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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발 오토바이 타고 텃밭 가는 90대 부부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감나무골에서 75년간 함께 산 박철순-김옥윤을 만나다

등록|2024.08.10 18:19 수정|2024.08.10 18:21
부부가 75년 간의 생애를 같이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

그 어려운 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충남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감나무골 박철순(1929년생 96세), 김옥윤(1931년생 94세) 부부의 집을 찾았다. 마을에서 제일 꼭대기에 있는 집은 거의 백 년의 세월을 그대로 안고 있는 ㄷ자 집이었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부지런하게 살았던 살림의 흔적과 함께 노부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집에 그들이 살고 있었다.
 

세발 오토바이크를 타고 텃밭으로 향하는 노부부잔병이 없이 장수하는 비결은 그냥 자연스럽게 사는 것 ⓒ 오창경

 
"몇 년 전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산악회에 꼬박 다녔어. 저기 봐봐."

그가 가리킨 벽에는 그간 다녀온 산악회에서 나눠준 인쇄물 두 다발이 단정하게 걸려있었다. 당뇨와 혈압은커녕 관절도 좋고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어서 병원 갈 일도 별로 없다는 박철순씨는 지금도 세 발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부인까지 뒷자리에 태우고 텃밭에 다닌다. 청력만 좋지 않아서 보청기를 사용하지만 부인과 의사소통하고 TV를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부인 김옥윤씨는 청력에는 문제가 없으나 양쪽 어깨 관절 연골이 닳아서 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최근에 무릎 관절이 아프기 시작해 진통제와 혈압약 정도만 복용할 뿐이다.

아직도 밭일을 하는 노부부
 

집 앞 텃밭을 바라보는 노부부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텃밭 농사를 짓는 노부부 ⓒ 오창경

 
"항상 삼시세끼를 잡곡밥에 콩을 넣어서 먹고 있어. 옛날부터 그렇게 먹었으니께 먹는겨. 영감이 있으니까 세 끼를 꼬박 차려야 혀. 그려도 음식 타박은 안 하시고 아무거나 잘 드셔유."

김씨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남편을 위해 제철에 나오는 강낭콩이나 서리태를 넣은 잡곡밥에 생선과 조개류가 들어간 밥상을 차린다. 부부는 육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두 점 정도만 먹으면 질린다고 한다.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와 계절 나물 반찬들로 밥상을 차려 오순도순 식사하고 들깨, 참깨, 서리태를 심은 밭에 나가서 풀도 매고 가꾸는 일로 소일한다. 최근에도 참깨가 익으면 베어내고 들깨 모종을 심을 준비를 해놓았을 정도로 아직도 밭일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다.

75년 전, 한 동네 살던 21세 총각과 19세 아가씨가 혼례를 올렸다. 한동네에 살았지만 둘은 서로 잘 알지도 못했고 부모끼리 말이 오가서 맺어지게 되었다. 각시의 부모는 큰딸이 멀리 가는 것을 원치 않아서 동네에 점 찍어 둔 총각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부모들은 따질 것 다 따져 봤는지는 모르지만 혼인의 당사자들은 정작 아무것도 모른 채 혼인 날 만났고, 그랬어도 한세월을 잘살고 있다. 삼신할미가 점지해주는 대로 4남 4녀를 낳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장녀를 낳고 한국전쟁 중이던 24세에 군대에 간 박철순씨가 30세에 제대할 때까지 외에는 지금까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김옥윤씨는 남편이 군대 생활하는 동안 갓난 딸과 시부모님, 같은 동네에 사는 친정 부모님까지 건사하느라 전방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다.

"시부모 모시고 살림살이하며 틈틈이 베틀에서 여름에는 모시와 삼베를 짜고 겨울에는 무명베를 짜며 살았지."

항상 미소가 머무르는 얼굴에 조용한 말투의 소유자인 김옥윤씨는 살아온 날 중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베를 짜느라 어깨 연골이 다 닳아서 팔을 잘 들어 올리지 못하면서도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서 세월 탓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우리 논의 못자리가 새푸러니(새파랗게) 자리를 잘 잡았네. 안 사람이 혼자 고생하네."

하늘에서 논을 내려다본 박철순씨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호탕한 웃음과 유쾌한 말씨의 96세의 박씨는 광주 육군 항공학교에서 정비사로 군대 생활했던 이야기를 꺼내자 여느 남자들처럼 눈빛마저 형형해졌다. 가끔 조종사와 함께 L-19기를 타고 고향 마을 근처 하늘을 날게 될 때면 조종사는 일부러 저공비행을 해서 그의 논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해줬다.
 

늘 온화한 미소를 땐 노부부저 대문안에는 시간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노부부가 있다. ⓒ 오창경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직후 육군 8사단으로 입대해서 연대 3천 명의 봉급을 지급하는 일을 했던 박씨는 1년 후 광주육군항공학교 정비사로 보직을 옮겼다. 군대에서 비행기를 타고 고향 마을 하늘까지 날아와 논을 내려다보는 호사를 누렸지만 나라는 전쟁 중이었고 군대 생활은 길기만 했다. 군대 생활은 지난 세월 속에 가장 많은 기억이 차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참전 용사로 대접받으며 살게 해주고 있다.

"옛날 부엌에는 가마솥 3개는 보통 걸려 있었지. 우리 8남매와 시부모님, 시동생네까지, 한 솥밥 먹으며 한 지붕 아래서 살았지. 그때는 한 솥에는 밥하고 또 한 솥에는 시래기 삶아서 먹으며 살았어. 사는 게 우습게도 너무 많이 살아서 창피혀..."

아내 김옥윤씨는 대가족 속에서 복닥복닥 살았어도 파란만장하고 굴곡 있는 세월을 살지는 않았다고 했다. 생활이 시키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고.

"8남매라 말썽 피우지 않고 남들에게 구설 안 듣게 하려구 엄하게 단속을 많이 했쥬. 그때는 서운했는디 지금은 애들이 엄마가 잘했다고 하대유."

당시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삼신할미가 점지해주는 대로 낳아서 농사 짓고 모시를 짜서 학교를 보내며 살았다. 김옥윤씨는 아이들이 많아서 가정 교육을 더 엄격하게 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 다녀오면 어른들에게 인사부터 하게 하고 건넌방에 옷걸이용 못을 박아 놓고 교복과 가방부터 벗어서 나란히 걸어 놓고 나가서 놀게 했다.

한 집안의 분위기는 어머니들의 양육 태도에 의해 좌우된다. 8남매의 훈육에 있어서 가정에서는 대가족의 질서를 유지하고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일탈하지 않도록 김씨는 중심을 다잡았다. 이제는 그 4남 4녀가 다시 자녀를 2명씩 낳아서 16명 손주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세월을 살고 있다.

순응하며 사는 삶이 비결
 

75년을 살고 있는 노부부세발 오토바이크를 타고 텃밭으로 가는 길 ⓒ 오창경

 
이 노부부에게는 75년의 생은 그냥 삶이었고 생활이었다. 굳이 장수하기 위해 잡곡밥을 즐겨 먹은 것이 아니라 늘 그렇게 먹어왔기 때문이었다. 부부 사이 역시 믿음이 있는 눈빛 속에 서로 지극한 애정이 느껴질 뿐 내색하고 표현하고 살지 않았다.

해가 뜨면 일어나 들에 나가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사계절에 맞춰 그대로 살고 있을 뿐이었다. 자기 앞에 놓인 생에 그대로 순응하며 사는 삶이었다.

노부부가 사는 집 대문간을 들어서면 시간을 거스르지 않은 자연스러움부터 보였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시간이 있는 것 같았다. 비결, 비법과는 거리가 먼 평온이 있는 공간에 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노부부의 나이는 20년을 접어버린 듯 칠십대 중반 즈음에서 멈춘 것 같다. 검버섯이나 주름살도 별로 없는 얼굴에 여유가 묻어나는 느긋한 표정에서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아왔음을 느끼게 한다.

산골 작은 마을 외진 곳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모든 근심을 다 잊었네.
세상사 시비 다툼에 섞여들지 않고
꽃 피면 봄 온 줄, 잎 지면 가을 온 줄 안다네.

충남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감나무골 노부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조선 전기 김임벽당 시인의 시 한 수에 그들의 75년 세월이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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