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티메프 사태는 시작에 불과... 더 큰 위험은 여기에 있다

[박정훈이 박정훈에게] '플랫폼=혁신'이라는 착각... 제2의 구영배 또 나온다

등록|2024.08.08 11:03 수정|2024.08.08 17:44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7월 28일 오후 티몬·위메프의 모회사인 서울 강남구 큐텐 앞에서 피해자들이 회사 측에 빠른 환불과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우산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파리에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관객들이 국기를 흔드는 동안, 서울 강남에서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빗속에서 우산을 흔들었습니다. 지난 7월 28일 강남에 있는 큐텐 본사 앞에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의 피해자들이 '큐텐 숨지 말고 대책 마련하라!', '내 돈 환불해라' 등의 항의문구를 우산에 붙이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정훈님은 티몬과 위메프 사태로 피해를 보진 않으셨는지요? 사실 티메프 사태와 비슷한 일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만나플러스라는 배달 대행 플랫폼이, 고객인 상점주가 구매한 대금(배달료)을 지역배달 대행업체와 라이더에게 지급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배달라이더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2019년부터 배달대행업이 무법지대라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만나플러스는 국토교통부 인증을 받은 업체이기도 합니다. 티메프 사태와 만나플러스 사태는 플랫폼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지급정지형태로 드러난 것입니다.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망원시장처럼 실제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을 떠올려봅시다. 시장에는 과일, 떡볶이, 생선, 족발, 신발과 양말 등 온갖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습니다. 길거리에 좌판을 깔고 깻잎과 잡동사니를 파시는 분도 있죠. 이 시장에 장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사거나 구경하러 소비자들이 방문합니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물건을 구입 할 수 있도록 시장 입구에 간판도 달고, 홍보사업도 합니다. 주변의 대중교통과 주차장 역시 중요한 문제죠. 그래서 상인회가 나서 시장을 관리하고 정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장의 흥망성쇠는 지역 경제와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시장 주변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시장 상인들이 단결해서 시위도 하고 생존권 싸움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길바닥에 있던 시장이 핸드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시장 안을 걸으면서 쇼윈도나 좌판을 보면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핸드폰 액정화면을 보고 물건을 삽니다. 가게 사장님들은 억척스럽게 시장에 터를 잡고 살아남는 것뿐만 아니라 온라인 시장에 입점해 검색화면 상단에 노출되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온라인 자릿세를 내야 합니다. 플랫폼을 한국말로 옮기면 '정거장'입니다. 고객과 손님을 연결시키는 '정거장'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플랫폼이 점점 거대해지면서 정거장에 수수료를 내고 입장하지 않으면 '손님'이라는 목적지나 '가게'라는 목적지로 갈 수가 없습니다. 해외에 나가려면 반드시 인천국제공항에 가야 하는 것처럼 온라인 플랫폼이 독점적 정거장이 된 것이죠.

플랫폼은 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서버만 견뎌준다면 디지털 세계의 영토는 무한합니다. 온라인 세계에 담을 수 있는 가게의 시간적 공간적 한계도 없습니다. 지하철역도 주차장도 필요 없으며 영업 종료 시간도 없습니다. 업종도 무한하죠. 손님 역시 무한하게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 무한한 생산과 소비를 떠받치기 위해 플랫폼 노동자들을 활용합니다. 야간 휴일 연장 근로를 시키면서도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도 되니 저렴하게 인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업무를 외주화 시켜도 되죠. 택배와 배달은 외주화된 지 오래고, 큐텐은 재무 업무마저 외주화했습니다.

플랫폼의 최종목표는 금융 진출
 

▲ 서울 중구 서울역 택시 정류장에 카카오T 블루 택시가 콜을 받아 대기하고 있는 모습. 2023.2.14. ⓒ 연합뉴스

 
플랫폼은 매력적인 사업입니다. 다른 정거장에 손님을 뺏기지만 않으면 기존 독점 재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플랫폼은 독점적 지위를 가지기 위해서 가게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가게와 손님 중 한쪽 시장만 독점해도 됩니다.

대한민국 모든 음식 가게를 플랫폼에 입점시키면, 음식을 먹고 싶은 손님은 해당 플랫폼에 접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택시에 카카오를 깔게 하면 택시를 타고 싶은 손님은 카카오라는 정거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손님을 독점해도 됩니다. 카카오가 모든 택시손님을 갖고 있다면 대한민국 모든 택시가 카카오에 접속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플랫폼 기업들은 손님에게 무료 쿠폰을 날립니다. 손님이 다른 정거장에 가지 못하도록 배송을 빨리하든, 최저가격을 보장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플랫폼에 들어온 손님이나 사장님들이 플랫폼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걸 자물쇠 효과, 잠금효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게 모두 돈입니다. 그래서 플랫폼 기업들은 투자금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금융자본으로부터 받는 투자금이야말로 플랫폼 산업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당장의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용자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을 팔거나, 주식시장에 상장해 금융적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엑시트(exit)라고 부르고, 수많은 플랫폼 기업의 꿈이 되었습니다. 엑시트에 실패하더라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이윤을 뽑아내거나 미래를 보고 더 큰 투자를 하라고 투자자들을 계속해서 끌어모으면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이 실패를 하지만, 우리나라 플랫폼 산업이 성장하면서 그야말로 독점적 플랫폼 기업의 행태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계획된 적자'와 뉴욕증시상장,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민 인수와 수수료 인상, 211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플랫폼 재벌 카카오의 탄생까지 최근 시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중심에 플랫폼 기업이 있습니다.

이런 플랫폼 기업의 욕망을 집약해 놓은 인물이 바로 큐텐 대표 구영배씨입니다. 큐텐은 싱가포르에 큐익스프레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큐익스프레스는 국제 물류회사로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구매한 물품을 전 세계에 배달합니다. 큐텐은 한국의 티몬과 인터파크 위메프를 인수한 데 이어 미국의 '위시'를 인수하여 큐익스프레스의 기업가치를 높여 나스닥에 상장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습니다.

고객의 돈(정산금)을 마음대로 기업인수에 사용하거나, 판매대금 1조 원을 프로모션으로 모두 사용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과 말들은 플랫폼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는 일입니다.

타락한 플랫폼 자본주의의 실체

더 큰 문제는 플랫폼 자본을 규제하는 일에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한 정부와 국회입니다.

사람들의 신념과 달리, 자유시장경제에서는 다양한 안전장치와 규제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정한 규칙이 없으면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잘 아는 장치가 금산분리입니다. 은행을 소유한 기업이 나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기업이 은행 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가령 삼성전자가 적자가 나면 삼성은행에서 돈을 빌려 메우면 됩니다. 삼성전자가 새롭게 공장을 지을 때 필요한 돈도 삼성은행을 통해 쉽게 빌리면 되죠.

게다가 은행은 다른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삼성전자의 경쟁업체에 대한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은행이 없는 기업들은 은행을 가진 삼성전자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게다가 은행의 돈은 국민이 저축한 돈입니다. 은행은 남의 돈을 잘 관리하고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일로 이익을 내는 곳이지 자체적으로 생산을 담당하지 않습니다.

이 금산분리 원칙이 플랫폼 기업에서는 무력화되었습니다. 거대 플랫폼 카카오가 카카오뱅크라는 거대 은행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자본의 경우 은행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 4%를 소유할 수 없지만, 인터넷은행은 34%까지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외가 민망했는지 대주주에 대한 대출은 전면금지시켰습니다. 원칙은 무엇인지, 왜 이런 특혜가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법을 만드는 국회의 무관심이자 '플랫폼'이라는 간판을 달면 혁신이라고 여겨지는 세태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금산분리라는 낡은 규제로는 지금의 사태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플랫폼 기업의 사업 영역은 경계도 한계도 없기 때문이죠. 고객의 데이터와 현금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업에 마음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에는 금산분리로 막고자 했던 정보독점, 금융과 산업 분리 등의 경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저임금과 노조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한가한 소리 할 때가 아니다
 

▲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지난 7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위메프, 티몬 미정산 사태 관련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티메프 사태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전세사기 수준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입자의 돈을 이용해 새로운 건물을 사고 집값이 오를 때 팔고 이익을 얻어 세입자의 전세금을 갚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최근 5년간 플랫폼 입점업체가 대금을 제때 정산받지 못해 대출로 막은 건수가 약 1만 3천 건, 대출 규모로는 1조 813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모든 플랫폼 기업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는 주장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마주한 플랫폼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전세사기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함께 인식하고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소상공인은 거대한 플랫폼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보수정치인들이라면 책임 있는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건강한 시장경제를 만들기 위해 공정한 규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엄격한 심판이 필요하다고 말하겠죠. 그런데 운동장에 들어간 선수가 플랫폼이라고 적힌 유니폼만 입으면 편파판정을 합니다.

그런데도 경제단체들과 보수정치인들은 최저임금이 올라 소상공인이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야 말로 구체적인 플랫폼 산업 규제와 플랫폼산업에 얽혀있는 소상공인, 노동자, 소비자 보호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입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1인 1투표제에 기반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와 감시라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반면 기업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업의 시민이자 주권자인 노동자들의 조직 노동조합뿐입니다.

기업은 1인 1투표가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대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여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보장했습니다.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노조하기 힘든 플랫폼산업에서 노동조합이 무수히 많이 생기는 것이야말로 플랫폼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전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