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법 반대는 사실왜곡" 민주당에 재반박한 한동훈, 사실일까?
세 차례 걸친 회의록 살펴본 결과, 민주당 의원들 오히려 개정 필요성에 동의해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형법 제98조인 간첩법의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막았다며 비판하고 나서자 이를 두고 사실 공방이 벌어졌다.
30일 한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을 누가, 왜 막았습니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중국 동포에게 해외 정보요원들의 신상정보 등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건을 언급하며 "황당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간첩죄로 처벌 못합니다. 우리 간첩법은 '적국'인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민주당은 곧바로 반박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한 대표가 "마치 민주당이 법 개정을 반대해 이번 사태에 대한 처벌이 어렵게 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며 "당시 민주당은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합의안 마련 및 이견 조율을 전제로 법안 심사에 임했던 것으로 해당 법 개정을 반대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반박에 한 대표는 재반박하고 나섰다. 한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에서 '간첩법 개정에 대해 반대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라며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법사위 제1소위에서 3차례나 논의되었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법안 처리를 막았다"고 응수했다.
이어 한 대표는 "국가기밀이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사안이 무엇인가", "군사기밀보호법 등 다 같이 놓고 심의 해야 한다", "간첩이라는 말이 너무 센 말이다" 등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회의에서 말한 발언들을 인용하며 "민주당이 이번 국회에서도 이런 입장이라면 간첩법은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법무부 의견 충돌에 향후 검토로 결론... 국힘 의원도 동의
▲ 이러한 양측의 의견에 소병철 민주당 의원도 "그래서 오늘 이 논의를 종결짓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한 것 같고 법무부에서 재수정안을 냈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검토를 해서 다음 번에 논의를 계속하도록 그렇게 하면 어떻겠나"고 물었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인 정점식 의원도 "예, 그러시지요"라고 동의했다. ⓒ 법제사법위원회
그렇다면 정말로 민주당은 간첩법 개정안을 반대한 것일까. 한 대표의 말대로 간첩법과 관련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의 회의는 2023년 3월과 6월, 그리고 9월 총 세 차례 있었다.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았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앞선 두 차례의 회의를 포함해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을 문제시한 건 민주당 의원들이 아닌 법원행정처의 지적이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차장은 9월 법사위 회의에서 "국가기밀과 관련해서는 판례상 적국을 위한 간첩죄의 국가기밀의 범위가 매우 넓다"면서 "외국에 대한 간첩죄가 별도로 신설되면서 똑같은 용어로 국가기밀을 쓰게 되면 적국에 대한 간첩죄에서의 국가기밀과 동일한 의미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차장은 "예를 들어서 해당 외국 등에 알려질 경우 국가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국가기밀이라는 정도, 이런 제한을 두고 국가기밀의 범위를 정한다면 조금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냈다. 또 "군사기밀 보호법, 산업기술보호법, 방위산업기술 보호법과의 균형 문제를 법체계적으로 살펴봐야 하고 그게 혹시 정합성에 맞지 않는다면 같이 개정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반면 법무부는 적국이 아닌 외국에 대해 국가기밀의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노공 법무부차관은 9월 법사위 회의에서 "상대국의 성격과 상관없이 기밀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국가기밀로 통일하여 처벌하는 것의 타당성에 대해서 법원행정처는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며 "개별 사안에 따라서 판례 해석으로 정립될 문제라고 판단이 된다"고 의견을 냈다. 또한 이 차관은 군사기밀 보호법 등과의 균형 문제에 대해서 "법원행정처의 의견하고 저희가 크게 다르다고 보이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양측의 의견에 소병철 민주당 의원도 "정부부처나 법원행정처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가 완전히 종결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고 위원님들 말씀도 그렇다"며 "그래서 오늘 이 논의를 종결짓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한 것 같고 법무부에서 재수정안을 냈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검토를 해서 다음 번에 논의를 계속하도록 그렇게 하면 어떻겠나"고 물었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인 정점식 의원도 "예, 그러시지요"라고 동의했다. 정 의원이 "국가나 그에 준하는 외국인 단체가 개입, 연계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거라는 걸 염두에 두고 행정처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하자 소 의원은 "좋은 지적이시다"라며 동감을 표했다.
한동훈이 인용한 발언, 모두 살펴보니 개정안 반대와는 거리 멀어
▲ 6월 법사위 회의에서 "국가기밀이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다"고 말한 권칠승 의원은 해당 발언에 앞서 "저도 외국이나 외국 단체도 간첩죄로 적용할 수 있는 법이 생겨야 된다는 것 동의를 한다"라며 명확히 개정안에 동의를 표했다. 권 의원의 발언은 법원행정처의 의견대로 국가기밀의 정의와 범위가 명확치 않은 상황을 지적한 차원이었다. ⓒ 법제사법위원회
한편 한 대표가 인용한 발언들을 살펴본 결과 개정안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온 발언들이 아니었다.
6월 법사위 회의에서 "국가기밀이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다"고 말한 권칠승 의원은 해당 발언에 앞서 "저도 외국이나 외국 단체도 간첩죄로 적용할 수 있는 법이 생겨야 된다는 것 동의를 한다"라며 명확히 개정안에 동의를 표했다. 권 의원의 발언은 법원행정처의 의견대로 국가기밀의 정의와 범위가 명확치 않은 상황을 지적한 차원이었다.
같은 회의에서 "군사기밀 보호법 등 다 같이 놓고 심의해야 한다"고 말한 이탄희 의원 또한 "저는 참고로 개정해야 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며 개정안에 동의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살펴봤듯 법원행정처는 물론이고 법무부 또한 간첩법 개정에 있어 군사기밀 보호법 등 다른 법들과의 균형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한 대표였다.
마찬가지로 같은 회의에서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사안이 무엇인가"라고 물은 사람은 박용진 의원이다. 박 의원의 질문에 정점식 의원은 이노공 차관을 대신해 "국가기밀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국가보안법을 제외하고는 일반 법률에 규정된 바가 없다"고 답변했다. 간첩법의 범위를 외국으로 확장하기 위해선 국가기밀의 개념부터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박 의원은 "간첩이라고 부르든 산업기밀 유출자라고 부르든 처벌을 세게 해야 되는 거라는 것은 공감한다"고도 했다.
"간첩이라는 말이 너무 센 말"이라고 한 권인숙 의원은 "이 법이 만들어질 때 사건상에서 이것은 간첩죄로 적용해야지만 적절했다라는 그런 사례들이 있나. 산업기술은 좀 다른 영역 같다"라며 "간첩이라는 의미를 꼭 넣어야 된다라는 것이 어떤 사건에서 적용할 만한 것들이 있었는지 그런 건 좀 얘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냈을 뿐,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드러내진 않았다.
한편 장경태 의원 등 12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7월 14일 간첩법의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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