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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꽃에 사나운 더위도 잠시 잊었다

함안 고려동유적지에 핀 배롱꽃과 무진정

등록|2024.07.31 08:44 수정|2024.07.31 10:15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배롱꽃이 붉게 피어나고 있다. 한낮의 폭염을 피해 아침 일찍 고려동유적지에 갔다. 배롱꽃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고려동유적지는 경남 함안군 산인면에 위치한 조선시대 고려유민들의 마을이다.
 

▲ 고려동유적지 배롱꽃 ⓒ 김숙귀


고려 말, 성균관 진사 모은 이오(茅隱 李午)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낙향하여 우거진 숲속에 배롱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마을을 둘러 담장을 쌓고, 고려의 유민이 산다고 해서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를 세웠다. 논밭을 일구고 우물을 파서 후손들이 자급자족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새왕조 조선에서 벼슬을 내려 불러도 가지 않았고, 아들들에게도 절개를 지켜 조선왕조에 출사하지 말 것과, 사후에 묘 앞에 글을 지워 백비를 세우고, 자신의 신주를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도록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후손들은 이오 선생의 뜻을 받들어 19대 600여 년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30여 호의 후손들이 재령 이씨 동족마을로 그 순수성을 이어가며 고려동이라는 마을 이름을 지켜왔다.
 

▲ 배롱꽃을 자미화라고도 부르는데 유적지에 자미단사적비가 서있다. ⓒ 김숙귀

 

▲ 우람한 배롱나무 ⓒ 김숙귀


마을 앞에 마련해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니 우람한 배롱나무들이 한껏 붉은 꽃을 피우고 서 있다. 자미단사적비 뒤쪽 그늘에 잠시 서서 붉은 배롱꽃을 바라보았다. 7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백일 동안 피고 지기를 계속한다하여 백일홍이라 부른다고 한다.
 

▲ 7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백일동안 피고지고를 계속한다는 배롱꽃. ⓒ 김숙귀


나즈막한 담을 두른 단아한 고택들이 있는 골목을 천천히 걷다가 선생이 머물렀던 종택을 구경했다. 휴식공간이었다는 자미정 대청마루에 앉았다. 포은 정몽주 선생 못지 않은 이오 선생의 충절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고 붉은 배롱꽃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 종택에서 휴식공간이었던 자미정 ⓒ 김숙귀

 

▲ 언덕 위에 날아갈 듯 앉은 무진정 ⓒ 김숙귀


다시 가까이에 있는 무진정을 찾았다. 무진정은 조선 중종때 무진 조삼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조선 선조때 함안군수로 부임한 정구가 군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매년 음력 4월 초파일에 무진정에서 낙화놀이를 하였는데 현재까지 함안의 고유 민속놀이로 전해온다.
 

▲ 자미정의 넓은 대청마루. 바깥 뜰을 내다보고 앉아 있으면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어도 시원할 것만 같다. ⓒ 김숙귀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가운데 불놀이로는 최초로 제33호 문화재로 지정된 행사이다. 정자는 주세붕 선생이 기문(記文)을 쓸 정도로 작은 연못 언덕 위에 절묘하게 앉아있다. 정자 입구에 있는 배롱나무에도 꽃이 활짝 피었다. 배롱꽃을 마주하며 사나운 더위를 잠시 잊었다.
 

▲ 경남 유형문화재 제158호인 무진정.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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