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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층 70대 장애인은 고립, 차량 탄 주민들은 불안

[현장] 벤츠 전기차 '지하주차장 화재' 인천 청라아파트... "리튬배터리 규제해야"

등록|2024.08.03 19:36 수정|2024.08.03 19:36

▲ 3일, 화재가 난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모습.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 3일, 지하주차장 화재로 전기가 모두 끊긴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주민 A씨가 계단으로 11층 집까지 오르고 있다.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집에 환자가 있어서 다른 데로 못 가."

3일 정오께, 인천 서구 청라동에 위치한 20층 아파트. 한 70대 남성이 매캐한 냄새가 나고 시커먼 분진이 쌓인 아파트 계단을 힘겹게 걸어 오르고 있었다. A씨의 손엔 김밥 세 줄이 담긴 비닐봉지와 핸드폰 충전기가 들려 있었다. A씨는 계단 중간에서 세 번을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른 뒤에야 집이 있는 11층에 다다랐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이 아파트의 모든 전기와 물이 사흘째 끊긴 상태다.

A씨는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 지하1층 주차장에 있던 벤츠 전기차가 폭발해 대형 화재가 난 아파트의 주민이다. 이번 화재로 차량 40여 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탔고, 100여 대가 그을림 등의 피해를 봤다.

다행히 인명 사고는 없었지만, 화재 후 이틀이 지난 이날까지도 지하주차장 내부는 물론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메스꺼운 냄새가 심하게 났다. 지하주차장 내 천장을 떠받치는 콘크리트 기둥들도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천장에 설치된 배수관들이 터지거나 무너져 내려 주차장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있었다. 주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가방이나 캐리어를 끌고 소지품을 챙기러 오갔다. 지하주차장 현장에서 임시 전기 배선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불이 난 지점 바로 위에 있는 아파트 동은 거의 모든 주민들이 대피소나 모텔, 지인 집으로 떠난 뒤였지만, A씨는 뇌병변 장애로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70대 아내 때문에 이 아파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A씨는 "하루 종일 문을 열고 환기를 해 지금은 좀 낫지만, 어젯밤에 잘 때도 가스 냄새, 기름 냄새 같은 불 냄새가 심했다"고 했다. 그는 "불이 난 날엔 새까만 연기 때문에 앞뒤 창문으로 아무것도 안 보였다"며 가슴을 쓸었다. 사고 당일 불은 8시간여 만에 잡혔는데, A씨 부부는 그날도 구조되지 못하고 집 안에서 이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고 했다.

현재 단전·단수로 인해 A씨 부부는 화장실도 못 쓰고 밥도 못 짓고 있었다. 이날 인천은 34도까지 오를 정도로 더웠지만 선풍기도 못 틀었다. A씨는 냉장고를 열어 보이며 "며칠 지나니 음식이 상하는지 냄새가 난다"고 했다. A씨는 "아내 소변은 요실금 속옷으로 해결하고 있고, 먹은 게 없어 대변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전기가 끊겨 아파트 방송도 안 나오는데, 혹시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받아야 하니 주변 식당에 갈 때마다 핸드폰을 충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주말까진 어떻게 버티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소 측은 "월요일부터는 전기와 물이 해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 3일, 지하주차장 화재로 전기가 모두 끊긴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주민 A씨.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 3일,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난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에 사는 주민 A씨의 아내. 장애로 인해 휠체어 없이 이동이 불가능해 사고 후 사흘째 그대로 집에서 지내고 있다. 화재로 인해 전기가 끊겨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도 끊겨 화장실도 쓸 수 없다.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벤츠 코리아 측 "현재 원인 조사중, 아직 보상에 대해 드릴 말씀 없다"

아파트 관리소 측은 이날 주민들에게 "(지하주차장 내) 천막 쳐둔 곳은 현장 보존의 이유로 절대 출입 금지 하나, 그 외 구역은 출차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화재 현장에 있던 차에 시동을 켜도 되는지 불안하다"고 하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주민 장아무개(36)씨는 "차를 빼도 된다기에 와봤는데, 막상 시동을 켜자니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라며 "보험회사에 물어보니 현 상태 그대로 견인차에 실려가는 게 가장 좋다는데,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층고가 낮아 견인차도 못 들어온다고 하더라"라며 발을 굴렀다.
  

▲ 3일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주변 모습.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 3일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주변 모습.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실제 이곳 지하주차장의 출입 제한높이는 2.3미터여서, 견인차들이 바깥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가 차주가 그을린 차량을 운전해서 나오면 그제야 싣고 가는 장면들이 반복됐다. 주로 피해가 경미한 차량들부터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이 일대 차도가 사고 난 아파트 주민들의 차로 빼곡했다. 경찰 역시 최초에 폭발한 벤츠 차량 주변 몇 대에 대해서만 폴리스라인을 쳐놓았을 뿐, 나머지 대부분의 차들에 대해선 출차를 막지 않았다.

사고 사흘째를 맞았지만 주민들은 피해 보상에 대해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대피소가 차려진 청라1동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난 김아무개(42)씨는 "주민들끼리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을 뿐, 차주나 자동차 회사 등으로부터 피해 보상에 대한 연락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벤츠 코리아 측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현재 사건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중"이라며 "아직 피해 보상에 대해선 말씀 드릴 내용이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 "아리셀 사고와 같은 화재… 전기차·리튬배터리 규제 만들어야"
  

▲ 3일 인천 서구 청라1동행정복지센터에 차려진 주민 대피소.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전문가들은 증가하고 있는 전기차에 대한 안전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기차에 내장된 리튬배터리에 불이 나면 유독가스가 발생하고,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열폭주' 현상으로 화재 진압이 어려워 인명 피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리튬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참사로 무려 23명이 사망한 것과 같은 유형의 화재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높은 습도가 리튬배터리 폭발 위험성을 높인다고도 했다.

제진수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리튬배터리가 과충전이나 방전으로 인해 과열돼 폭발하면 물속에 통째로 담그는 것 외에 별다른 진화 방법이 없다"라며 "게다가 지하주차장은 대형 소방기구 진입이 불가능하고, 차들도 다닥다닥 붙어있어 연쇄 폭발 위험이 큰 데다 공기 순환도 원활치 않아 유독가스로 인한 피해 위험도 높다"고 했다. 제 교수는 "리튬배터리 제조 불량에 대한 규제를 더 엄격히 하고, 전기차만큼은 지상에 주차하고 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국에 따르면 화재를 야기한 벤츠가 충전 중이진 않았다고 한다.

제 교수는 "최근의 높은 기온보다는 높은 습도가 폭발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도 했다. 제 교수는 "건식 사우나에 들어가면 100도여도 견디지만,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면 40~50도만 돼도 사람이 못 견디는 것처럼, 습도가 많으면 열이 더 잘 전도되기 때문에 착화 온도에 도달할 수 있는 위험이 더 많다"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위험 때문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에 설치하도록 권고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규제가 전무한 상태"라며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했다. 공 교수는 "리튬배터리 화재라는 점에서 아리셀 공장 사고와 근본적으로 같은 케이스"라며 "국내 친환경 차를 늘린다며 합당한 안전 기준도 없이 너무 급하게 전기차와 리튬배터리를 증가시킨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할 때"라고 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현재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는 60만 대로, 2020년 처음 10만 대를 넘겼던 점을 감안하면 급증하는 추세다. 전기차 화재는 2021년 24건에서 지난해 72건으로 늘었다.
 

▲ 3일, 화재가 난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모습.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 3일, 화재가 난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모습.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 3일, 화재가 난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모습.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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