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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136명 유해 발굴할 수 있을까? 장생탄광 탐사 진행

일본 새기는회, 피야(환기구) 깊이 27m까지 내려가... 갱도 내 진입은 실패

등록|2024.07.31 14:47 수정|2024.08.02 01:16

▲ 일본 시민단체인 '장생탄광의 몰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회'는 31일 오전 야마구치현 우베시 장생탄광 바다속 피야에 대해 잠수부를 동원해 조사를 벌였다. ⓒ 새기는회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조세이탄광(長生炭鑛·장생탄광)에서 수몰당한 183명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기초조사인 피야(환기구) 탐사가 31일 오전 진행됐다.

일본 시민단체인 '장생탄광의 몰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회(아래 새기는회)'는 이날 오전 바다에 있는 피야 한 곳에 잠수부를 투입했다.

앞서 지난 25일 잠수부를 동원해 피야 주변을 탐문하는 수중조사에 나섰지만 거센 파도로 인해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철수한 바 있다.

새기는회는 이날 오전 잠수부가 먼바다 쪽 피야 안으로 들어가 수중 27m 아래까지 내려가 갱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했다고 밝혔다.

피야 깊이가 28m이기 때문에 거의 바닥에까지 내려간 것이다. 이번 잠수는 지난 1997년 잠수조사 당시 10m까지 내려갔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진척된 것이다.

이날 탐사 결과 피야 바닥 부근에 철근이 엉켜 있어 이를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고 이를 제거해야만 갱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변에서 가까운 쪽에 있는 피야는 사다리 등 장비가 부족해 잠수하지 못하고 다음 날짜를 정해 다시 수중탐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새기는회는 이날 탐사 결과를 바탕으로 운영위원회를 열어 다음 잠수작업을 할 날짜와 해안가와 가까운 피야에 대한 잠수계획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 일본 시민단체인 '장생탄광의 몰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회'는 31일 오전 야마구치현 우베시 장생탄광 바다속 피야에 대해 잠수부를 동원해 조사를 벌였다. ⓒ 새기는회


새기는회는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크라우드펀딩(https://for-good.net/project/1000940)을 통해 800만 엔을 모아 장생탄광 유해 발굴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날 오후 2시 현재 350만 엔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대한불교 관음종도 총무부장 홍경 스님 명의로 장생탄광 유해 수습을 위해 100만 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새기는회는 갱구(갱도의 입구)를 열어 유해발굴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피야를 통해 유해발굴이 가능한지를 검토하고 있다. 갱구 입구는 누군가에 의해 폐쇄돼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또 갱구 주변은 과거 조세이탄광의 사주 후손이 소유하고 있고 이 소유자가 토지 사용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새기는회는 피야를 통한 유해 수습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은 "일본 정부는 유골이 해저에 있기 때문에 발굴은 어렵다고 한다"고 비판하고 "유족에게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시민의 힘으로 갱구를 열자"고 강조한다.
 

▲ 일본 시민단체인 '장생탄광의 몰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회'는 31일 오전 야마구치현 우베시 장생탄광 바다속 피야에 대해 잠수부를 동원해 조사를 벌였다. ⓒ 새기는회


장생탄광은 우베시에 있는 60여 개의 탄광 중 중소규모 탄광이었으나 1939년부터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해 일을 시키면서 규모가 3위까지 올라갔다. 장생탄광은 조선인들이 많아 '조선탄광'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다속으로 연결된 탄광은 1942년 2월 3일 오전 갱도에서 누수가 발생해 갱도 내에서 일하고 있던 조선인 136명 등 183명이 수몰돼 희생됐다. 사고가 난 지 8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다속 탄광 갱도는 방치되어 있고 사고 직후 2차 재해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갱도 입구는 막혔다.

장생탄광 유해 발굴을 위해 한일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양국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가 직접 유해 발굴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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