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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겪은 일... 한국인 차별일까, 실수일까

[박정훈이 박정훈에게]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등록|2024.08.01 11:55 수정|2024.08.01 12:26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이 사상 최초로 야외에서 열린 지난달 26일 오후 프랑스 파리 센강에서 한국선수단이 탄 배가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주말 시작된 파리 올림픽은 개회식부터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특히 한국에선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장내 아나운서가 "북한"이라고 소개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불어로 대한민국은 'République de corée'이고, 북한은 'République populaire démocratique de Corée'라서 헷갈릴 수 있다는 점이 실수를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를 왜 이렇게 준비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심지어 남수단과 푸에르토리코의 남자농구 예선 경기에서 남수단이 독립전쟁을 벌였던 수단의 국가가 나오는가 하면,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 공식 SNS 계정에선 개막식 사진을 올리며, 튀르키예 국기를 들고 있는 선수단을 "튀니지팀"이라고 일컫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수영 선수가 등장하는데 중국 국기를 띄운다든가, 펜싱 남자 사브르 종목 금메달리스트 오상욱 선수의 영어 이름을 오기하는 등의 운영 상의 황당한 실수도 있었고요.

이런 사례들은 차별이나 무시의 의도를 갖고 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올림픽을 운영하는 이들이 소위 '서구권' 이외의 국가들에 대해선 충분히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더군요.

정훈님, 저는 '디테일'을 간과하지 않는데서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수단과 남수단의 차이, 튀르키예와 튀니지의 국기 모양의 다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실수인데 뭐 어때'라며 넘어가긴 어렵습니다.

문득 손흥민 선수의 클럽 토트넘 홋스퍼의 동료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지난 6월 자국 우루과이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손흥민 유니폼을 구해달라'라는 요청에 "손흥민 사촌 유니폼을 갖다줘도 모를 것이다. 손흥민과 그의 사촌은 똑같이 생겼다" 답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이는 '동양인은 똑같이 생겼다'는 뉘앙스의 인종차별이어서,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파리 올림픽 주최 측의 실수가 이러한 발언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이유는 비슷합니다. '뭉뚱그려서' 입니다. 전혀 다른 국가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얼굴들을 인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고유성을 쉽게 지워버리기 때문입니다.

파리에서 겪은 일
 

▲ 파리 몽마르뜨 언덕의 풍경. ⓒ 박정훈


저는 지난 4~5월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관광지 소매치기와 인종차별을 걱정했는데, 소매치기는 다행히 피했습니다. 후자의 경우 일명 '칭챙총'(중국어 억양을 과장한 것,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인다)이나 '눈 찢기' 같은 직접적인 차별 행동은 당하지 않았습니다만, 기분 나쁜 일들은 더러 있었습니다.

먼저 런던에선 토트넘 스타디움 매점에서 커피를 달라고 했다가 "Copies?"라며 토트넘 관련 소책자를 건네려고 하는 한 점원의 말에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동양인의 발음을 종종 조롱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을 제외하고는 런던→에든버러→ 바르셀로나를 돌아다닌 열흘 동안 사람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을 겪진 않았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친절한 사람들도 꽤 만났고요.

그런데 여행의 마지막에 간 파리에서는 유독 불쾌한 일들이 많더라고요. 직접적인 차별이나 혐오발언을 들었으면 곧바로 화가 났을 텐데, 대개는 처음 경험해본 당황스럽고 이상한 일들이었습니다. 차별인지, 무신경인지, 아니면 그 둘이 묘하게 섞인 것인지 헷갈리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루브르 박물관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박물관 입장 줄이 어디냐"라고 물어봤더니, 직원이 "헬로(Hello)? 헬로? 헬로? 헬로?"라고 연달아 쏘아붙이더군요. 먼저 자신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질문을 하라는 뜻 같았습니다. 한국에선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 줄 때 "인사 먼저 해"라거나 "존댓말 제대로 써"라고 하진 않잖아요. 문화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 지난달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레이저가 하늘을 밝히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AFP/연합뉴스


또 밤에 에펠탑 구경을 갔다가 근처 펍(술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마침 김민재 선수가 뛰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할 때여서 많은 사람들이 펍에 설치된 TV로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잠시나마 목을 축이며 김민재 선수의 활약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펍 직원이 "축구 보려면 5유로를 더 내야돼"라면서 농담을 하는 겁니다. 저와 아내가 음식 주문 없이 콜라와 맥주만 시키니까 얼굴을 찌푸리고 직원들끼리만 속닥거리기도 했고요. 하지만 매장 안에는 이미 수많은 유럽 사람들이 한 사람당 음료 하나만 시켜놓고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으로 메신저를 하면서 대충 계산을 하던 슈퍼마켓 점원, "메르시 보쿠"(정말 고마워)라고 하면서도 동전을 던지다시피한 카페 사장, '숙박세' 하루분이 계산이 안됐다고 우기다가 한국말로 짜증을 내니, 그제야 '계산된 것 같다'고 말한 호텔 직원, 축구장에서 앞자리에 있던 저를 밀친 젊은 프랑스 남자들 등등... 짧은 기간에 일어난 여러 일들은 묘하게 저를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왠지 식당이나 술집 등에 가기가 싫더라고요.

프랑스 사람들의 언행이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어를 못하는 동양인 관광객이라는 사실이 여기서는 명백한 '약점'이 되겠구나 싶어서 속이 상했습니다.

서울은 '환대하는 도시'일까 
 

▲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의 96% 수준으로 회복 중인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경복궁을 찾은 관광객들이 수문장 교대식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제가 파리에서 겪은 일들은 대체로 '인종차별'이라고 확실히 규정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네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피해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는 역지사지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한국인들이 외국인 관광객 혹은 이주 노동자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요. 표면적으로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인종차별'은 안 된다는 의식이 꽤 강합니다. 외국인만 차별하는 식당들에 대해서는 함께 분통을 터트리는 댓글이 쏟아지고, 한때 흑인을 친근하게 부른답시고 쓰였던 '흑형'이라는 말도, 당사자들로부터 '기분 나쁘다'는 지적이 나오자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US뉴스앤월드리포트>가 보고한 '인종차별적 국가 순위'에서 세계 79개의 국가들 중 9위를 차지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누군가에게는 한국이 프랑스보다 더 지독한 '차별 국가'로 여겨질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관련 기사: 부끄러운 9위... 대한민국이 인종차별국 오명을 벗어나는 길https://omn.kr/25438)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발표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의 68.4%가 '한국에 인종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변했습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언어적 비하 표현을 들은 경우가 56.1%로 절반을 넘었고, '내 존재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는 무시의 경험이 34.9%, '다른 사람이 나를 기분 나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는 경험도 43.1%에 달했습니다.

이중에서 '무시'나 '기분 나쁜 시선'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불쾌감을 느끼더라도 따지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아마 상대방 역시 스스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니, 당하는 사람만 움츠러들고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훈님도 자주 들어보셨겠지만, 이처럼 소수자들을 향한 은근하고 교묘한 일상적인 차별을 '미세 공격(Micro-aggression)' 혹은 '먼지 차별(미세 차별)'이라고 일컫곤 합니다. 의도적이고 직접적인 차별은 없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고 배제당하는 기분이 드는 거죠. 농담처럼 지나가거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정색하고 반박하기도 어렵고요.

'먼지 차별'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사유를 타인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그 과정이 쉽게 생략됩니다. 한국인은 인종차별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그래서 자신이 '차별' 행위를 할 리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타인은 악마가 아니고, 나 자신도 그렇게 선하지는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 보면 정치권이든 온라인 커뮤니티든 상대방은 악마이고, 우리는 '선'이라는 레토릭만 강조됩니다. 내 약점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내가 '틀려서도' 안 되고, 우연히라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어서도 안 되는 분위기는 개인과 집단의 성찰을 저해합니다. 자연스럽게 차별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목소리만 커질 뿐, 반성과 개선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게 될 수밖에요.

누구도 차별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차별이 난무합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말조차 오로지 타인을 공격하기 위해서만 쓰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질 리가, 아니 줄어들 리가 있을까요. 어쩌면 제가 경험한 파리만큼이나, 제가 살고 있는 서울이 '환대하지 않는 도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훈님께서 본 서울은 어떤 도시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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