계자는 "기업의 재생에너지 활용은 기업의 경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자사의 사례만 하더라도 당장 대응하지 않으면 많은 고객을 잃을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기업은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에 가입한 유럽 공공부문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습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개별적으로 공급자로 찾아 전력구매계약(PPA) 계약을 체결한다며 비효율성을 호소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조달시장 여건이 바뀌어 한국을 떠나 태국·필리핀·베트남 등에 공장을 만들고 있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수출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 요구가 목전에 왔으나, 규모가 작은 기업 입장일수록 PPA나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가 채택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어렵단 것이 공통된 의견입니다.
재생에너지 전력과 관련해 절대적 물량이 부족하다는 하소연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가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수출기업의 16.9%가 고객사나 공급망 원청업체들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41.7%는 당장 올해나 내년부터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압박받고 있었습니다.
지 부소장은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나, 이들 중소·중견기업들을 어떻게 온실가스 감축의 길로 안고 갈 것인가에 대한 대기업의 책무도 고민해야 한다"며 "(중소·중견기업이) 배출량을 줄이는 만큼 인센티브도 주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은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기후통상 규제로) 힘든 와중에도 누군가는 돈을 벌고 있다"며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후테크·순환경제 전문매체 그리니엄(https://greenium.kr/)에도 실립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