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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보며 느낀 점, 내 인생 주인은 나라는 것

로댕과의 관계에서 그녀가 선택한 것들... 내가 30년 간 '까뮤'를 아이디로 쓴 이유

등록|2024.08.06 11:12 수정|2024.08.06 11:27
 

"여기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카미유 클로델의 첫 스승 '알프레드 부셰'가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로댕의 '지옥의 문'에도 입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른일곱 나이로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은 근육과 관절의 세밀한 묘사로 당시 실제 사람을 원형으로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정도로 섬세한 조각가였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다비드상>을 연구한 결과다.

 

열여덟의 카미유는 마흔셋의 '로댕'을 처음 만났다. 그가 인정할 정도로 세심하고 독창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던 카미유는, 로댕의 제자에서 연인으로도 발전한다. 로댕은 이십 년 지기 동거인 '로즈 뵈레'와 '카미유 클로델' 이외에도 여성제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닐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한 남자였다.

 

카미유의 아버지는 늘 "로댕에게 너무 몰입하지 말거라. 로댕의 독선적인 면은 네 능력을 갉아먹을 수 있어"라고 그녀를 걱정하고 그녀가 예술성을 빼앗길까 염려했다. 그러나 젊고 열정 가득했던 카미유는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 보다는 '로댕'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난 '카미유'

오귀스트 로댕, 다나이드(La Danaide)1889오귀스트 로댕, 다나이드(La Danaide)1889 ⓒ 오귀스트 로댕

 

큰 코가 특징인 '제라르 드빠르디유Gerard Depardieu'가 로댕 역을 맡았고, 푸른 눈이 매혹적인 알제리계 프랑스인 '이자벨 아자니 Isabelle Yasmine Adjani'가 카미유 클로델을 연기했던 영화. '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 내 아이디 '까뮤'는 그녀의 이름을 줄여 만들었다.

 

나는 왜 그 뒤로 30년 동안 '까뮤'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을까? 나는 그 이유를, 그걸 내 이름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에서 찾는 중이다.

 

내 부모가 나를 위해 지어준 이름 '김상래' 보다 '까뮤'라는 아이디가 나를 대신하던 시절이 오랜 기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조각가의 열정이 마음에 들어 만든 아이디였다. 하지만 때문에 내 인생도 그녀를 닮게 될까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로댕을 원망했었다. 이후 30년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갇혀 모두에게 버림받은 채 살다 간 카미유가 가엾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작품 어디에도 서명을 남기지 못한 10년 동안, 로댕에게 그저 이용 당한 채 버려졌다고 믿었다. 가느다란 철창을 연약한 손으로 부여잡은 채 흐느껴 울던 카미유가 안쓰러웠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그녀가 젊은 날의 작품을 깨부수듯 자신과 싸워 이길 수 있으리라는 사실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카미유 클로델'은 내게 잔혹하고 슬픈 영화였다. 그녀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닮고 싶었지만, 비극적인 운명이 되는 건 싫었다.

 

로댕이 작품 손과 발 조각 맡겼던 그녀

 

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프랑스 영화 '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 ⓒ 브루노 루이땅

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 ⓒ 신시뮤지컬컴파니

 

나는 최근 도서관과 여러 기관에서 미술 인문학, 미술관 여행 강연 및 미술 에세이 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2023년 겨울, 한 도서관에서 '프랑스 미술관 여행' 6회차 강연 준비를 하며 그 마지막 차시로 '클로델 국립미술관 & 로댕 박물관'을 주제로 잡았다. 카미유의 조각부터 로댕 작품까지 연대를 거꾸로 공부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로댕이 카미유를 만나고 난 이후, 중요한 작품의 손과 발 대부분을 카미유에게 맡겼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조각에서 가장 섬세한 작업임을 생각해 볼 때, 로댕이 그녀의 재능을 어느 정도로 인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로댕은 그녀의 재능이 자신을 능가할까 두려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로댕 <다나이드>가 만들어진 1889년도는 그 둘이 격정적으로 사랑했다고 알려진 시기이다.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의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나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나우스 왕의 딸로 다나우스에게는 오십 명의 딸이 있었다. 자신이 사위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의 예언을 듣고 그는 딸들에게 하룻밤을 지낸 뒤 남편을 죽이라고 한다. 마흔아홉의 딸은 다나우스 왕의 말을 들었고 한 명의 딸이 이 말을 어겼다. 그 벌로 평생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한다.

 

포즈 취하기도 힘든 상태의 <다나이드> 속 여인을 보면 젊음은 마치 형벌인 것처럼 조각되어 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매혹적이고 탄력 있는 신체의 곡선, 앞으로 쓸어 넘긴 부드러운 머리칼, 주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매끄러운 대리석 피부, 하지만 더는 올바르게 일어설 힘이 없어 땅속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자세를 보며 이건 로댕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카미유'의 그것처럼 보였다.

 

그를 가질 수 없어 몸부림치는 여인의 삶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라 더는 살아갈 힘이 없어 고꾸라져 있는 것 같은 느낌,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나. <다나이드>는 원래 <지옥의 문>에 들어갈 이백 명의 군상 중 하나인 작품이었단다. 그러나 로댕은 이 작품을 <지옥의 문>에 넣지 않고 크기를 키웠다.

 

다나이드/존 윌리엄 워터하우 1903다나이드/존 윌리엄 워터하우 1903 ⓒ 존 윌리엄 워터하우

자신의 남편을 죽이는 다나이드자신의 남편을 죽이는 다나이드/The Danaides kill their husbands, miniature by Robinet Testard. 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 ⓒ Robinet Testard, Public

 

강의를 준비하며 돌아보니 '카미유'는 어리석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녀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해, 조각하며 산 삶보다도 더 긴 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애초에 아버지의 말을 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원하던 남자의 아내로 살지 못할 거였으면, 로댕의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을 조각에 아로새겼어야 했는데.

 

이번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 옛날 순진하고 순수했던 내가 얼마나 철없고 그 깊이가 얕았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라는 걸. 누구의 힘도 아닌 나 자신의 힘으로 올바르게 딛고 설 줄 아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다. 강의를 통해 나누고자 하니, 삶의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걸 느낀다.

 

덧붙이는 글 메일리 <세상의 모든 문화>에도 글을 싣고 있습니다. 이 글은 메일리<세상의 모든 문화>에 동시송고 한 글로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글에 내용을 보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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