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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농산물 가격도 상승... 밥상 물가 위협하는 '기후플레이션'

품종 개발만으로는 부족… 고령화·영세소농 위주 농업구조 살펴봐야

등록|2024.08.02 11:25 수정|2024.08.02 11:25

▲ 한국은행은 폭염 등으로 일시적으로 기온이 기온이 1℃ 오르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은 0.4~0.5%p 높아지는 것으로 내다봤다. ⓒ 그리니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이상기후로 인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하는 '기후플레이션'이 더는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밀·코코아·커피 등 주요 작물이 모두 영향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기후플레이션의 영향이 가시화된 지 오래입니다. 올해 사과가 '금사과'로 불리게 된 가장 큰 요인도 기후변화입니다. 봄철 개화 시기 냉해와 여름철 집중 호우, 병충해 등이 겹치며 2023년 사과 생산량이 전년 대비 30%나 줄었기 때문입니다.

기후플레이션이 밥상 물가를 끌어 올리는 만큼 적극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최근 한국은행이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한은이 기후플레이션을 경고한 것은 처음입니다. 한은은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온 상승은 농산물 가격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1일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폭염 등으로 일시적으로 기온이 1℃ 오르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은 0.4~0.5%p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로 인한 영향은 최소 6개월가량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겨울철 한파가 일어나도 비슷한 물가 변화가 관측됐습니다. 나아가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도 0.07%p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와 같은 온난화 추세가 이어질 시 기후플레이션은 앞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요 기관의 공통된 전망입니다.

질문을 바꿀 시점입니다. 한국 사회는 기후플레이션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리니엄의 질문에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질문이 10년 전에 나왔어야 했다. 그러면 충돌 없이 점진적으로 바꿔나갔을 수 있었다."

PIK·유럽중앙은행 "기후플레이션 세계적 현상"

기후플레이션과 관련된 연구는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지구 평균기온이 높아지면 고소득국과 저소득국 구분 없이 모든 지역에서 기후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연구진은 기후인플레이션이 2035년까지 향후 10년간 식품 물가를 연평균 최대 3%p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경우 기후인플레이션 예측 역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연구진은 경고했습니다.

기후변화로 가격이 높아진 작물 하나를 단기적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있습니다. 일례로 사과의 경우 비축물량을 풀거나 유통구조 개선 등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합니다. 농업구조 개혁 없이는 중장기적인 기후플레이션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 남 소장의 말입니다.

"좋은 기술만으론 부족" 고령화·소멸화 직면한 농촌
 

▲ 지난해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52.6%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 그리니엄


이를 알기 위해선 한국의 농촌구조와 식량자급률을 뜯어봐야 합니다.

현재 농촌은 고령화와 소멸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2023년 기준 농촌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52.6%였습니다. 농업인 2명 중 1명이 노인인 셈입니다. 이 중 대다수는 1500평 미만의 경작지를 운영하는 영세소농입니다.

기후플레이션이 가시화되자 정부는 농가를 위해 스마트팜이나 시설원예 기술 도입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에 직면한 농촌의 영세한 규모로는 이와 같은 지원사업에 발 빠르게 동참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이상기후에 강한 품종 개발 및 도입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정부는 농가를 위해 폭염이나 홍수에 강한 품종 개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남 소장은 "(이상기후 대비를 위해) 품종 다각화가 필요하다"면서도 "농업구조 개혁 없이는 품종 다각화 역시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사과 품종 중 하나인 '부사'를 언급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건너온 붉은 사과입니다.

현재 부사 품종은 국내 전체 사과 재배 면적의 70%를 차지합니다. 농가 규모가 작을수록 단일품종을 재배하는 경우가 대다수란 것이 남 소장의 말입니다. 농가 입장에서는 가장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품종 재배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즉, 좋은 품종이나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투자 대비 수익이 날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것이 남 소장의 설명입니다.
 

▲ 2024년 6월 배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139.6% 상승해 역대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 그리니엄


한은 "구조적 개편 없이 통화정책만으로 해결 불가능"

한은 역시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농업구조 문제를 짚은 바 있습니다. 기관은 "좁은 국토 면적, 영세한 영농규모 등으로 농업생산성이 낮다"며 "(농산물) 수입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국내 식량자급률은 2022년 기준 46%입니다. 국내 생산 비중이 절반가량, 나머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는 뜻입니다. 사료용 옥수수 등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식량안보의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식량안보 불안을 더 부추기는 형국입니다.

한은은 "높은 인플레이션의 경우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서도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물가수준이 높거나 낮은 상황이 지속되는 현상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고령화로 재정 여력은 줄어든 반면, 기후변화로 생활비 부담은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한은의 제언입니다.

"아열대 작물 재배 지원? 농가소득 보장 대책 필요"
 

▲ 서울에서 제주도로 귀향한 김민희씨는 현재 700평 규모의 감귤농사를 하고 있다. 올해 그는 폭염과 집중호우로 농장 피해가 심했다는 점을 호소했다. ⓒ 김민희 씨 제공


이미 농촌에서는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로 귀향해 감귤 농사만 3년 차에 접어든 김민희(31)씨는 그리니엄에 "올해 폭염과 집중호우로 인해 (감귤의) 열과(裂果)가 심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는 기온이나 토양 수분의 급격한 변화로 열매가 껍질보다 커져 터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김 씨는 "새로운 병충해도 유입돼 방제하는 일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농작물 재보험 문자도 올해 많이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연유로 주변에서 올해 농업 자체를 아예 포기하는 사례도 여럿 봤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 가운데 정부는 농가에 열대·아열대 작물 재배를 지원하고 국내 기후환경에 적합한 품종 개발을 지원한다는 구상입니다. 제주도의 경우 망고·바나나·패션프루트 같은 작물 재배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리브와 커피 역시 시험 재배 중입니다.

김 씨 또한 실제로 제주도에서 감귤이 아닌 올리브를 재배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 겨울철 한파로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올리브를 재배하는 일이 지역 풍토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소득에 대한 고민도 컸습니다.

김씨는 "감귤 나무를 밀어야 파파야 같은 작물을 심을 수 있다"며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최소 3~4년이 걸리는데 그 기간 뭘 먹고 살지 고민"이라고 말했습니다. 열매가 잘 열릴 것이란 보장이 없을뿐더러, 묘목 역시 비싸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열대·아열대 작물 재배 지원이나 품종 개발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김씨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품종 개발은 너무 필요하다"며 "(재배 실패 시) 농가를 위한 소득 보장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고비에 농사 포기 사례도… 지원사업 실질적 체감 필요

김씨는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2024년 농림축산식품부 내 기후적응 관련 예산은 4조 400억 원입니다. 농축산부 전체 예산(약 18조 3392억 원)의 약 22% 수준입니다. 하지만 지원사업이 파편화돼 있을뿐더러, 실질적으로 농가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재 농가를 위한 기후대응 지원예산이 적을뿐만 아니라, 지원사업 상당수가 '농업 생산량' 증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김씨의 말입니다.

이 가운데 농민들은 농자재 투입 비용이나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농사를 포기하는 실정입니다. 김씨는 부모님이 운영 중인 레드향 농장을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한라봉과 감귤을 교배시켜 만든 품종으로 1월에 주로 생산됩니다.

그는 "(레드향 재배를 위해) 겨울철 난방비로만 월 3000만 원씩 냈다"며 "석유·보일러 가격이 오를수록 비용을 감당하지 못 하고 (주변에서) 농사를 포기하는 분도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과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 현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70년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할 것이라고 농촌진흥청은 내다봤다. ⓒ 농촌진흥청 제공, 그리니엄 편집


기후플레이션 완화할 수 있는 방법 3가지는?

이와 관련해 남 소장은 크게 3가지 개선점을 제언했습니다.

첫째, 기후스마트농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는 식량안보와 기후적응력 확보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이 결합된 형태를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품종 개발이나 정밀농업 등이 대표 사례입니다.

둘째, 공급망 다각화입니다. 수입국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시 현재는 대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물론 이는 농가소득와 식량안보를 오히려 위협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또 커피·설탕·코코아·올리브 같이 시장이 세계적으로 단일화된 작물은 그냥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마지막 셋째는 농업구조 개혁입니다. 남 소장은 이 부분이 매우 힘들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농업계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다를뿐더러, 국민들 역시 현 농업구조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국회 역시 이 부분에 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럼에도 남 소장은 기후플레이션을 일부 완화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단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농산물의 생산 변동성이 이상기후로 인해 계속 커지는 현상, 즉 기후플레이션이 계속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 소장은 "소비자들은 특정 작물이나 관련 제품의 가격이 올랐구나 싶은 정도로 체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러나 농가는 생산비 이하로 소득이 떨어져 고통받는다"고 꼬집었습니다. 또 그는 "농업 전문인력을 제대로 양성해야 한다"며 "과감한 혁신만이 근본적으로 기후플레이션을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후테크·순환경제 전문매체 그리니엄(https://greenium.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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