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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국물 한잔에 3천원... 베를린에서 무슨 일이?

[2024 글로벌리포트 - K푸드 월드투어] 이민자 많은 베를린, 김치를 흡수하다

등록|2024.08.23 07:04 수정|2024.08.23 07:04
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편집자말]
현재 베를린에서는 어느 마트를 가도 어렵지 않게 김치를 구할 수 있다. 굳이 아시아마트가 아닌 독일계 대형 슈퍼마켓을 가도 동원 양반김치, CJ 비비고 김치 등이 비치되어 있다.

불닭볶음면과 신라면은 수요가 높아지는 할랄과 채식 인구 시장을 겨냥해 비건 버전으로 유통 중이다. 소시지로 유명한 독일이지만 전국적으로 육류 섭취는 줄어드는 추세다. 알버트 슈바이처 재단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독일 내 1인당 연간 육류 섭취는 1991년 평균 63.3Kg에서 2022년 51.5Kg으로 18% 감소했다.

독일의 대표 드럭스토어로 한국의 올리브영과 같은 데엠(DM)에서는 심지어 자체 생산 라인에서 제작한 김치를 판매한다. 지난 몇 년간, 개인 사업자들이 만들어 다양한 방면으로 판매해 온 김치가 워낙 많았지만 독일 마트가 자체 제작, 판매한다는 것은 한식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한다.

독일 회사가 만들어 파는 김치

독일계 회사에서 제작되어 판매되는 김치 종류들독일 유명 드럭스토어 데엠(DM)과 유기농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Fairment(페어먼트) 회사의 비건 김치 ⓒ DM, Fairment

베를린 내에서 필자가 접한 김치 소비자들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어느 날 만난 카자흐스탄 출신의 사람은 필자를 만나자 본인이 구독하고 있는 한식 유튜버를 보여주며 직접 담그는 김치 자랑을 늘어 놓았다. 친구의 지인은 요르단 출신인데 베를린에서 자신만의 김치 사업을 하고 있다.

대형 유기농 슈퍼마켓에 유통되고 있는 페어멘트(fairment) 회사의 김치는 쿨터김치베간(Kulter Kimchi Vegan)이라는 이름으로 패키징되어 판매된다. 비건 발효 김치라는 뜻이다. 발효를 근간으로 해 종종 비교되는 독일 음식 사우어크라우트와 같은 라인업으로 소개된다. 이 회사 또한 아시아계가 아닌 독일인들이 2015년 설립한 회사다.

독일 대표 슈퍼마켓 레베에서는 자사의 웹사이트에 김치 레시피를 소개한다. 김치를 만든 후 적어도 72시간 발효 할 것을 추천한다는 소개 또한 적혀 있다. 이외에도 냉동 한국식 볶음밥, 미역줄기볶음, 한국식 삼각김밥, 만두 등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한국식 볶음밥 냉동 식품독일계 냉동식품 회사 Frosta(프로스타)의 제품으로 체코,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다, 루마니아에 대대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 FROSTA

베를린의 한식 흡수... 김치샷이라니!

베를린 북쪽, 백인 거주자 비율이 높은 프렌잘라우어 베르그 (Prenzlauer Berg)에 위치한 유명한 비건 카페 플랜트 베이스(Plant Base)에서는 김치와 함께 김치샷을 판매한다. 김치의 국물을 프로바이오틱 샷으로 소개해 한 잔에 판매하거나 블러드메리와 같은 해장 칵테일에 더하는 식이다.

김치샷 자체만으로는 2유로(한화 약 3000원), 거기에 토마토와 레몬 그리고 향신료를 가미한 것은 5유로(약 7500원)다. 감기에 걸렸을 때 생강과 레몬을 갈아 착즙한 샷을 사서 마시는게 유럽에서는 흔하기에 그런 맥락이라면 이상할 게 없지만 한국인의 정서로는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카페 플랜트 베이스의 메뉴판메뉴판에 김치샷과 김치샷이 들어간 칵테일이 적혀있다 ⓒ 최미연


비건과 발효, 유기농 그리고 더 나아가 글루텐이 함류되지 않은 식문화에 예민하게 맞추어 나가는 도시인만큼 한식 재료가 가미된 퓨전들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 모든 요소들을 충족시키는 게 단연 김치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레시피들에서 비 아시아계인들이 고추장을 'Gochujang'이라고 표기하며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는 것 또한 이제 흔해진 풍경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고추장 두부볼 레시피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유명 비건 레시피 크리에이터 요리스의 ‘고추장 두부 미트볼’ 레시피. ⓒ instagram.com/le_cocque

라이스 보울이라는 범주 내에 비빔밥과 샐러드 그 어디 사이를 경유하며 비한국인들에게 한식은 고루 다양한 채소를 발효된 두부나 김치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단이 되었다. 바비큐 체인점에는 한국식 치킨, 분식 그리고 정갈한 사찰음식까지 다양하다.

베를린은 특히 이민자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인만큼 국경에 인접한 타 유럽 지역과 인근 국가인 튀르키예에서부터 아시아 음식까지 수용속도가 빠른 편이다.

쌀국수, 케밥, 그리고 김치

베를린 외식 문화는 베트남 쌀국수 식당과 튀르키예 케밥이 먹여 살렸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수가 상당하지만 그 중에서도 베트남 식당 일부는 한식을 그들의 식당 메뉴에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 아시아 식당에서도 사이드 메뉴에서 김치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다. 비건 한식이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간 식당이었는데 모든 직원이 베트남 사람이었던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기억이다.

한식당 '수풀림'의 메뉴에는 이런 현지화된 퓨전 메뉴가 몇 개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쌈장 후무스와 김치 샥슈카, 김치 치즈 아란치니다. 후무스는 비건이자 글루텐 프리라는 표기까지 곁들여 있다.

비건 한식 백반집 달토끼에서의 식사감자밥과 백김치, 비건 고추장불고기에 시금치된장국 ⓒ 최미연

'소드 마스터 누들'은 재작년 여름에 문을 열어 직접 반죽한 면으로 손칼국수를 선보이고 있으며 '달토끼'는 매주 이틀 점심 시간대에만 문을 열어 제철 채소를 응용한 그 날만의 메뉴로 구성된 백반을 제공한다. 이 식당의 경우 매주 찾는 정기적인 단골들만 50여명 안팎으로 대부분 독일인이다.

그외 여느 한국에 있는 식당과 다르지 않는 찌개류와 전, 비빔밥, 갈비, 삼겹살 등을 판매하며, 떡볶이와 김밥, 잡채 등은 플리마켓에서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구글지도에서 베를린 내 한식당으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은 겹치는 체인점이나 퓨전 식당을 제외하고 대략 80여개 안팎으로 집계된다. 팝업이나 김치만을 제작해 판매하는 개인사업자는 포함되지 않은 수다.

코로나 이후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들을 통해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며 한식 문화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지고 있다. 식당과 카페가 즐비한 크로이츠베르그 번화가에는 최근 한글 적힌 유명 한식 체인 회사의 광고가 벽보로 붙었다. 한글로 독일어를 풀어 쓴 '레커(Lecker, 맛있다라는 뜻)'라는 단어와 함께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길거리음식 배달을 광고한다.

한식 길거리 음식(스트릿 푸드) 배달 광고한식 대형 체인 므아(MMAAH)의 배달 광고가 독일어와 한글로 함께 표기되어 있다 ⓒ 최미연

발효와 양질의 채소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한식 식재료가 아시아마트 이외 대형마트에 입점되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2024년의 독일이다. 김치만으로도 한식 내에서는 김치볶음밥, 김치전, 김치찌개 등의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지 않은가. 오래 저장 보관이 가능하고 유럽과 중동의 장류라고 할 수 있는 후무스와 같은 딥에도 잘 어울려 한식의 변화와 영향력은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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