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트리트 보이즈, 엔싱크의 아버지는 어쩌다 사기꾼이 됐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 포스터. ⓒ 넷플릭스
2007년 6월 14일,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발리에서 '루 펄먼'이 전격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대규모 폰지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곧 자신의 죄를 인정했으며 이듬해 재판에서 25년형이 확정된다. 100만 달러를 갚을 때마다 한 달씩 감형해 주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6년, 60세 초반의 나이로 감옥에서 사망하고 만다. 심장 질환이었다.
그런데 루 펄먼은 누구일까. 도대체 누구이기에 대규모 폰지 사기,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다른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는 사기를 저질러 25년형이나 받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걸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는 루 펄먼의 모든 걸 낱낱이 파헤친다.
하지만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대규모 사기를 저질러 거의 모든 사람이 곁을 떠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었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가 감옥에서 사망한 후 시신을 고향으로 모셔 장례를 치러야 했는데, 아무도 그의 시신을 챙기려 하지 않았다. 겨우 치른 장례식에는 5명도 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살아생전 명성에 비해 터무니없는 마지막이었다.
루 펄먼,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엔싱크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의 한 장면. 루 펄먼과 백스트리트 보이즈. ⓒ 넷플릭스
루 펄먼은 1980년대, 트랜스 콘티넨탈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비행기 임대 사업을 했다. 팝스타들과도 거래를 했는데 그중에 '뉴키즈 온 더 블록'도 있었다. 당시 그는 그들의 능력을 의심했는데 알고 보니 음반 판매로 2억 달러, 투어와 굿즈 등으로 8억 달러 매출을 올린다는 게 아닌가. 그는 빠르게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보이 밴드 기반의 틴팝 그룹을 결성한다. 그 유명한 전설적인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시작이다.
하지만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정규 데뷔 앨범 성적은 생각했던 것보다 부진했다. 1990년대 중반 당시는 팝이 아닌 락과 힙합 전성시대였기 때문에 틴팝 보이 밴드가 설 자리는 없었다. 루 펄먼은 발 빠르게 방향을 선회해 유럽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대박이 난다, 특히 독일에서. 정점을 찍고 미국으로 금의환향한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역대급 히트를 하며 '틴팝'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갔다. 뉴키즈 온 더 블록보다도 훨씬 더 큰 히트를 한 것이다.
루 펄먼은 보이 밴드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이밴드 2탄을 준비한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동생 격이랄까, 그 보이밴드가 전설적인 '엔싱크'다. 훗날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속했던 그룹으로 더 명성을 떨쳤다. 엔싱크는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너무 바빠 소화할 수 없었던 디즈니 행사에서 대박을 터뜨렸고 이후 백스트리트 보이즈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틴팝 황금기의 마지막 열차를 탔다고 할 수 있겠다. 루 펄먼과 백스트리트 보이즈, 엔싱크 모두가 돈방석에 앉았을 건 불 보듯 뻔해 보였다.
그런데 두 보이 밴드의 멤버들은 역대급 흥행을 이끄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정산받았다. 이들은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성공만을 바라보고 루 펄먼을 '빅 파파'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머리가 웬만큼 커서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니 이상한 점 투성이였다. 결국 루 펄먼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진행한다. 루 펄먼이 큰돈을 착복하고 제대로 된 정산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 폰지 사기 사건의 주동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의 한 장면. 루 펄먼과 엔 싱크. ⓒ 넷플릭스
루 펄먼은 잘나가는 변호사를 데려와 자식 같은 이들의 줄소송에 대응한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소송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후에 터진다. 그에게 유리하게 변호해 준 바로 그 변호사가 루 펄먼을 고소한 것이다. 그는 루 펄먼에게서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런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간 루 펄먼에게 투자한 수백 명의 투자자들이 그에게서 제대로 된 투자 정산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액수가 공식적으로만 5억 달러 이상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규모.
그의 '사기 행각'이 하나둘 드러날수록 충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또 일파만파 퍼졌다. 그의 인생 자체가 거의 사기였다. 밥 먹듯이 문서를 위조해 자신의 위상을 드높였고 잘나가는 사업가로 둔갑했으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허위 사실을 유포해 투자자들을 끌어모았고 이 투자자의 투자금을 저 투자자에게 주는 식으로 자금을 융통했다. 수십 년과 이를 반복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긴 폰지 사기 사건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엔싱크는 그에겐 거대한 사기 행각의 주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루 펄먼은 이른바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고 할 만하다. 누군가에겐 성격 좋고 아이디어가 비상하 믿을 만한 친구이자 사업가였지만 누군가에겐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뿌리째 뽑아 버린 사기꾼에 불과했다. 그건 두 보이 밴드의 멤버들 사이에서도 갈리는데, 누군가에겐 꿈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빅 파파'의 기억이 크게 남아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 자신의 사기 행각의 수단으로 젊은 시절을 갈취한 '악덕 사기꾼'으로 남아 있다. 후자가 압도적인 것 같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엔싱크 그리고 기타 등등,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음악계를 화려하게 수놓은 별들을 만든 장본인 루 펄먼, 하지만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폰지 사기 사건의 주동자로도 이름이 남았다. 이 작품으로 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는데, 루 펄먼은 여러모로 '큰'사람이었다.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세상을 뒤흔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쪽의 유산이 더 오래, 더 깊게, 더 넓게 남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는 '사기꾼'으로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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