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지리산엔 '재즈 복지'가 있습니다

[인터뷰] "돈보다 소중한 것들을 연주합니다" 살래재즈팀: 보석과 한결 ②

등록|2024.07.29 15:47 수정|2024.07.29 15:47
여기저기 재즈가 풍년이다. 유튜브에도 스탠다드 재즈부터 K-pop을 편곡한 재즈 플레이리스트가 넘쳐나고, 노동요가 필요한 많은 노동자들은 귀가 피로해지는 음악을 잠깐 내려놓고 재즈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이곳, 지리산 산골에도 재즈가 울려퍼지고 있다. 시골의 동네카페부터 각종 활동가들의 연대 현장까지, 자신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는 살래재즈팀 이야기다. 다정한 연주자, 살래재즈팀의 콘트라베이시스트 한결과 트럼페터 보석을 만나봤다.[기자말]

▲ 트럼펫을 부는 보석. 남원시 산내면의 카페 '플래닛커피' 에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공연한다. ⓒ 임현택


[지난 기사] 도시 아닌 시골에서 재즈하는 뮤지션들, 왜냐면요 https://omn.kr/29l2f

재즈는 옥상에서 나누는 농담 같은 것

- 재즈의 어떤 부분이 좋았나요? 

한결: "저는 원래 싱어송라이터가 되거나 인디밴드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재즈가 되게 싫었어요. 왜냐면 그동안은 정해진 음악만을 했었는데 재즈는 수업에 들어가면 갑자기 '솔로 해봐.' 이런 식으로 요구하거든요. 베이스 악기로 솔로 연주를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식으로 갑자기 즉흥 연주를 강요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죠.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는 계속 연주자의 기회를 푸시하더라고요.

그렇게 재즈가 지루하다고 생각할 무렵에 함께 다녔던 친구가 같이 재즈 스터디를 해보자 하면서 저를 이끌어줬어요. 그래서 20살부터 재즈를 시작한 거예요. 그 친구 계기로 유학도 가게 되면서 음악을 계속 하게 됐죠. 그때 재즈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재즈를 연주할 땐 기본적인 큰 틀만 잡고 세부적인 걸 정하지 않아요. 매번 연주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거든요. 10분 전에 연주한 걸 다시 해보라고 하면 똑같이 못 해요. 저희는 그냥 코드만 보고 연주하는 거죠. 만약 새로운 외부 연주자가 오면 또 새로운 대화가 이어지는 거예요. 이분은 여기서 이런 걸 주는구나, 하면 그걸 캐치하고 배워가요. 그러니까 사실 저는 제가 공연하면서 저 스스로에 대해 만족해요. 내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재즈를 계속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냥 오늘 기분에 따라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게 재즈의 매력 같아요."

- 재즈는 즉흥적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연주자가 서로 호흡하고 대화하는 연주라는 대중적인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재즈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은 그걸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연주자들끼리 경험하는 짜릿한 순간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요? 어떤 느낌인가요?

한결: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코드를 연주하다가 변화를 줬어요. 근데 피아노가 그걸 캐치하고 저를 따라와줄 때. 제가 표현하는 특정한 리듬을 다른 악기가 같이 연주할 때 그런 걸 느껴요. 그래서 보석한테 부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프리하게 연주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느낌에 맞춰서 가죠. 그때의 기분에 따라 여기에서 조용해졌으면 좋겠다 하면 다 같이 조용해지고 여기서 다이나믹하게 가면 좋겠다고 하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연주하는 거죠."

보석: "만약 우리가 A라는 곡을 연주하는데, 합주 이후에 한 명씩 솔로 연주를 한단 말이예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정해진 멜로디가 아니라 그날 그순간 생각나는 걸 해요. 그래서 엄청 유명한 B라는 곡의 한 소절만 솔로에 넣으면 재즈에서는 '저 사람 되게 농담 잘한다' 이런 느낌을 주는 거예요. 그때는 B곡의 메인 멜로디를 코드만 맞춰서 연주해도 무방하거든요. 이런 게 위트있고 귀여워보이는 거죠."

한결: "미국에서는 그럴 때 관객에서 반응이 와요."

보석: "그렇게 진짜 농담 주고받는 느낌도 있고요. 만약 잔잔하거나 무게 있는 발라드를 하면,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밤 12시에 편의점 옥상에 둘이 앉아서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는 느낌. (웃음)"

- 재밌는데요? 그런 기분은 악기의 구성에 따라서도 변할 것 같은데, 두 사람의 악기가 독특하잖아요. 각자가 느끼는 트럼펫과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보석: "우선은 공통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재즈 씬에서 콘트라베이스나 트럼펫은 연주자를 구하기 너무 어려운 악기예요. 그런데 하필 저희 둘이 구하기 어려운 악기를 맡고 있으니 피아노나 기타 같은,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악기만 섭외하면 되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가끔은 연주회 페이가 너무 적어서 외부 연주자를 섭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되게 걱정되거든요. 둘만 가서 구성이 너무 단촐해지면 어떡하지 하고요. 그런데 콘트라베이스의 물성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있어요. TV에서만 보던 악기 같은 포스가 있어서 빵- 소리만 나도 괜히 더 좋게 들리는 것도 있어요. (웃음) 희귀한 악기라서 많이 좋아해주시는 반응이 장점이에요."

한결: "제 경우엔 성향상 남을 도와주는 걸 되게 좋아해요. 케어해주는 역할을 좋아하는데 베이스가 딱 그런 포지션이에요. 남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포지션. 그런데 없으면 허전한. 그리고 베이스가 있으면 박자나 화성도 잡아주니까 다른 악기 연주자가 편하고요. 보통은 드러머가 그런 역할을 하는데 재즈 드러머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보통 밴드 합주에서 베이스는 가위바위보 져서 하는 악기, 기타 수 모자라서 하는 거예요. (웃음) 심지어 비틀즈도 그렇게 시작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도 베이스 기타를 보면 그 앞에만 서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스트라이커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수비수를 하는 느낌이에요. 없어서는 안 되는 받쳐주는 울림이 좋았던 것 같아요."

- 보석이 느끼는 트럼펫의 매력은요?

보석: "저도 한결과 일치하는 성향이 있어요. 드러나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요. 감초 같은 조연 있잖아요. 그런데 재즈에서 트럼펫은 그야말로 주연 역할을 해야 하는 악기라서 이게 내 성격과 맞나 하는 생각도 자주 해요. 저는 드러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한편으로는 저한테 그런 모습이 없다고 할 순 없거든요. 예를 들어 편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 광대가 되기를 자처하는 모습도 있는데 그런 모습이 되게 트럼펫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양가적인 마음이 트럼펫과 닮아있는 것 같아요."

한결: "보석없이 공연하다가 보석과 함께 공연하면 차이가 확 느껴지거든요. 한 번은 진주에 공연이 있었는데, 그전엔 한 번도 앵콜이 나오지 않다가 보석의 트럼펫이 합류하고 바로 앵콜이 나왔어요. (웃음) 이런 방점, 중심을 딱 잡아주는 트럼펫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꾸준한 연주의 소중함
 

▲ 구례 사포마을 골프장 반대 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보석, 네번째가 한결. ⓒ 살래재즈팀


-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음악, 미술, 디자인처럼 창작의 영역에 있는 전공자들은 루틴을 만들어서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을 것 같다는 환상이 있어요. 두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연주 연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결: "요즘은 매일 꾸준히 한다기보다는 한참 열심히 연습할 때보다는 덜 한 것 같아요. 한창 연습 많이 할 때는 안 하면 병 걸리는 사람처럼 연습했어요. 그런 압박감이 있었어요."

보석: "많은 연주자들이 그때 해 놓은 연습으로 먹고 사는 느낌이에요. 젊을 때, 입시 때 헬스장 다니듯이 연습을 했던 메모리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꾸준한 연습보다 꾸준한 연주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혼자하는 연습은 되게 한정된 행위거든요. 나 혼자 있는 집, 내가 원하는 걸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틀리면 다시 하면 되는 게 연습이라면, 연주나 공연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요.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고, 그런 감정적 압박속에서 내 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농촌 지역에 있으면 꾸준한 연주를 경험하기가 되게 어렵잖아요. 공연장이 있어야 하고, 그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다행히도 이런 시골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공연을 하고 있어요. 이 정기공연 덕분에 이웃 지리산권이나 저희와 지향점이 비슷한 단체나 행사에서도 저희를 불러주세요. 덕분에 이런 감각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요즘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그런데 합주가 되려면 우선 개인 연습이 되고나서 모이는 거잖아요. 개인연습과 합주까지 많은 에너지를 쓸 것 같은데 연습하고 만나는 과정이 부담되진 않나요?

한결: "저희 합주는 몇 번의 프로세스가 있는데 첫 번째 합주에 모였을 때 우선 가이드라인, 스케치를 줘요. 그래서 처음엔 부담갖지 않고 일단 와서 '이렇게 연습하면 되겠다' 정도의 느낌만 공유하는 거죠. 그러고나면 본인이 각자가 곡을 완성해오는 과정이라서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아요."

보석: "저는 음악을 하면서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다는 말을 체감 못할 때가 많았거든요. 합주도, 공연도 만나서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한 번만 만나진 않잖아요. 그런데 한결이 '싱크룸'이라는 화상 합주 프로그램을 알려줬어요. 화상 합주인데도 딜레이나 버퍼링이 없어서 어디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어요. 저희도 바쁠 때는 싱크룸으로 만나면서 부담없이 연습하고 있어요."

- 마을의 카페에서 매달 정기공연을 하고 있죠? 연습보다 연주가 중요하다는 보석의 말처럼 이곳에서의 꾸준한 공연이 두 사람에게 소중할 것 같아요.

한결: "한 달에 한 번하는 정기공연이 저에게 의미가 큰데요. 연습하면서 새로운 실험도 해보고 이 공연이 새로운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공연을 여는 카페 사장님이 감사하게도 공연이 꾸준히 열릴 수 있도록 후원을 해주고 계시고요.

저희가 기타나 피아노 연주자를 모시기 어려운데, 정기공연이 있기 때문에 이걸 계기로 외부 연주자를 섭외할 수 있게 돼요. 이렇게 쌓인 공연 레퍼토리를 갖고 다른 곳에서 공연을 다닐 수도 있고요. 처음엔 외부연주자 섭외가 정말 어려웠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온다는 것 자체가 부담되고, 열 곡이 넘는 곡을 준비해야 하니까 꽤 스트레스도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언제든지 불러달라는 연주자들이 많아서 되게 감사하죠. 이제는 공연 섭외가 오면 누구를 섭외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외부 연주자가 왔을 때 동네를 보여주면서 여기에 정착하라고 슬쩍 꼬시면서요. (웃음)"

보석: "그리고 플래닛카페의 정기공연은 티켓 가격이 없는 공연이지만 입장 시에 1인 1음료를 시키는 걸 권장드리고 있어요. 그 수익으로 저희에게 페이를 주시지만, 사실 그 수익으로는 저희 페이를 절대 맞출 수 없거든요. 나머지는 사장님의 사비라고 하더라고요."

한결: "처음엔 소액의 공연비를 책정해야하나 고민도 했었는데 첫 공연을 보시고 마을 주민 한 분이 저에게 개인적인 후원을 해주셨어요. 그걸 받는 순간 마을에서 저를 응원해주신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런 마을분들께 입장료는 받지 않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카페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장님은 처음부터 입장료를 생각하지 않으셨더라고요. 그런 점이 감사했죠. 그리고 요즘은 농번기라 처음보다는 공연을 찾는 분이 줄어들었지만, 사장님은 계속 이 공연이 유지되기를 바라셔서 또 감사해요."

보석: "그래서 사실 지역의 문화예술도 주거와 복지만큼 잘 다뤄져야 하고 소중하게 이야기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의 문화예술은 연주자인 저희와 이것이 지속되길 바라는 개인들의 마음으로 이끌어가는 느낌이라 이런 문제도 지역사회 안에서 공공의 이야깃거리로 잘 풀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 다음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클릭!)

진행 / 넉넉
글 / 승현
2024년 6월 21일,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글쓴이 : 승현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 저자.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살아간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