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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맛 아이스크림과 남색 원피스 수영복의 가치

화려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가치로 꾸준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등록|2024.07.30 15:35 수정|2024.07.31 11:49
최근 직장에서 부원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살 일이 있었다. 부원 모두가 가능한 날짜로 어렵게 회식 날짜를 잡았는데 갑작스러운 내 개인 사정으로 취소됐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에 한 유명 체인 아이스크림을 사기로 했다. 커피는 매일 마시기도 하고 부장님이 한 번씩 쏘실 때도 있어서 다른 메뉴가 없을까, 고심한 끝에 결정한 메뉴였다. 무더운 날씨도 그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했다.

단톡방에서 각자 원하는 맛을 주문받았다. 부원들은 각각 자모카 아몬드 훠지, 애플 민트, 블루 서퍼 비치,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엄마는 외계인을 골랐다. 그리고 나는 그린티. 내 '최애' 아이스크림이다.

점심시간에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투명 유리로 덮어 놓은 냉장고 안에 여러 가지 색깔의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게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나서 직원이 작은 삽 같은 걸로 아이스크림을 푸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고른 그린티만 빼고 모두 이름도 비주얼도 개성 있고 예쁘다는걸. 또한 그린티만 단일 맛이라는걸.
  

▲ 개성있는 맛의 아이스크림 ⓒ 최윤진


자모카 아몬드 훠지는 초코와 커피가, 애플 민트는 청사과와 민트가, 블루 서퍼 비치는 블루 솔티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쿠키와 초콜릿이, 엄마는 외계인은 밀크 초콜릿, 다크 초콜릿, 화이트 무스에 초코볼이 콜라보를 이루고 있다. 베리베리 스트로베리에는 딸기 과육이 콕콕 박혀있고.

그 순간 재작년에 두 번이나 몰아보기를 했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회사에서 주인공 염미정이 여름휴가를 앞둔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극중 염미정은 말이 없고 본인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웃는 낯으로 경청하고 수더분하게 들어주는 인물이다.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동료: "미정이 넌 비키니 무슨 색이야?"
미정: "비키니 없는데."
동료: "그럼 원피스?"
미정: "응."
동료: "왜 이래? 해방될 여자가. 무슨 색?"
미정: "남색."
동료: (놀라는 표정으로)"헐..."


내가 고른 그린티 아이스크림이 남색 원피스 수영복만큼이나 개성 없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내 입에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녹차 맛 아이스크림을 먹고도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춰 다이어트를 하고 휴가지에서 멋진 비키니를 입고 자신을 뽐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물놀이를 할 수 있고 그걸로 행복하다면 된 것 아닐까?

이곳 아이스크림은 거의 한 가지 맛이 아닌 두 가지 이상의 맛들이 섞인 새로운 맛들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나처럼 심플한 한 가지 맛만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이스크림도 분명 존재한다. 단종되고 재출시되는 많은 아이스크림 속에서 쌉싸름한 녹차의 맛과 향을 가진 그린티 아이스크림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냉장고에 자리하고 있다.

원피스 수영복도 요즘은 '모노키니'라고 해서 원피스처럼 한 벌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비키니와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점점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자신만의 가치로 꾸준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이번 여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휴가를 다녀오고 아이와 함께 물놀이장에도 갈 것이다. 한 번씩 그린티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면서 말이다.
 

▲ 여름휴가 ⓒ pixabay(Kanen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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