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화물차에... 사람 살리는 '이것'이 숨어있었네
충남에서 서울로... 길 위에 겹겹이 놓인 친절과 배려를 발견했습니다
예상 운행 거리는 편도 167km, 차가 조금 막히니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20분.
며칠 전, 장거리를 뛰는 날이었다. 친정 식구들이 사는 인천에서 아빠의 칠순 축하 모임이 있다. 고속도로를 2시간 넘게 달릴 걸 생각하면 이미 피곤이 몰려올 법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만나는 걸음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다.
지방에 살기 시작한 후 수도권에 가야 할 일이 부득불 생긴다. 단순하게는 이런 날처럼 가족 모임이나 병원 진료 등 이유에서다. 서울에서 살다가 충남으로 내려와 산지 8년이 됐는데, 치과를 갈 때면 난감해지는 일이 꽤 있다.
가령 동네 병원에서 해줄 수 없는 치료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거나, 이 병원에서 직접 치료받은 치아가 아니면 진료를 해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엔 서울 살 때 다니던 치과로 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이따금씩 생긴다. 이런 연유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색깔 유도선.'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에도 고속도로 위에서 가장 헷갈리는 순간은 분기점이나 나들목이었다. 거기에 내비게이션까지 버벅거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 순간 목적지를 상실한 안내 멘트는 허공을 맴돌 뿐이다. 내비게이션만 의지하기엔 무언가 불안한 갈림길에서 등장하는 색깔 유도선은 구원자나 다름없다. 특히 길치들에겐 보이는 순간 환대받을 수밖에 없는 장치이다.
자녀의 색칠공부에서 시작된 색깔 유도선 아이디어
그런 색깔 유도선을 만든 이는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설계차장이었다. 2020년, 유퀴즈에 출현해 색깔 유도선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안산분기점에서 매년 높아지는 교통사고 발생률에 사망 사고까지 잇따르자 이에 대해 고심했다. 그러다 어린 자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도로에 '색칠'을 하면 어떨까?"하는 유도선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생명을 잃은 운전자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색깔 유도선이라는 명칭으로 안산분기점에 처음 설치되었다. 놀랍게도 설치 후 10년 간 3건의 사건만이 발생, 교통사고 발생률은 90%로 감소했다. 도로에 목적지 별로 다른 색깔을 칠한 유도선은 갈림길에 선 내겐 친절한 안내자가 되었다.
시골에 살며 장거리 운전을 할 일들이 있다 보니 색깔 유도선처럼 고속도로 위의 작은 요소들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그중 하나가 '잠 깨우는 왕눈이' 스티커였다. 이 스티커를 처음 봤을 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꼬마버스 타요'를 따라서 화물차 운전자들이 재미 삼아 붙인 건가 했다. 후에 알고 보니 한국도로공사에서 화물차 후미 추돌사고를 예방하려고 개발한 것이었다.
잠 깨우는 왕눈이는 눈(目) 모양의 반사지 스티커다. 주간에는 후방차량 운전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스티커로 유도하고, 야간에는 전조등 빛을 약 200m 후방까지 반사시켜 전방 주시 태만·졸음 운전을 예방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스티커 사용에 따른 화물차 후미 추돌사고 예방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4%가 효과가 있다고 답할 정도로 사고 예방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칠순 축하 모임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도 작은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있는 행담도 휴게소에 간식을 사러 갔을 때였다.
'뒷사람이 보이면 문을 잡아주세요.'
휴게소 입구 문 손잡이에 이 문구가 적힌 거울이 부착돼 있었다. 개인의 휴식을 취하거나 허기를 채우는 휴게소라고만 생각했는데, 문 앞에서 만난 사용자들 간의 배려 권장 문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모두가 장거리 운전이라는 수단으로 길 위에서 만난 나그네이지 않는가. 운전으로 지친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배려가, 쌓여있는 피로감을 조금은 더 덜어줄 수 있는 기분 좋은 행위가 될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졸음 쉼터에도 운전자를 위한 친절함이 머물고 있었다. 작은 매점과 화장실, 차를 세우고 쉬기에 적합한 주차장까지. 당연하게 여기고 잠시 쉬던 이곳은 어찌 보면 생명을 위한 충전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골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 헤아려 보니 길 위에는 겹겹이 놓인 배려가 있었다. 어쩌면 그 배려들이 이어준 다리를 건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속도로를 달리느라 피곤하고 익숙해서 몰랐던 사소한 친절함들. 그러나 이런 친절과 배려가, 그저 출발지와 도착지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이어주는 고마운 존재였구나 다시금 생각해 본다.
다가온 여름휴가철, 내 생명과 가족의 생명까지도 지켜주는 사소해 보이지만 위대한 친절함을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겹겹이 놓인 배려의 다리를 건너 안전하고 쉼 있는 휴가가 되기를 바란다.
며칠 전, 장거리를 뛰는 날이었다. 친정 식구들이 사는 인천에서 아빠의 칠순 축하 모임이 있다. 고속도로를 2시간 넘게 달릴 걸 생각하면 이미 피곤이 몰려올 법하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만나는 걸음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다.
가령 동네 병원에서 해줄 수 없는 치료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거나, 이 병원에서 직접 치료받은 치아가 아니면 진료를 해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엔 서울 살 때 다니던 치과로 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이따금씩 생긴다. 이런 연유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색깔 유도선.'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에도 고속도로 위에서 가장 헷갈리는 순간은 분기점이나 나들목이었다. 거기에 내비게이션까지 버벅거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 순간 목적지를 상실한 안내 멘트는 허공을 맴돌 뿐이다. 내비게이션만 의지하기엔 무언가 불안한 갈림길에서 등장하는 색깔 유도선은 구원자나 다름없다. 특히 길치들에겐 보이는 순간 환대받을 수밖에 없는 장치이다.
자녀의 색칠공부에서 시작된 색깔 유도선 아이디어
그런 색깔 유도선을 만든 이는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설계차장이었다. 2020년, 유퀴즈에 출현해 색깔 유도선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안산분기점에서 매년 높아지는 교통사고 발생률에 사망 사고까지 잇따르자 이에 대해 고심했다. 그러다 어린 자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도로에 '색칠'을 하면 어떨까?"하는 유도선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생명을 잃은 운전자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색깔 유도선이라는 명칭으로 안산분기점에 처음 설치되었다. 놀랍게도 설치 후 10년 간 3건의 사건만이 발생, 교통사고 발생률은 90%로 감소했다. 도로에 목적지 별로 다른 색깔을 칠한 유도선은 갈림길에 선 내겐 친절한 안내자가 되었다.
시골에 살며 장거리 운전을 할 일들이 있다 보니 색깔 유도선처럼 고속도로 위의 작은 요소들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그중 하나가 '잠 깨우는 왕눈이' 스티커였다. 이 스티커를 처음 봤을 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꼬마버스 타요'를 따라서 화물차 운전자들이 재미 삼아 붙인 건가 했다. 후에 알고 보니 한국도로공사에서 화물차 후미 추돌사고를 예방하려고 개발한 것이었다.
▲ '잠 깨우는 왕눈이 스티커'를 붙인 화물차 ⓒ 이지혜
잠 깨우는 왕눈이는 눈(目) 모양의 반사지 스티커다. 주간에는 후방차량 운전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스티커로 유도하고, 야간에는 전조등 빛을 약 200m 후방까지 반사시켜 전방 주시 태만·졸음 운전을 예방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스티커 사용에 따른 화물차 후미 추돌사고 예방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4%가 효과가 있다고 답할 정도로 사고 예방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칠순 축하 모임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도 작은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있는 행담도 휴게소에 간식을 사러 갔을 때였다.
'뒷사람이 보이면 문을 잡아주세요.'
휴게소 입구 문 손잡이에 이 문구가 적힌 거울이 부착돼 있었다. 개인의 휴식을 취하거나 허기를 채우는 휴게소라고만 생각했는데, 문 앞에서 만난 사용자들 간의 배려 권장 문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모두가 장거리 운전이라는 수단으로 길 위에서 만난 나그네이지 않는가. 운전으로 지친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배려가, 쌓여있는 피로감을 조금은 더 덜어줄 수 있는 기분 좋은 행위가 될 것 같았다.
▲ '뒷 사람이 보이면 문을 잡아주세요.' 행담도 휴게소 문에 붙은 배려 권장 문구가 인상적이다. ⓒ 이지혜
뿐만 아니라 졸음 쉼터에도 운전자를 위한 친절함이 머물고 있었다. 작은 매점과 화장실, 차를 세우고 쉬기에 적합한 주차장까지. 당연하게 여기고 잠시 쉬던 이곳은 어찌 보면 생명을 위한 충전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골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 헤아려 보니 길 위에는 겹겹이 놓인 배려가 있었다. 어쩌면 그 배려들이 이어준 다리를 건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속도로를 달리느라 피곤하고 익숙해서 몰랐던 사소한 친절함들. 그러나 이런 친절과 배려가, 그저 출발지와 도착지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이어주는 고마운 존재였구나 다시금 생각해 본다.
다가온 여름휴가철, 내 생명과 가족의 생명까지도 지켜주는 사소해 보이지만 위대한 친절함을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겹겹이 놓인 배려의 다리를 건너 안전하고 쉼 있는 휴가가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