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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 그려진 동성애, 흡혈귀 소녀의 사랑 이야기

[리뷰] 뮤지컬 <카르밀라>

등록|2024.08.19 17:41 수정|2024.08.19 17:41
으스스한 성당, 그리고 그 어둠 속을 거니는 뱀파이어. 무더운 여름에 오싹한 흡혈귀 이야기만큼 관객의 마음을 잡아끄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뮤지컬 <카르밀라>는 이러한 뱀파이어 이야기의 전형을 존중하는 동시에 비틀어 개성 있는 공연으로 자리매김한다. <카르밀라>의 원작이 되는 소설이 어떻게 현대적 각색을 통해 화려하게 돌아왔는지 알아보자.

극적인 각색? 처음부터 동성애 코드는 있었다

본 뮤지컬의 원작이 되는 동명의 소설 <카르밀라>는 전형적인 뱀파이어 소설의 원조로 꼽힌다. 인지도 면에서는 브램 스토커의 1897년 소설 <드라큘라>가 앞서지만, 발간 시기로만 따지면 <카르밀라>는 그보다 25년 전인 1872년에 발간됐다.

뮤지컬과 원작 소설 모두, 오스트리아에 사는 소녀 '로라'와 마차 사고로 로라의 집에 머물게 된 흡혈귀 소녀 '카르밀라'의 이야기를 다룬다. 집 밖을 나서지 못한 로라와 세계 곳곳을 여행해 본 카르밀라는 서로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지고, 친구를 넘어서 연인에 가까운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두 소녀가 유대감을 쌓는 사이 마을에서는 흡혈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결국 최선을 다해 감추던 카르밀라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갈등으로 이어지는 게 <카르밀라>의 주된 내용이다.

▲ 뮤지컬 <카르밀라> 공식 공연사진 ⓒ 네버엔딩플레이


원작이 성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에 출판됐기에 로라와 카르밀라의 동성애적 관계가 현대적 각색으로 급조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랑과 우정을 넘나드는 둘의 관계는 소설에서도 대사 등으로 묘사돼 있다.

'오해받는 존재'를 통한 섹슈얼리티의 묘사는 동시대 문학의 특징이기도 했다. 양성애자였던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37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 <인어공주>를 발표한다. 사랑을 향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인어공주는 작가 자신이 동성에게 고백한 후 실연당한 슬픔을 구체화한 캐릭터이다.

이처럼 자칫 허무맹랑할 수 있는 '장르적 소재'는 <인어공주>에서처럼 금기시되던 섹슈얼리티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기도 하고, <카르밀라>와 같이 섹슈얼리티 표현 자체를 더욱 자연스럽게 묘사하기 위한 '완충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인어나 흡혈귀라는 상상 속의 존재는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뮤지컬 <카르밀라>는 이러한 효과를 수록곡 '지도 위를 걸어'의 가사를 통해 직시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난 알게 됐어, 또 다른 세상을"

뮤지컬 <카르밀라>의 현대적 각색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바로 엔딩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카르밀라가 자신을 쫓아온 군사 세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지만, 뮤지컬의 카르밀라는 로라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 'bury your gays(동성애자들을 묻어라)'라는 클리셰 이름처럼, 미디어 속 동성애자 캐릭터들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징벌적인 죽음, 다시 말해 동성애 행위에 대한 '경고'를 날리는 죽음이라는 지적이 존재했는데 뮤지컬 <카르밀라>는 각색을 통해 이 오랜 관습을 타파한 것이다.

▲ 뮤지컬 <카르밀라> 스페셜 커튼콜 (정예인/이서영) ⓒ 최해린


작지만 알찬 공연, 최정예 캐스트까지

<카르밀라>는 오는 9월 8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 1관에서 초연한다. 무대의 규모 자체는 작지만 회전하는 벽 장치를 통해 로라의 집, 대성당, 그리고 바깥 공간까지 다양한 배경을 자유자재로 연출하여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오스트리아의 풍경으로 인도한다.

알찬 캐스팅 역시 뮤지컬 <카르밀라>를 관람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주연인 카르밀라 역에는 <식스 더 뮤지컬>과 <파과>등을 통해 이름을 날린 유주혜 배우, <레 미제라블>과 <위키드> 등에 등장한 전민지 배우, 그리고 아이돌 그룹 '러블리즈'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정예인이 참여했다.

또 다른 주연인 로라 역에는 <넥스트 투 노멀>등에 참여한 이서영 배우, 뮤지컬 <데미안>에서 1인 2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해 낸 박새힘 배우, 그리고 <더데빌: 에덴> 등을 통해 이름을 날린 이재림 배우가 참여했다.

좁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고딕 스토리, 그리고 인터미션 없이 100분간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 역시 뮤지컬 <카르밀라>의 몰입감을 높여 주는 데 기여한다. 습하고 답답한 여름, 시원한 가창력과 오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무장한 뮤지컬 <카르밀라>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 뮤지컬 포스터 ⓒ 네버엔딩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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