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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입문 8개월 초심자에게 배운 것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등록|2024.08.07 10:32 수정|2024.08.07 10:32
"누님, 저 이번 주말에 대회 나가요."

늦은 밤 탁구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M 이 농담처럼 말을 한다.

"무슨 대회? 네가?""네. 제가 가입한 네이버 밴드 탁구모임에서 개최하는 대회에요. 한 15명 정도 참가한대요."

탁구 대회 나간다는 8개월 선수

▲ M은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그 '부족함의 정도'와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대회에 서슴없이 나갔다. ⓒ elements.envato


M은 탁구를 시작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초보다. 하지만 레슨도 꾸준히 받고 연습도 성실히 하는 친구다. 실력도 처음에 비해 월등하게 좋아졌다. 그럼에도 내가 보기에 아직 외부 대회에 참가할 실력은 아니었다.

"대회에는 잘 치는 사람들만 나오지 않나?""아니에요. 제가 봤더니 다 10부나 8부 정도 되는 사람들이에요. 누님이 그 대회에 나가면 아마 우승할 수도 있을 거예요.""에이 설마. 어쨌든 시합까지는 얼마 안 남았으니 연습 열심히 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주말이 지나고 다시 탁구장에서 M을 만났다.

"어땠어? 시합?""어흐, 말도 마세요. 완전 꼴찌에요. 사람들 너무 잘 쳐요. 그 사람들이 말하는 부수(실력이 비슷한 사람들을 여러 단계로 묶어서 구분해 놓은 제도)가 알고 봤더니 탁구장 부수가 아니라 전국 오픈 부수를 말하는 거 였어요. 우리 구장 누구보다도 실력이 뛰어나요."

"그래서 결과는?""완전 처참해요. 저 여자 8부 선수와 맞붙었는데요. 제 서브를 그냥 드라이브로 받던데요."

M은 아마도 8부라고 하니 나 정도 실력일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대회에서 맞붙은 선수들은 전국 오픈 부수였으니, 그 실력의 간극에 얼마나 당황했을지 불을 보듯 뻔했다.

추측컨대 M은 상대 선수의 서브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고, 상대 선수의 눈에 M은 몸개그를 시전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M이 아무리 우리 구장에서 '떠오르는 새별'로 인정받는다 해도 탁구 입문 8개월짜리의 실력은 걸음마 단계도 아니다.

"저보고 다음 대회에도 꼭 다시 나오래요.""또 나가려고?""네. 연습을 더 많이 해서 나가 보려고요. 여러 사람들하고 쳐 봐야 실력이 는 대요. 다양한 서브도 받아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누님도 한 번 나가 보세요. 실력이 확 느실 거예요."

나는 외부 대회에 나가서 크게 망신을 당하고 돌아온 M의 체험담을 들으며 크게 웃었지만 내심 부럽기도 했다. 내가 탁구 입문 8개월 차에 외부 대회에 나가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탁구 입문 만 2년이 지난 지금도 '대회'는 두렵다. '아직 서브 리시브도 제대로 못 한다, 커트볼 스트라이크도 안 되고, 백스핀은 엄두도 못 낸다' 나의 부족함을 열거하라면 노트 한 권도 부족할 판이다.

M은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그 '부족함의 정도'와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대회에 서슴없이 나가는 것이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실력으로 이어질 것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 해도 M은 최소한 대회에 나가서 떨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은 대회 경험과 패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준비되지 않은 무모함일지라도

누구에게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준비가 안 된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과연 '완벽한 준비'라는 것이 가능할까. 준비는 아무리 많이 해도 늘 부족하다.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 않고 아쉬워 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지금 당장 시도라도 해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때 하지 못한 것 때문에 늘 후회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들 한다. 그 때가 언제일까. 그것은 '우리가 원할 때가 가장 최적의 시간이지 않을까.' 우리가 할 일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시작하는 일이다.

M의 체험담을 통해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편안함과 익숙함 속에 머물 것인가. 더 큰 물줄기를 따라 나아 갈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때로는 '준비되지 않은 무모함을 선택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사람들이 다음 대회에 또 나오래요"라며 웃는 M이 어제보다 한 뼘이나 더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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