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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비상사태, 전문가들이 급박하게 제안한 것

[소셜 코리아] 기후위기·양극화·저출생에 모두 대응... 참여소득이 마중물 될 수 있어

등록|2024.08.01 16:28 수정|2024.08.01 16:28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 지난 1월 24일 오전 인천시 동구 만석동 한 자활 사업장에서 쪽방촌 주민들이 볼펜을 조립하고 있다. 인천 쪽방촌 주민들은 최근 자활 근로 등을 통해 성금 221만원을 모아 16년째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여름도 집중호우에 이어 혹독한 더위가 예사롭지 않다. 21세기의 세 번째 10년 주기 중턱을 넘어가는 지금 생물다양성 상실, 감염병 확산과도 결합한 '기후비상사태'는 지구라는 별을 지탱하기 위해 '생태복지사회'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생태복지사회라는 말은 생태복지국가라는 용어만큼이나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복지국가, 나아가 진정한 복지사회로 나아가려면 기후위기와 양극화, 저출생을 초래하는 돌봄의 위기 모두에 대응하는 생태복지의 제도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안 고프 영국 배스대학 교수는 자신의 저서 <열, 탐욕, 인간욕구>(2017년)에서 사회정책을 "사회적 위험에 대한 공공관리"로 규정하면서 "서구에서 공공의료, 기초교육, 공장입법, 사회보험 등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정책들이 2차세계대전 후 복지국가로 제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기후변화가 압도적으로 새로운 위험일 뿐 아니라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생태사회적' 위협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태복지국가'의 대안을 고민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고, 생태복지사회를 향한 실천도 아직까지 미약한 수준이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는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2021년)에서 "근대 팽창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내장(內張)문명이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내장문명을 포스트성장(postgrowth)의 사회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한국을 비롯한 북반구 부국이 최근에 경험하는 저성장 기조 역시 이러한 내장문명의 필연적 귀결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서구에서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만든 경제성장은 더 이상 기후변화와 사회적 배제라는 생태복지의 걸림돌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에 펴낸 보고서 <한국 복지국가의 진단과 전망>에서 최영준 연세대 교수 등은 양적 성장의 패러다임을 넘어 환경과 삶의 질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경제체계 및 복지의 질적 성장을 위해 '참성장(genuine progress) 전략'을 제안한다.

한국에서 생태복지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긴급한 과제와 관련하여, 필자는 많이 알려진 보편적 기본소득제도에서 더 나아가 보편적 기본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 UBS)와 연계하는 '참여소득(participation income)'이라는 생태복지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생태복지국가 전환, 근본적이고 급진적이어야
 

▲ 2023년 10월 21일 오후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2023 기회소득 예술인 페스티벌’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도자물레 체험을 하고 있다. ⓒ 경기도


서구적 전통의 복지국가는 자연 정복에 바탕을 둔 생산주의에 치우쳐, 가정의 재생산 노동이나 자연에 대한 돌봄에 비해 노동시장의 교환가치, 임금계약 등을 더 중시해왔다. 그러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포스트성장이라는 새로운 전망은 시민 욕구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사회적 기초와 지구라는 행성의 경계 안에서 안전한 생태계 모두에 초점을 맞추는 '생태복지국가'로 집약되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생태복지국가 전환은 기존의 복지국가체제에 기후위기 극복에 필요한 생태 서비스를 접합하는 국가역량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기업, 시민사회 등의 역량도 결집하는 다양한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동안 생태복지사회를 향한 제도화 시도로, 부유세, 탄소세, 녹색 에너지 및 탄소포집에 대한 공공투자 등을 이뤄왔다. 유의할 것은 생태복지국가로의 전환은 위의 시도들이나 이 글에서 다루는 참여소득 도입 같은 것들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급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국가를 둘러싼 갈등은 대개 효율성이 인간의 사회적 삶을 얼마나 지배하는가라는 문제와 관련된다. 생태복지사회로 가는 길은 계약보다 도덕에 근거한 사회관계,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책임, 개인적 자원주의(voluntarism)보다 집합적 의무, 개별 효용극대화에 대립하는 신성한 것에 대한 존중 등을 얼마만큼 현실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한다 하더라도, 합리주의, 개인주의, 소비 및 경쟁 등 자본주의의 지배적 가치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메리 P. 머피는 <생태사회적 복지의 미래 창조>(2023년)에서 "생태복지국가에 대한 상상이 규범, 행위 및 태도를 조정하는 것은 물론, 돌봄, 일, 소득, 서비스 등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것에 근거한다"고 밝힌다. 이와 함께 피오나 듀크로우 등은 "생태복지사회가 '노동과 돌봄에 걸친 시간의 재분배'를 주된 쟁점으로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유럽노조회의가 제안한 '더 짧게 일하고 더 길게 살자'라는 구호는 젠더 간 돌봄 재분배와 여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는 간명한 요구다. 나아가 돌봄은 '종의 활동'으로, 복합적 삶을 지탱하는 자신, 타인 및 자연환경에 대한 보살핌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OECD 가입국의 공통 관심사인 연금 수급연령 문제 또한 '삶의 시간 상품화'를 둘러싼 의제이며 생태복지제도의 구상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변수다.

사회보장체제는 한번 확립되고 외부의 정치사회적 충격이 없다면 스스로 강화,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는 작년에 발표한 논문 '발전국가, 수출지향 산업화, 한국의 사회보장체제'에서 "발전국가 맥락에 있는 한국의 수출지향 산업화가 서구적 의미의 복지국가 형성을 제약해왔다"고 언급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수출 일변도 정치경제 구조 때문에 국제경쟁력을 저해할 노동비용 상승을 우려해 사회보장체제의 범위, 급여를 미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1987년 이후의 노동조합운동 역시 대기업 분배수요를 초점으로 함으로써 사회복지의 요구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조직화된 노동자'의 실제적 인센티브를 잠식해 왔다"고도 파악한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주창하며 복지국가의 세계적 추세인 근로연계복지의 방향에 처음으로 동참했다. 생산적 복지는 당시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 지원의 대가로 취창업에 대한 참여를 의무화하는 자활사업의 이념이기도 했다. 즉 복지국가 경험이 전혀 없었던 한국에서는 소득을 보조하는 일자리에 대한 재원 확보를 위해 복지의 생산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후 정부들에 이어온 신자유주의적 관점의 소득지지는 재생산 노동을 징벌화하고 수급자에게 유급노동을 의무화함으로써 오히려 생태사회적 활동에 대한 참여를 저해해왔다. 이에 반해 기후위기 시대 생태복지국가의 제도 설계는 노동에 대해 생산주의적 고용에 국한하지 않고 생태사회적 재생산으로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발상의 전환을 요청한다.

기본소득제도는 근로연계복지와 달리 일에 대한 강제성이 없는 특성이 있다. 이 제도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노동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돌봄 노동처럼 낮은 보수의 일도 긍정적으로 유도하는 이점을 지닌다. 그리하여 보편적 기본소득은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노동하는 능력과 노동조건 개선 둘 모두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참여소득제도 당장이라도 실행 가능
 

▲ 참여소득의 핵심은 사람들을 돌봄, 생태서비스 제공 활동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 셔터스톡


한국처럼 UBS가 매우 초보적인 데다가 자유주의 복지 전통이 지배적인 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이 좀 더 빠르고 손쉬운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기본소득제도의 지향에는 민주주의, 돌봄 및 생태적 참여를 향한 전사회적 목표와 사회보장제도의 현금 이전을 융합하는 통찰이 미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 선택에 대한 개인 자유의 무조건적 극대화로 인해 과잉소비를 내재하는 데다가 교통, 먹거리, 생태 서비스 등 핵심적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외면되는 단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따라서 생태복지사회의 제도화와 관련해 필자는 보편적 기본소득보다 UBS에 좀 더 유념하여 주목해보고자 한다.

UBS는 커먼스(공유자원)와 같은 이용자 참여의 경제민주주의 실험을 통해 자율적이고 분배적인 공공서비스를 촉진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덜 소비지향적이면서 좀 더 생태적인 UBS가 기본소득을 대체한다면 공동체적 삶 속에 연대를 창출하는 비상품화된 기본서비스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이 글이 생태복지사회의 마중물로 소개하는 '참여소득제도'는 UBS를 통해 기존과 다른 형태의 노동과 돌봄 제공, 민주적 참여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한 시간 회복을 가능케 하는 국가 소득지지의 사례이다. 참여소득은 기후위기 극복이나 공동체적 돌봄 등에 참여하는 최소소득의 하한을 밑도는 사람들에게 '개인소득'을 기반으로 지급하는 급여이다. 이 제도의 개인화된 측면은 가구 단위 소득자산 조사에 의한 소득지지에 비해 낙인화의 위험을 줄이고 돌봄을 둘러싼 젠더 평등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참여소득의 핵심은 소득이전 프로그램이 현금부조뿐 아니라 사람들을 돌봄, 생태서비스 제공 활동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이 제도는 직접적 생태보전 활동, 돌봄의 젠더 간 공유, 민주적 숙의에 대한 종합적 참여 등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그러한 인센티브에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개인소득을 제공하거나 그러한 활동을 가능케 하는 지방정부 생태 프로그램, 시민사회 프로젝트, 사회적경제 기업의 창업 등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참여소득제도는 강력한 지방자율성과 권리에 기초한 사회민주주의적 거버넌스가 구비된 복지국가에서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 아일랜드 등 유럽에 비해 이러한 제도 여건이 미비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근 30년의 역사를 지닌 자활사업과 사회적경제 활동 등을 바탕으로 기후위기 극복에 밀착된 UBS를 창의적으로 고안해낸다면 당장이라도 실행 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가 작년에는 예술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올해는 체육인, 농어민, 기후행동, 아동 돌봄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기회소득제도는 참여소득의 직전 단계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이 가운데 기후행동 기회소득은 걷기, 자전거 타기, 배달앱의 다회용기 사용 등 친환경 활동 15개를 인증한 경기도민 약 10만 명에게 최대 연 6만 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고 있다.
 

▲ 한상진 / 울산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 한상진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한상진 울산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의 관심 영역은 환경문제를 사회복지와 연계하여 체제전환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탈식민성이나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 차원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 방향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환경사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저서로 <생태복지사회로 가는 길>, <먹거리 안전의 생태사회학>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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