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물에 뜨는 휠체어... 무장애 해수욕장을 소개합니다

표선고 인권동아리 '이끼'·지역 사회복지사의 노력으로 생긴 표선해수욕장의 변화

등록|2024.08.05 12:07 수정|2024.08.05 14:11
 

표선해수욕장 바로 앞 주차장 입구에는 표선면을 안내하는 지도가 걸려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민속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제주에 내려와 표선에 정착한 지 3년 반, 표선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살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날 빼곤 거의 매일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표선 바다에 들른다.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는 마음이 시원해지고 잔잔한 바다에서는 마음이 고요해진다. 종일 빡빡한 일정으로 파김치 된 몸이어도 이 바다 앞에 서면 그냥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바다는 그런 힘이 있다.

최근 표선해수욕장 관련해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바로 '무장애 해수욕장'이라는 거다. '무장애 해수욕장'은 장애인, 고령자, 아이를 동반한 사람 같은 교통약자들이 편안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을 말한다. 보통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나 바위들이 널려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의 접근이 매우 어렵다. 이러한 불편을 없앤 무장애 해수욕장이라니, 너무도 반가웠다.

반가운  '무장애 해수욕장'
 

▲ 표선해수욕장으로 들어서면 드넓은 초록의 잔디밭이 깔려있고 그 뒤로 바다가 보인다. ⓒ 김연순


직접 살펴보기로 하고 표선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널목을 건넜다.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가 보인다. 이 경사로에는 야자수 매트가 깔려 있다. 야자수 매트는 휠체어나 유모차에게 최악이다. 밀어도 밀어도 잘 안 밀린다. 2년 전 발목이 부러져 한동안 휠체어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야자수 매트 길은 휠체어에 최악의 길임을 알고 있다.

조금 옆으로 가니 또 다른 경사로가 있다. 기울기도 안전해 보이는 이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니 시원한 초록색 잔디가 눈에 들어온다. 초록의 잔디 위로 빨간색, 파란색 파라솔들이 있고 그 뒤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로 입수하기 위해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계단을 통해 바다로 내려간다.
 

▲ 바다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경사로 ⓒ 김연순

 

휠체어가 이 계단으로 갈 수는 없다. 바다에 접한 길을 따라 조금 가보니 다시 경사로가 보인다. 현무암 판석으로 만들어진 이 경사로는 기울기도 낮아 안전해 보인다. 경사로를 통해 휠체어가 바로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 경사로는 유아들도 바다로 걸어 들어가기에 안전하다.

그런데 무장애 해수욕장이라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모래사장을 지나서 바다 수영까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하다는 걸까?

인권 동아리 학생들과 지역 전문가가 만났을 때

궁금증을 가지고 동부종합사회복지관 김민석 사회복지사와 표선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15명으로 구성된 표선고 인권동아리 학생들은 2022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이동권 투쟁을 뉴스로 접하며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표선고등학교는 '지역사회변화 프로젝트' 같은 일을 해 온 경험이 있어 지역사회와의 연대에 관심이 많았다.
 

▲ 삼달다방에서 표선고등학교 인권동아리 '이끼'의 학생들이 동부종합사회복지관의 김민석 사회복지사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 김연순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레 학교 바로 맞은편에 있는 동부종합사회복지관과의 연계로 이어졌고 교통약자 이동권 문제로 도움을 요청한 학생들을 복지관은 적극 지지하며 결합했다. 복지관에서는 지역복지의 전문성을 갖춘 김민석 사회복지사가 학생들과 함께 하나하나 의논하며 도움을 주었다.

우선 학생들은 표선고등학교 내 교통약자 이동권 실태를 조사했다. 교통약자의 관점으로 살피니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하나 어디에 있는지 안내를 찾기 어려웠고 경사로가 있으나 파손된 부분도 있었다. 조사를 마치고 학교에 교통약자 이동권 실태조사보고서를 발표했고 학교는 적극적으로 개선 조치를 취했다.

이번에는 지역사회로 눈을 돌렸다. 제주도는 국내의 대표적 관광지이고 표선면에도 관광지가 많다. 그중 대표적 관광지가 바로 표선해수욕장이다. 표선해수욕장의 교통약자 이동권은 어떨까 실태조사를 하게 된 거다.

학생들은 우선 주차장부터 살펴보았다. 표선해수욕장의 맞은편에 있는 주차장은 교통약자 주차구역이 아예 없다. 이유를 알아보니 꽤 넓은 주차장임에도 정식 주차장으로 허가되어 있지 않아 의무사항인 교통약자 주차구역이 없다는 거다.

해수욕장으로 건너는 보도에는 턱이 있어 휠체어가 가기에 불편했다. 드넓은 백사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로가 있기는 한데 꽤 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핸드레일이 없다. 

 

▲ 표선해수욕장의 화장실 입구 ⓒ 김연순

 

화장실 앞 발 씻는 곳은 턱이 있어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화장실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휠체어가 들어가 방향을 돌리기엔 비좁기 그지없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표선해수욕장을 '무장애 해수욕장'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이다.

표선고등학교 인권동아리 이름은 '이끼'다.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한 학생이 답한다. "활동의 취지가 교통약자와 이동권을 잇는다는 '잇기'인데 발음 그대로 하면 '이끼'로 들리잖아요. 그래서 '이끼'로 정했어요. 그냥 언어의 유희라고 할까요?" 한다.

역시 재기발랄하다. 이 활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최지슬(표선고 3학년)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지하철이동권투쟁에 대해 일부에서는 좋지 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것을 안 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동권은 당연한 권리이니 해수욕장에 대한 접근권도 당연하게 보장되었으면 해요."

2022년부터 시작한 이 활동은 현재 3년째 진행 중이다. 주차장 교통약자 구역에 대해 표선면에 건의했고 서귀포시로부터 올해 안에 정식 주차장으로 등록해 교통약자 구역을 지정 표시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카카오가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지원하는 '인터넷 하는 돌하르방' 사업에 신청해 선정되었다.

학생들의 활동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지원받은 예산으로 물에 뜨는 장비를 갖춘 휠체어 두 대와 모래사장에 깔아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매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휠체어 장애인이 꿈에만 그리던 바다 수영의 기회를 제공했다. 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한 일이라는 소감은 학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무장애 해수욕장' 캠페인 준비하는 학생들

2024년 8월 10일부터 11일까지 표선해수욕장에서는 하얀 모래를 뜻하는 '표선백사축제'가 열린다. 표선면사무소와 표선청년회에서 주최하는 이 축제에서 학생들은 '무장애 해수욕장'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 부스를 설치해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구입한 이동식 매트와 물에 뜨는 휠체어로 장애인의 바다 입수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 캠페인을 위해 8월 1일 사전 워크숍을 가졌다. 워크숍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대부분의 관광지에 설치되어 있는 최애템 '인생네컷'을 이번 캠페인 부스에도 설치하려고 하는데 장애인 접근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인생네컷'의 고정된 카메라는 비장애인만을 고려한 것인데 누구나, 어디서나, 스스로 찍고 인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안에 대해 논의하며 아이디어를 모은다. "당장은 카메라의 위치를 우리가 조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 기회를 계기로 위치 조정이 가능한 '인생네컷'에 대한 요구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 포토 부스를 종이박스로 만들지, 커튼 봉을 달지 하나하나 의논하며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준비한다. 캠페인에 대해 SNS에 올려 홍보할 계획도 논의한다. 진지하면서 신나는 회의를 마치고 이들은 표선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캠페인을 앞두고 사전에 직접 시연해 볼 필요가 있단다.
 

▲ 바다 입수가 가능한 휠체어를 시연해 보는 표선고 학생들과 김민석 사회복지사 ⓒ 김연순

 

오후 4시 무렵 도착한 표선해수욕장은 뜨거운 태양 아래 이글거린다. 사회복지사 김민석 선생님의 안내로 학생들은 휠체어를 직접 타고 경사로를 내려와 모래사장에 들어섰다. 노란색 커다란 바퀴가 모래사장을 지나는 데 별다른 장애가 없다. 다만 앞바퀴가 하나라 뒤에서 운전하는데 방향 조절이 쉽지 않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요령이 생겼는지 운전자가 익숙해졌다.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학생들도 김민석 사회복지사도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드디어 바닷가에 이르렀고 휠체어는 스르륵 바다로 들어갔다. 휠체어는 잘 떴고 점차 저 멀리 나아간다. 멀리 떠 가는 휠체어를 보는데 마음이 한없이 시원해진다. 그래. 바로 이거야. 누구나 원하면 바다에 들어갈 수 있어야지. 그게 당연한 권리가 아니겠나.

 

▲ 모래사장을 지나 바다로 입수하기 직전의 모습 ⓒ 김연순

▲ 휠체어를 탄 채 바다로 들어가 나아가고 있다. ⓒ 김연순

 

활발한 학생들의 활동 뒤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다. 바로 동부종합사회복지관의 김민석 사회복지사다. 그는 "사람을 연민의 대상이 아닌 연대의 주체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권리형 나눔'이 필요하고 '권리형 나눔'은 정책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시혜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로서의 그의 접근은 이번 무장애 해수욕장에 대해서도 관련 조례의 개정 필요까지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바다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바다에 들어가는데 장애를 느끼지 않아야 한다. '무장애 해수욕장'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예산이 배정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관련 조례가 개정되어야 한다.

이를 향한 표선고등학교 인권동아리 '이끼'의 활동에 박수를 보내며 나아가 제주 곳곳의 해수욕장들이 '무장애 해수욕장'으로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제 브런치에 중복게재 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