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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깡' 부추긴 간편결제 업체들, 티메프 사태 피해 키웠다

[단독] 올해 한도액 2배-6배 늘려... 관리·감독 사각지대... 민병덕 "금융위·금감원 직무유기"

등록|2024.08.06 11:58 수정|2024.08.06 13:48
 

▲ 티몬·위메프 사태가 불거진 뒤 해피머니 상품권 사용이 불가능해지자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해피머니 상품권 구매 시민들이 환불 및 구제 대책을 촉구하는 '우산 집회'를 하고 있다. 2024.8.2 ⓒ 연합뉴스

 

페이코·KG모빌리언스 등 간편결제 서비스 업체(간편결제 업체)들이 티몬·위메프의 상품권 대량 판매 기조에 발 맞춰, 올 들어 상품권별 일·월별 충전 한도를 2배에서 6배까지 대폭 늘린 것으로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티몬·위메프는 유독 올해 '상테크(상품권 재테크)'족을 겨냥해 해피머니 등 문화상품권을 저가에 판매했다. 이를 두고 자금 경색에 직면했던 티몬·위메프가 소비자의 돈으로 자금 돌려막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간편결제 업체들 또한 거래 한도 완화로 '상품권깡'의 문턱을 낮춰 소비자들의 피해 규모를 키운 셈이 됐다.

 

이들 업체를 믿고 상품권을 사들였던 소비자들은 티메프 사태 이후 상품권을 현금화할 길이 묶이면서 상품권은 휴지 조각이 됐다.

 

티몬 상품권 판매에 한도 늘려온 간편결제 업체들

 

상테크란 웹 사이트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상품권을 신용카드로 구입한 뒤 상품권 액면가를 간편결제 업체 포인트 등으로 전환하는 재테크 방식이다. 각종 신용카드사들이 혜택을 주겠다며 그 전제로 월 구매 실적을 요구하고 있는데, 상품권 구매는 사실상 자신의 돈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도 카드사 실적을 채울 수 있어 '짠테크(목돈 마련을 위해 소비를 줄이는 재테크)'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테크족들은 티몬·위메프에서 상품권을 7~8% 저렴하게 할인 판매할 때마다 커뮤니티를 통해 판매 사실을 공유하며 대량 구매에 나섰다. 이후 사들인 상품권을 페이코나 네이버페이, KG모빌리언스 등 간편결제 업체를 통해 자체 '포인트'로 바꿨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포인트 전환에는 보통 6~8%의 수수료가 들었다. 당초 상품권을 저렴하게 사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득을 보면서 상품권깡이 가능해지는 구조다. 물론 수수료에 따라 약간의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5일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들어 상품권깡은 한층 더 수월해졌다. 티몬·위메프가 대거 상품권을 판매하면서 물량을 쏟아냈을 뿐더러, 간편결제 업체들이 상품권별 일·월별 충전 한도를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상품권 현금화'의 대표적인 통로였던 페이코는 지난 1월까지 월 200만 원으로 유지됐던 문화상품권 해피머니·컬쳐랜드의 충전 한도를 지난 2월부로 월 300만 원으로 올린 뒤 3월엔 다시 400만 원으로 높였다. 1월 초와 단순 비교하면 한도가 2배 증가한 셈이다. 종전까지 월 100만 원이었던 북앤라이프 상품권의 월 한도 또한 7월 1일부로 200만 원으로 두 배 늘었다. 지난 2월 제휴를 시작한 '문화상품권'의 월 한도는 30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늘었다.

 

또 다른 간편결제 업체 KG모빌리언스는 더 크게 한도를 키웠다. 지난해까지 월 400만 원으로 유지되던 북앤라이프의 월 충전 한도를 4월부터 600만 원으로 올렸고 지난 7월 초부터는 월 1000만 원까지로 대폭 확대했다. 또 당초 100만 원이었던 해피머니·컬쳐랜드·문화상품권 등 3종 상품권의 일간한도는 지난 4월 말부터 600만 원으로 6배 불어났다.

 

이와 함께 페이코는 지난달 9일 티몬이 자체 선불충전금인 '티몬캐시'를 10%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을 때, 티몬캐시→페이코 포인트 전환 한도를 익일(10일)부터 기존 월 1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확대했다. 소비자들로서는 티몬과 간편결제 업체를 믿고 티몬캐시를 이용했지만 티몬이 지난달 22일 '무기한 정산 지연'을 선언하면서 페이코는 상품권 및 티몬캐시 포인트 전환을 막았다.

 

페이코 측은 상품권 충전한도를 높이게 된 데 대해 "서비스 운영 상황에 따라 상품권 충전 한도를 조절했다"며 "지난 4월에는 한도를 낮춘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KG모빌리언스는 "고객의 편의성이나 발행사 요청에 따라 실무자 간에 한도를 조정해 왔다"고 설명했다.

 

'카드깡'은 불법인데...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품권깡'

 

티몬 앞 사측 기다리는 피해자들싱가포르 기반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큐텐 계열사인 위메프와 티몬 정산 지연 사태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25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서 환불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우산을 쓰고 사측을 기다리고 있다 . ⓒ 연합뉴스

 

상품권깡은 카드 가맹점에서 신용카드로 결제를 한 다음, 수수료만 떼고 현금을 그대로 돌려받는 '카드깡'의 형태와 닮아있다. 카드깡은 '가짜 매출'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여신전문금융업법 제70조에 따라 불법이다.

 

반면 상품권깡은 특별히 상품권 관련 법이 없어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 속에 방치돼 왔다. 또 소비자들이 말하는 '상테크'는 상품권을 간편결제 업체를 통해 포인트로 교환하는 방식이라 엄밀히 말해 현금 교환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업계에서는 상품권깡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상테크족들의 표적이 될 때마다 관련 서비스나 상품을 없애왔다. 가령 우리카드는 올 초 그동안 상품권 구입을 전월실적으로 인정해 상테크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카드들을 대거 정리했다.

 

하지만 정작 금융당국은 상품권깡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상품권 관련법이 있었는데 없어졌고 그 후 규율을 거의 안 했다"며 "카드가 아니라 상품권이라 법 해석이 애매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간편결제 업체들의 상품권 충전 한도 변화에 대해 "전자금융업자라 하더라도 금감원은 지급결제의 안정성 등 부분이 아닌 '영업'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메프·티몬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상품권깡에 대한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간편결제 업체, 이커머스, 신용카드사 모두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는 주체들"이라며 "상테크 시장에서 관리 감독 부재가 티메프 사태의 원인으로 연결됐다면 이는 분명한 금융사고"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시장의 정책 부재는 금융위 책임이고, 지급결제의 안정성 관리는 금감원 책임인 만큼 두 기관의 업무태만·직무유기가 드러났다"며 "오는 국정감사에서 감독 당국에 책임과 시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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