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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피하는 새로운 피서법을 찾았다

더위를 피해 한숨 돌릴 수 있는 실내 쇼핑몰

등록|2024.08.01 13:11 수정|2024.08.01 13:11
덥다. 무덥다. 무지하게 덥다. 요즘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이다. 뜨겁고 습한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몸과 영혼이 끝도 없이 축축해진다. 열대야는 이미 일상이 되었기에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덥다고 노래하고 싶어질 정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도대체 이렇게 긴 장마가 어디 있냐고 투덜댔었다. 그런데 엊그제 뉴스를 보니 이제 장마가 끝이란다. 언제는 장마가 더 길어질 수도 있다며 장담 못 한다고 하더니 하루아침에 완료형으로 기상 예보가 아닌 결과 보고를 해준다.

장마까지 물러났으니 비로소 진짜 뜨거운 날들의 연속이 될 것이다. 해가 갈수록 여름이 더 덥고 지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올해가 가장 더운 여름은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1994년과 2018년의 여름이 가장 더웠다.

2018년의 여름은 그렇다 치더라도, 1994년의 무더위는 어떻게 났는지 정말 신기하다. 집은 물론이고 시내버스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그때의 여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일상에서 더위를 피할 수 없음이 당연했기에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말 그대로 피서(避暑)를 갔다. 휴가나 바캉스라는 말보다 피서라는 말이 더 흔하게 쓰였다. 여름방학에 가족 단위로 바닷가나 계곡을 찾았다. 수박 한 통 차가운 물이 흐르는 바위 사이에 넣어두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물에 몸을 담가 더위를 식히는 것이다.

물놀이야말로, 그 시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지금도 물놀이를 가기는 하지만, 과거처럼 절대적인 피서법은 아니다. 꼭 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피서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호텔을 예약해 호캉스를 즐기거나 아예 큰돈을 들여 해외의 리조트로 더위를 피하러 갈 수 있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가까운 곳에서도 얼마든지 피서가 가능하다. 일단 어디든 실내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에어컨 없는 곳은 거의 없으니 동네 카페에만 가도 나름 피서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해 보인다. 나 역시 카페를 애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카페에 하루 종일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주문한 금액 대비 적당한 시간만 머무르는 것이 매너다.

그러니 카페나 식당으로 더위를 피하는 것은 아무래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을 집에서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고 있자니 전기요금이 걱정된다. 게다가 에어컨 가동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좋지도 않으니 오늘 하루의 시원함이 미래에 더 뜨거운 여름으로 돌아올까 봐 두렵기도 하다.

결국 나는 새로운 피서법을 찾아냈다. 비교적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어차피 에어컨을 항상 틀어 놓을 수밖에 없는 장소로 피신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대형 쇼핑몰에 가는 것이다.

지난주에도 서울 시내와 근교에 있는 쇼핑몰과 아웃렛에 세 번이나 다녀왔다. 물론, 지인을 만나는 약속이 있어서 방문한 것이지만, 지금 같은 더위가 계속된다면 혈혈단신이라도 달려갈 마음이 차고 넘친다.
 

▲ 날씨가 더워지니 쇼핑몰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 언스플래시


하지만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1시간을 달려 경기도에 있는 유명 쇼핑몰에 도착했는데 주차장 입구 약 2km를 남겨두고 차가 도통 움직이질 않았다. 이미 내 앞에 수많은 차들이 줄을 서고 있었던 것이다.

공휴일도 아니고 평일이었다. 그것도 무려 월요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어지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주차장에 차를 대기까지 무려 1시간이 더 걸렸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도착해서 한 바퀴 돌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두 배나 넘게 걸리다니.

세상은 넓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던 거다. 희대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스스로 기특해하며 신이 나서 달려갔건만. 나는 너무 순진한 바보였다. 이미 다른 사람들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나와 같은 생각으로 쇼핑몰을 찾고 있었다.

강제적으로 2시간 동안 차 안에서 피서를 대신해야만 했으나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다. 점차 차들도 조금씩 전진해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탄 차도 지하주차장을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기 시작했고, 거의 맨 아래층에 가서야 주차자리에 차를 안착시켰다.

쇼핑몰 피서를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렸다. 현타가 오려고 하던 그때. 주차장을 벗어나 쇼핑몰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니 남극의 바람과도 같은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내 몸을 감싼다. 시원하고 쾌적한 바람을 코에 잔뜩 넣었다. 방금 전까지 지쳐 있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한방에 사라졌다.

평일임에도 수많은 인파들이 쇼핑몰에 와 있었다. 여름 방학이라 그런지 어린아이들과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들이 꽤 많았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 장난감이 가득한 곳, 간식거리들도 충분했다.

대형 쇼핑몰답게 온갖 브랜드들이 즐비하다. 어른들 역시 몸이 시원해지니 매장 이곳저곳을 마음껏 누비며 쇼핑 중인 듯하다. 물론 나 역시 그들 중에 포함된다. 지상 낙원까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더위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땀을 식히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세일하는 브랜드가 있어 반팔 니트와 반바지를 구매했다. 평소 같았으면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를 못 냈을 텐데 한 계절 앞서가는 패션계 흐름상 이미 SS시즌 옷들을 거의 땡처리에 가깝게 할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득템 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어쨌든 나도 구매자가 되었으니 더 당당하게 쇼핑몰 곳곳을 당당하게 활보하기 시작했다. 키프티콘이 있어서 함께 간 아내와 카페에서 시원하게 커피도 한 잔 했다. 규모가 꽤 커서 층마다 구경 다니다 보니 꽤 오래 걷기 운동도 한 셈이 되어 일석이조다.

태양을 피해 이렇게나 뽀송뽀송한 몸으로 마음껏 걷고, 쉴 수 있다는 것. 너무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비록, 주차장에 들어오기까지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그것마저 싹 잊을 만큼 괜찮았다.

당분간 여유가 되면 쇼핑몰 피서를 계속 다니고 싶다. 더위나 피하자 하고 왔는데 쇼핑하며 구경하는 것이 꽤 재미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도 쇼핑 체질이었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향수들도 마음껏 시향 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릴 때 더위를 피해 계곡물에서 놀던 것만큼이나 설레고 즐겁다. 아니 그때의 물놀이 보다 실내 쇼핑몰을 찾아다니는 지금의 '몰놀이'가 더 신나고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본격적인 폭염을 맞이해 나는 수시로 쇼핑몰에 갈 예정이다. 이 폭염의 시대를 나는 물놀이가 아닌 '몰놀이'로 극복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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