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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중' 가고 싶단 아이... 하지만 시골에 남기로 했다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첫마음을 떠올리며 흔들리는 마음 다잡다

등록|2024.07.31 20:36 수정|2024.08.01 09:33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수 년 전, 겨울을 막 벗어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초록의 생명이 반가웠던 3월의 초봄이었다. 아파트를 벗어나 집을 짓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하고 여기저기 떠돌았다. 복숭아처럼 탐스러운 딸아이가 더듬더듬 말을 시작하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날이었다.

내 몸에서 나온 두 아이가 자라날수록 부모라는 이름은 두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생애주기마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고난을 맞닥뜨리고, 좌절하고 포기하기를 무한반복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는 삶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미니멀 라이프나 '아이와 2년만 시골에서 살아보기'와 같은 책에 푹 빠져 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꿈꾸고 그리는 세상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꿈만 꾸던 삶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30대 부부의 생애 최초 집짓기

외곽이어도 서울과 가까울수록 땅값은 비쌌다. 전세로 1년만 살아보고 결정하고 싶었지만, 주택 전세는 매물이 많지 않았다. 사기를 당할 뻔한 사건(?)도 있었다. 눈에 뭐가 씌어 홀린 듯 계약서를 쓰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적어도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저렴한 땅값의 넓은 부지를 가진 산속의 그림 같은 집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했다. 그러나 드넓은 잔디밭에서 축구할 수 있을지언정 두부 하나 사려면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30분을 나가야 했다. 주변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곳들이 대부분이었고, 상수도 시설이 없고, 축사가 있거나, 근처에 묘지가 있는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 주위에 아이들이 없었으며, 노인과 몸이 좋지 않아 자연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비중이 컸다.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단절되어 자연인처럼 살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비록 작지만, 도시가스와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여러 세대가 모여있는 주택 단지를 택했다. ITX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역도 가까웠다. 고요한 문장 속에 한 글자 한 글자 담고 있지만, 결심부터 완공하기까지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인구 6만의 소도시, 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땅에 작은 집을 지었다. 아담한 정원에 해마다 달리 피는 꽃을 지켜보고 있다.

9년 만에 찾아온 위기 

어느덧 9년의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시골살이는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만족스러웠다. 뛰지 말라는 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고, 마음껏 웃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구나! 뿌듯했다. 그러나 인생이 늘 좋을 수만은 없는지 뜻밖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해돋이딸아이가 그린 고성의 아침바다 ⓒ 원미영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한참을 방에서 꼼지락거리다 손에 뭔가를 들고나왔다.

"엄마, 이거 내가 그린 거야! 어때?"

고사리손으로 연필을 굴리고, 고심해서 색을 골랐을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작년에 온 가족이 고성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함께 해돋이를 봤던 것을 표현했단다. 고슴도치 엄마의 눈에는 피카소가 부럽지 않았다.

매일매일 즐겁게 그리던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예중'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에 예중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청천벽력 같았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아이는 꽤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는 얼마 전까지 다니던 학교 앞 작은 미술학원을 관뒀다. 섬세하게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학원에서 자주 하는 '만들기'가 싫다고 했다. 막상 학원을 관두고 다른 학원으로 옮기려니 선택의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녔던 미술학원보다 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곳은 중학생부터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갈만한 학원을 찾지 못했다. 국·영·수 교과 학원에 비해 예체능 학원은 더 제한적이었다. 시골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학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미술을 전공하고 대치동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했던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인은 나의 이런저런 고민을 듣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서울로 가는 게 맞아!"

서울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스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육뿐만 아니라 주거, 교통, 일자리, 복지 모든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누군가는 큰맘을 먹어야 가능한 것을 서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이었는지도 모른다. 억울하면 서울에 살지 그랬냐고 다그친다면야 뭐, 할 말이 없다.
 

한국 근현대미술 명작전무슨 생각하니 딸아? ⓒ 원미영


줄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

지인은 예중입시를 위해 주중엔 개인 교습을 받고, 주말을 이용해 이틀 동안 서울의 입시학원에서 수업받기를 권했다. 영어와 수학도 미술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했다. 감당해야 하는 교육비는 상상을 초월했다.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애초에 이곳에 집을 짓고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던 그 시작점부터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았다.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무한한 교육의 기회를 내가 빼앗은 건 아닐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누군가는 내 한 몸 불살라 자식 교육을 위해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런 부모의 불안감과 죄책감이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에 불을 지피는 동력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남편은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무리하더라도 서울로 가는 방향으로 고려해 보자고 했다. 나 또한 무조건 시골살이를 고집할 이유도, 꼭 여기여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도시로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영 불편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첫 마음을 되짚어 보았다. 발칙하고 무모했지만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 그 일념 하나였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아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너의 예중 입시를 위해 투자할 만큼의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그림을 계속 그리는 방법이 꼭 예중을 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간절히 원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있다고.

아이는 어렵지 않게 수긍했다. 여름 수국이 흐드러진 우리 집을 아끼고, 지금 다니는 학교와 친구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수국맛집해가 갈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여름수국 라임라이트 ⓒ 원미영


아이는 현재 미술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스스로 알아본 대회에 지원하여 입상하는 작은 성과를 냈다. 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지난달부터 아이와 나는 지자체 예술 지원사업의 일환인 문화창작공간에서 무료로 어반스케치를 하고 있다. 퇴근 후 허겁지겁 밥을 먹고 딸아이와 함께 두 시간 동안 수업을 듣는다. 아이는 수강생 중에서 가장 어리다. 열한 살과 60대가 함께하는 수업이다.

어른들 사이에서 칭찬받는 것이 좋은지 아이는 빼놓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론 수업을 들을 때마다 꾸벅꾸벅 조는 엄마의 저질 체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달란트를 한껏 발휘 중이다.

남에게 보이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즐기는 사회, 그런 세상이 꿈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기를 꿈꾼다. 옳은지 그른지 답을 알 리는 없는 육아의 세계 속에서 흔들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에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 위기를 잘 헤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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