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활 쏘는 사람들이 올림픽 양궁 보고 가장 놀란 순간

어느 국궁 수련자의 올림픽 양궁 관전기... 인상 깊은 점 세 가지

등록|2024.08.02 07:00 수정|2024.08.02 07:00
2024 파리 올림픽 관련 낭보가 연일 들려오고 있다. 종목 불문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특히 올림픽 효자 종목인 양궁에서의 눈부신 성과에 온 국민이 환호를 보낸다.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10연패 신화를 달성한 데 이어, 남자 대표팀 역시 단체전 3연패를 달성하면서 다시 한 번 양궁 강국의 위상을 드러낸 것이다.

양궁 대표팀의 성취에 한국인으로서 뿌듯하고 감격스럽다. 특히 취미로 활쏘기(국궁)를 배우고 있기에, 남달리 관심과 애정을 갖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본다.

어디 나뿐일까. 요즘 활터(국궁장)에 올라가면 모두가 양궁 얘기뿐이다. 확실히 활 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관심이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활터 휴게실에 설치된 TV로 양궁 경기를 함께 관람하며, 한마음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양궁과 국궁은 쏘는 방법·자세·장비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크다. 그러나 어쨌든 활쏘기를 수련하는 입장에서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생각보다 공감할 부분이 많다. 생각지 못한 데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국궁 수련자로서 올림픽 양궁을 보며 흥미롭게 생각한 관전 포인트들을 몇 가지 언급해볼까 한다.
   
[관전 포인트 ] 손등에 벌이 앉아도 10점을 맞히는 '집중력'
 

▲ 김제덕이 7월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 결승전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에서 과녁을 향해 활을 당기고 있다. ⓒ 연합뉴스


활쏘기를 연마하는 입장에서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보며 가장 감탄했던 포인트는 선수들의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수많은 관중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한데도, 일말의 동요 없이 깔끔하게 발시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흡사 로봇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남자 단체 준결승전 당시 김제덕 선수가 보여준 집중력은 대단했다. 활시위를 당긴 순간, 갑작스레 날아든 벌이 얼굴과 손등에 달라붙었음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김제덕 선수는 그 상황에서도 10점을 득점해 내고야 말았다. 당시 김제덕 선수의 분당 심박수(bpm)는 80bpm대로 일반 성인이 휴식을 취하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평온한 심박수였다 한다.

국궁 역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주변의 시선과 소음은 모든 궁사들의 숙적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옆에서 기침하는 소리, 선풍기 바람조차도 거슬린다며 항의하기도 한다.

나 역시 옆에 선 사람이 내가 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선이 의식돼 집중력을 잃곤 한다. 그 상태에서 쏜 화살이 과녁을 향해 제대로 날아갈 리 만무하다. 그때마다 옆 사람을 괜히 원망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김제덕 선수를 비롯한 국가대표들의 놀라운 집중력을 보면서, 결국 모든 문제는 내 자신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궁을 하는 사람들이 늘 되새겨야 하는 가르침 중 하나가 바로 '반구저기(反求諸己: 일이 잘못됐을 때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뜻)'다.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보며 새삼 그 가르침을 떠올렸다.

[관전 포인트 ②] 활쏘기의 가장 큰 변수 '바람'
 

▲ 7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 경기에서 남수현 선수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 연합뉴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박해일 주연의 영화 <최종병기 활>을 통해 유명해진 대사다. 사실 이 말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계산이 선행돼야 하는 것 아닌가.

활을 쏠 때 가장 큰 변수는 바람이다. 활터에는 풍기(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깃발)가 있는데, 활을 쏠 때마다 바람의 방향을 읽고 계산한 뒤 적절한 조준점을 찾아 겨냥한 후 발시하게 된다. 바람을 제대로 읽는 데 실패한 경우 화살은 어김없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이번 올림픽에서 선수들을 가장 애 먹인 것도 바로 바람이었다. 여자 단체 결승전 당시 남수현 선수의 화살이 8점 표적에 꽂히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아나운서가 "아, 바람이 불었어요"라며 장탄식을 내뱉었다. 남자 양궁 대표팀 김우진 선수는 먼저 경기를 치른 여자 대표팀 선수들에게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물어보면서 나름대로 철저하게 전략을 수립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훈련 때도 일부러 거센 바람이 부는 바닷가 근처에서 훈련을 했다고 알려졌다. 여자 단체전 10연패와 남자 단체전 3연패라는 빛 나는 성취 뒤에는, 바람을 읽고 계산하기 위한 선수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현장에서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며 서로를 응원한 팀워크가 있었다.
   
[관전 포인트 ③] 국가대표가 되기까지의 '노력'
 

▲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 마련된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궁은 "금메달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 되는 게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철저한 경쟁을 통해 실력이 검증된 이들로만 국가대표팀을 꾸리기 때문이다. 2020 도쿄올림픽 3관왕이자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안산 선수의 경우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져 파리올림픽 진출이 좌절된 바 있다. 참고로 국가대표로 뽑히기까지 다섯 차례 선발전에서 쏘는 화살만 4000개라 한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피눈물 날 정도로 노력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많은 반성을 하게 됐다. 사실 나 역시 활쏘기를 무척 즐기지만, 아쉽게도 번번이 승급심사에서 떨어질 정도로 좀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나의 재능 없음을 자주 한탄하곤 한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도 탈락이라는 굴욕을 맛봤고,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4000발이 넘는 화살을 쏠 정도로 살을 깎는 노력을 한다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새삼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단언컨대 나는 그 정도까지의 노력을 기울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경기를 보며 쏘는 족족 10점을 맞히는 대표팀의 모습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역시 우리는 활의 민족"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활쏘기 DNA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선수들의 눈물 겨운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팀, 끝까지 응원합니다
 

▲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 여자 대표팀이 금메달을 딴 날, 나 역시 경남 밀양에서 열린 전국 남녀궁도대회에 출전해 활을 쏘았다. (2024.7.29 / 밀양 영남정) ⓒ 김경준


우리 선수들 모두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친 양궁 국가대표팀이 무척 자랑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앞으로도 양궁 남녀 개인전 및 혼성 단체전 등이 남아있다. 모두들 후회가 없도록 마지막까지 잘 싸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역시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활터에 올라가 활시위를 가득 당겨볼 생각이다.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팀, 파이팅!

* 이 기사를 쓴 김경준 시민기자는 <오마이뉴스>에서 국궁 칼럼 '활 배웁니다'(https://omn.kr/26z2b)를 연재 중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