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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들 꿰다보니 세상도 열렸다는 '단추 작가'

[인터뷰] '단추'로 전하는 희망과 응원... 세계 홀린 설치미술 작가 황란

등록|2024.07.28 14:46 수정|2024.07.29 09:47
동화 <단추 수프>의 주인공은 단추 하나로 맛있는 수프를 끓여 마을 사람들을 배 불리 먹인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황란 작가는 단추의 쓰임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단추 작가'라는 애칭으로 불리곤 하는 황 작가는 단추를 이용해 영혼을 위로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어낸다. 플라스틱 단추에서부터 한지 단추에 이르는 다양한 단추에 실, 핀, 크리스털, 비즈 같은 일상 재료가 추가된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찰나의 순간에 담긴 시간성과 끝없이 피고 지는 삶의 본질이 느껴진다.

황 작가의 작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올해는 11월 말까지 60회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서 글로벌 아티스트 그룹으로 이루어진 The Nine Dragon Heads 특별전시를 진행한다.

미국 휴스턴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이 황 작가의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있으며, '테니스의 황제'로 이름을 날린 로저 페더러 역시 매화 작품을 개인 소장하고 있다. 지난 7월 23일, 갤러리박영 청담(서울 강남구)에서 황란 작가를 만나 단추로 빚은 예술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황란 작가 초대전 <The Bright Beginning: 새로운 시작> 전시회 전경 ⓒ 갤러리박영


- 올해 초에 한강 채빛섬에서 선보이신 대형 설치 작품은 기사로만 접했는데 이렇게 작품을 실물로 보니 훨씬 큰 감동이 느껴집니다. 접근성이 좋은 도심 갤러리에서 작가님의 설치 작품과 평면 작품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장점 같습니다. 갤러리 박영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2007년에 뉴욕의 갤러리가 한국에 분관을 오픈했을 때 개인전을 초대받았습니다. 당시,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께서 제 작품을 컬렉팅하신 게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박영 갤러리 안수연 대표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역시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황란 작가'Ode to second Full Moon'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황란 작가 ⓒ 갤러리박영


- 작가님을 흔히들 '단추 작가'라고 묘사합니다. 설치 작품에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서 단추에 특히 매력을 느낀 이유가 무엇인가요?

"1997년에 미술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패션 회사에서 일하면서 자수 도안을 그렸어요. 그러면서 단추, 실 같은 재료들과 가까워졌죠. 그러던 중, 뉴욕시 곳곳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다 헐값에 팔리는 실과 단추를 봤어요. 각 가정의 역사가 담긴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들이 단추를 한 바구니씩 쌓아놓고 몇 달러를 부르더군요. IMF가 터진 직후라 형편이 좋지 않았던 제 눈에 다양한 형태의 값싼 단추들이 훌륭한 작품 재료로 보였습니다. 단추가 꼭 고군분투하는 제 모습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그 단추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실 단추는 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가 단추가 떨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갑자기 단추의 소중함을 깨달아요. 늘 곁에 계실 것만 같은 부모님이 어느 날 돌아가시고 나면 그제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요. 부재를 통해 존재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단추로 희망과 위로를 전하다

- 다양한 단추 중에서 단연코 가장 눈에 띄는 건 개선문과 에펠탑을 표현한 <The Beginning of The Bright>에 사용된 한글 모양 한지 단추입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개선문과 한글 단추가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어떤 계기로 두 가지를 결합하신 건가요?
 

The Beginning of The Bright220X270X5cm, hangeul buttons made with Korean paper, pins, beads on plexiglas ⓒ 갤러리박영


"2015년에 파리 유네스코 본부, 조안 미로갤러리에서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세종대왕 문해상 시상식이 열렸어요. 그때, 제가 한글 소재 작품을 하는 작가로 선정됐어요. 한지 단추 작업은 이미 이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어떤 작품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한글 자모음의 형태로 한지 단추를 만들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개선문을 왜곡시킨 이미지를 착안하게 됐어요.

개선문을 자세히 보시면 앞쪽은 하얀색이고 뒤는 회색입니다. 회색 부분은 그림자를 나타낸 거죠. 그 뒤는 아시다시피 에펠탑입니다. 개선문의 형태를 보면 오른쪽은 실제보다 높고 왼쪽은 낮게 왜곡된 게 눈에 띌 거예요. 건축물의 형태를 왜곡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고 싶었던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면과 내면이 다릅니다.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조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낮이 되기도 하고 밤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낮과 밤이 있듯이 건축물에도 낮과 밤이 있는 거죠.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인간의 본질과도 좀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자세히 보시면, 사람들이 긍정하며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제 마음이 보일 겁니다. 웃음소리를 나타내는 'ㅋ'과 'ㅎ', 오케이를 뜻하는 'ㅇ'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The Beginning of The Bright'을 부분 확대한 사진한글 자음 ㅎ, o, ㅍ을 이용해 긍정과 웃음을 표현했다 ⓒ 직접 촬영


- 매화 시리즈 중 <Becoming Again>은 유독 색감이 강렬합니다. 파란 배경과 노란 매화의 대조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Becoming Again242 x 3 x 12cm, paper buttons, beads, crystals, pins on plexiglas + plexiglas Frame 삶의 화려한 찰나를 표현한 작품 ⓒ 갤러리박영


"이 작품이 많은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같습니다. 좀 전에 갤러리를 방문하신 주한 EU대사도 이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파란 바탕에 노란색 별이 12개 그려진 EU 깃발과 이 작품이 꼭 닮았다며 한참을 보시더군요.

저는 매화 시리즈를 통해서 우리 삶의 화려한 찰나를 표현합니다. 실제로 매화를 보면 하나의 가지에 꽃송이가 이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나름의 철학을 담아 대상을 왜곡해서 표현합니다. 꽃이 만발한 절정의 순간을 표현하기 때문에 실제 매화와는 조금 다릅니다. 윤재갑 평론가께서는 '황란 작가의 영롱하고 화려한 작품의 살갗 속에 감춰진 핏줄과 세포를 새롭게 발견했다'라고 했습니다."

- 작품에 사용하시는 단추와 핀이 평범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재료를 구하시나요? 

"종이 단추는 직접 제작합니다. 처음에는 한 장의 한지로 종이 단추를 제작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지를 다섯 겹 붙인 다음 바깥쪽을 코팅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핀도 일반적인 건 아닙니다. 유럽에서 특수한 핀을 직접 공수해 와서 작품을 만듭니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단추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다 보니 설치 작품인데도 페인팅 작품처럼 섬세해 보인다는 평도 듣습니다."

- 작가님의 작품은 한 가지 주제에 국한돼 있지 않고 다채롭습니다. 여러 주제를 다양한 작품으로 변주하는 방식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런 겁니다. 누구에게나 화양연화같이 아름다운 순간이 있지만 만개한 것은 언젠가 지게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이 권력과 욕망을 좇으며 힘들게 살아갑니다. 저는 활짝 피어나는 절정의 찰나를 돌아보며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하나의 내러티브를 기와, 매화, 샹들리에, 봉황 같은 다양한 시리즈로 발전시켰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Beyond the Serenity (고요함 너머)paper buttons, beads, pins on plexiglass, painting, 100x100cm, 2024 ⓒ 갤러리박영


- 기와, 봉황, 매화같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십니다. 한국의 미를 널리 알리는 문화 외교관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입니다. 주로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는데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해외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오히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게 됐던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세계 각국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하다 보니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작가인 저만의 방식으로 현대적인 한국의 미를 알리고 싶었어요."

- 앞으로 어떤 전시가 예정돼 있나요?

"올해 9월에는 글로벌 아트페어 키아프(Kiaf Seoul)에 참여하고 10월에는 전속인 뉴욕의 Leila Heller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입니다."

- 작가님의 작품을 사랑하는 한국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전속 갤러리가 두바이와 뉴욕, 북경에 있었던 탓에 그동안 한국에서는 전시를 많이 못했어요.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자주 전시를 열고 작품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해 소통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차후에 기자의 SNS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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