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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주전이 세운 시즌 50도루 금자탑... 조수행의 재발견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60도루+ 90%대 성공률 동시 달성' 주인공 될까

등록|2024.07.31 14:25 수정|2024.07.31 14:25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외야수 조수행이 '21세기 최소 경기 50도루'라는 금자탑을 수립했다. 조수행의 생애 첫 50도루 커리어 하이 기록이기도 하다. 만년 백업선수에서 30대를 넘긴 나이에 늦깎이 주전으로 도약하면서 인생 시즌을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두산은 지난 30일 광주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12대 7로 승리하며 최근 4연패의 부진에서 탈출했다. 선발 곽빈이 6이닝 3피안타 4사사구 2실점의 퀄리티스타트로 호투하며 10승 고지를 달성했고, 타선에서는 양석환(4안타 1홈런 3타점), 강승호(3안타 1홈런 3득점)을 앞세워 18안타 2홈런으로 모처럼 폭발했다. 두산은 시즌 52승 2무 50패를 기록하며 KT를 제치고 다시 리그 5위를 탈환했다.

또 이날 경기에서 조수행은 50도루 달성이라는 대기록도 수립했다. 우익수로 선발출장한 조수행은 4타수 1안타 1타점 1도루를 기록했다. 두산의 5회 초 공격 과정에서 타석에 들어선 조수행은 1타점 우전 적시타를 때린 뒤, 대타인 제러드의 타석에서 2루 도루에 성공하며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 30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두산 5회초 2사 1루 대타 제러드 타석 때 1루주자 조수행이 2루 도루에 성공하고 있다. KIA 수비는 박찬호. 2024.7.30 ⓒ 연합뉴스


도루 단독 1위 기염

올 시즌 도루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는 조수행은 시즌 94경기 만에 50도루 고지에 올랐다. 이는 2000년대 이후만 놓고 보면 '최소 경기 시즌 50도루' 달성 기록이다.

프로야구 역대 최소 경기 50도루 기록은 이종범(해태)의 1994년 63경기(시즌 최종 84도루)였다. 이밖에 김일권(해태, 1982년 68경기), 전준호(현대, 1995년 76경기), 이순철(1988년 87경기) 등 조수행보다 앞선 기록들은 대부분이 프로 초창기인 80~90년대에 몰려있다. 도루의 숫자와 비중이 감소한 21세기 이후로는 2008년 이대형(LG)과 2010년 김주찬(당시 롯데)가 각각 103경기 만에 50도루를 달성한 것이 종전 기록이었다.

또한 시즌 50도루는 2016년 삼성 박해민(52개, 현 LG) 이후 무려 8년 만의 기록이기도 하다. 당시 박해민은 141경기를 소화하고 달성한 기록이었다. 올 시즌 두산이 40경기를 남겨놓고 있는 현재, 조수행은 2015년 박해민(60개) 이후 9년 만의 60도루 달성도 충분히 가능한 페이스다. KBO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60도루는 김일권-이종범-전준호-이대형-박해민-김주찬 등 단 6명의 선수만 경험한 대기록이다.

소속팀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한정하면 단일 시즌 최다 도루는 정수근이 1999년에 기록한 57개였다. 조수행은 두산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도루 신기록 겸 최초의 60도루 기록 보유자로 등극할 수도 있다. 현재 도루 공동 2위인 팀 동료 정수빈과 롯데 황성빈(이상 38개)과의 격차가 어느덧 12개까지 벌어지며 조수행의 생애 첫 도루왕 등극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다.

더구나 조수행은 올 시즌 56번의 도루를 시도해 단 6번만 실패하며 성공률이 무려 89.3%에 이른다. 올 시즌 도루 탑10중에서 조수행보다 성공률이 높은 선수는 김도영(KIA, 29도루, 90.6%)과 김지찬(삼성, 28도루 90.3%) 2명뿐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도루를 시도하면서도 높은 성공률을 유지하는 조수행의 효율성이 더 돋보인다.

또한 조수행이 남은 경기에서 성공률을 조금만 더 끌어올린다면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60도루+ 90%대 성공률 동시 달성'이라는 대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대기만성 후보의 희망

한편으로 만년 백업 요원 정도로만 여겨지던 조수행의 재발견은 프로야구 대졸 출신들과 대기만성의 후보 선수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조수행은 건국대를 졸업하고 2016년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지명된 이래 오직 두산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해 왔다. 일찌감치 탁월한 주루와 수비 능력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 최전성기의 두산 왕조가 정수빈, 김재환, 민병헌(은퇴), 박건우(현 NC) 등 외야 자원이 워낙 쟁쟁했던 탓에 조수행이 기회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수행은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2023년 이전까지 2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시즌이 전무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2021시즌부터 첫 20도루를 돌파하며 대주자와 대수비 요원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대의 커리어를 백 업요원으로 만족해야 했던 조수행은 2023시즌부터 이승엽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며 뒤늦게 전환점을 맞이했다.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장려하는 이승엽 감독의 성향에 따라, 2023시즌 조수행은 커리어 최다인 126경기 249타석을 소화하며 48안타 26도루를 기록하며 출전 시간을 늘렸다. 2024시즌 들어서는 마침내 주전급 외야수로까지 비중이 높아졌다. 조수행은 올 시즌 94경기에 나서서 벌써 274타석을 소화하며 61안타로 자신의 커리어하이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조수행에게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뛰어난 주루능력에 비해 아직은 부족한 타격 능력이다. 커리어 통산타율이 2할 5푼4리(955타수 243안타)에 불과한 조수행은 올 시즌도 타율 .258, 출루율은 .326에 그치고 있다. 꾸준히 선발로 출장하면서 초반 4월까지는 한때 3할 타율에 근접하기도 했으나 시즌을 거듭하며 타율을 점점 까먹었고, 7월에는 1할 9푼 4리(36타수 7안타)까지 떨어졌다.

조수행은 선구안이 뛰어나거나 볼넷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대신 빠른 타이밍에 승부를 걸어서 준수한 컨택률로 인플레이 타구를 때려내고 빠른 발로 내야안타를 만들어내는 유형의 타자다. 주로 9번 타순에 배치되고 있지만 하위타선에서 조수행이 1루에 나가는 순간, 상대팀에게는 두산의 상위타선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리그 최고의 주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고민을 선사한다. 조수행의 출루가 늘어날수록 두산의 공격력이 살아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두산은 이승엽 감독이 부임하기 직전인 2022시즌 팀 도루 7위(90개)에 그쳤지만, 2023시즌 2위(133개), 2024시즌에는 현재 벌써 지난 시즌의 기록을 경신한 136개로 선두 LG(138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베이스 확대와 호타준족형 타자들의 약진으로 '도루의 르네상스'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도루의 비중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흐름이다. 특히 조수행과 정수빈까지 도루 1,2위 선수를 동시에 보유한 두산의 '발야구'는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가을야구 진출을 노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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