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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천재 아버지와 딸의 만남... 류희윤 바이올린 독주회

[류인 25주기] 6일 오후 4시 대표작 '지각의 주' 등 전시된 모란미술관에서

등록|2024.08.04 15:45 수정|2024.08.04 15:53

▲ 요절한 천재조각가 류인의 딸 류희윤이 6일 오후 4시 모란미술관에서 바이얼린 독주회를 연다. ⓒ 모란미술관 제공


경기도 마석에 위치한 모란미술관. 1990년 문을 연 이곳은 본관과 별관(모란스페이스), 야외조각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8600여 평에 이르는 야외조각전시장에는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요절한 천재조각가 류인(1956-1999)의 작품 '지각의 주(柱)'가 눈길을 끈다.

류인이 생전에 세운 작품으로 "인간존재가 척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실존적 성찰을 표현하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급행열차_시대의변'(1991)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다.

이곳에서 그의 딸인 류희윤(러시아 사라토프 국립음악원 부교수)이 오는 6일 오후 4시에 바이올린 독주회를 연다. 바이올린니스트 딸이 조각가 아버지의 25주기를 맞아 바치는 헌정 무대다.

모란미술관측은 "류인의 딸 류희윤의 이번 바이올린 독주 공연은 한없는 사랑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 그의 아버지를 기리는 헌정 무대이다"라며 "공연이 이루어지는 모란미술관은 류인의 작품이 소장된 곳이자 '류인5주기전'을 마련해주었던 장소라는 점에서 모란미술관에서 류희윤의 연주는 더욱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랑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 아버지를 기리는 무대"
 

▲ 요절한 천재조각가 류인의 작품 중 하나. ⓒ 임호상 시인 제공


연주회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모란미술관 내에서 피아니스트 이섬승의 피아노 반주와 함께 류희윤의 바이올린 독주가 진행된다. 스벤션과 드뷔시, 차이코프스키, 사라사테의 곡들이 연주될 예정이다. 2부에서는 하나의 주제 아래 음악과 미술, 무용이 총체화된 공연을 선보인다. 류인의 '입산 시리즈'(총 5개) 중 하나인 '입산 Entering the Mountains'이 전시되고, 현대무용 안무가 유장일 유장일발레단 예술감독이 류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안무가 발레리노에 의해 펼쳐진다. 발레리노의 안무가 펼쳐지는 동안 이영조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가 만든 곡 '혼자놀이'를 류희윤이 바이올린 독주로 연주한다.

모란미술관은 "류인의 '입산'은 작가 자신의 자소상과도 같은 작품"이라며 "또한 고통스런 성장기를 거쳐 어른이 되고, 삶을 살아내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 보편의 모습을 표상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총체적인 공연을 통해 관객은 류인이 자신의 작품과 한몸이 되어 춤과 음악을 통해 깨어나서 '부활'되는 모습을 관객은 보고 듣게 된다"라며 "그것은 작품이 주는 인식이 확장, 영원한 인간성에의 경의를 경험하는 엄숙한 시간의 간극, 더위 속에 소나기처럼 맞는 깨달음의 시간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류희윤은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11살 때인 1998년 러시아 Saint-Petersburg 국립영재음악학교에 입학해 Vladimir Ovcharek에게 사사받았다. 2007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터르부르크 국립음악원(Saint-Petersburg State Conservatoire named after Rimsky-Korsakov)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Anna Laukhina에게 사사받았고, 2015년 동 대학원 연주자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파리 글라주노프 국제콩쿠르 2위(2003년), 러시아 상트페터르부르크 세베르나야 리라 국제콩쿠르 듀엣부문 1위(2009년), 스톡홀름 국제경연 듀엣부문 대상(2010년), 몰타 국제콩쿠르 1위(2014년), 모스코바 국제콩쿠르 1위(2016년), 알리온 발틱 국제콩쿠르 2위(2016년), 아카데미아 국제콩쿠르 1위(2017년)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러시아의 유명 피아니스트 Inga Dzektser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홀에서 리사이틀을 열며 데뷔했고, 2015년 같은 장소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2009년부터는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해마다 정기 초청연주회를 열어왔고, 2011년과 2012년, 2016년, 2017년, 2019년 한국을 찾아 연주회를 연 바 있다.

2018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과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 이어 세번째로 러시아에 설립된 사라토프 국립음악원(Saratov State Concenatory named after LSabinov)에 한국 최초로 교수진에 초청됐고, 2021년에는 부교수로 임명됐다. 모란미술관은 "현재 러시아를 중심 무대로 독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실내악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스터 클래스 강연, 공물 심사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라고 그의 근황을 전했다.

아버지 류인은 누구인가… "문명, 불안에 대한 깊은 비판"
 

▲ 4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재조각가 류인. ⓒ 임호상 시인 제공


류희윤의 아버지 류인은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서양화가 류경채와 희곡작가였던 강성희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전남 여수 돌산 출신 류경채는 한국예술원 원장을 지냈고, 제1회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류인은 홍익대 미대 조소과를 다닐 때부터 실험적이고 기하학적인 조작작업에 몰두했다. 졸업한 후에는 정밀하고 힘찬 사실적 인체 조각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인간의 심리와 내면을 탐구했다. "조각의 볼륨과 무게 그리고 재료적 물성을 이용해 인체의 사실적인 묘사를 중요시했지만 과감한 인체 생략과 왜곡, 극적 강조 같은 형상성을 도입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최초로 조각과 설치미술을 결합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기계화된 문명과 인간성의 부재, 사회적 불안에 대한 깊은 비판을 담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술사학자 최열은 류인을 김복진, 권진규와 함께 "20세기 구상 조각가 3대 거장 중의 한 명"으로 평가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1993년, 문화체육부),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선정 우수작가상(1996년)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1999년 류마티스 관절염과 간경화 등으로 투병하다가 43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류인은 생전에 아버지 고향인 여수에서 살고 싶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바람을 헤아려 딸인 류희윤은 지난 2023년 처음으로 여수에서 독주회를 연 바 있다.

'조금새끼로 운다'로 유명한 여수시인 임호상은 '어둠의 두께를 적시는 그의 피를 보았다'라는 시에서 "몸통을 버려야 하는 / 심장을 들어내야 하는 / 손 하나로 버텨내야 하는 / 침묵의 소조 / 깨질 것 같아 견뎌야 했다 / 속으로 굳어야 했다 / (중략) / 망치, 톱, 끌, 정, 갈고리에 / 태워버린 뻐와 살 / 청동의 날개에 구멍을 내는 류마티스 관절염 / 그것마저 굳어 / 저 오체투지의 인내는 / 내 굳은 심장의 심장을 쏘았다"라고 류인의 예술세계를 묘사하기도 했다.
 

▲ 요절한 천재조각가 류인의 작품 중 하나. ⓒ 임호상 시인 제공

 

▲ 요절한 천재조작가 류인의 작품 중 하나. ⓒ 임호상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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