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국음식이 다 공짜라고? 캐나다인들의 탄성
[2024 글로벌리포트 - K푸드 월드투어] 건강한 한식에 매료된 캐나다 사람들
한류 열풍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오마이뉴스>는 2024년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편집자말]
한국의 유명 가수들이나 배우들, 드라마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드라마 보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많은 시대가 되다 보니 한식도 점점 더 널리 알려졌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역시 라면이다.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끓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예전에도 라면이 조금씩 있긴 했지만 이제는 정말 종류도 다양하게 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종류도 다양한 한국 라면들이 캐나다 현지 마트에 진열되어있다. ⓒ 김정아
만두 같은 냉동식품들도 보인다. 동양음식 코너에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종류별로 정리된 음식 선반에 버젓이 한국 음식이 판매되고 있다.
▲ 냉동코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한국 만두 ⓒ 김정아
현지인들도 이런 손쉬운 인스턴트 식품은 곧잘 사 먹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일식으로 알려져서 스시라고 불리던 김밥이 이제는 올바른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캐나다 코스트코에서 판매되는 김밥 ⓒ 김정아
캐나다 할머니들의 파전 사랑
작년에 남편의 지인이 소포를 보내온 적이 있었다. 그림 액자였는데, 그 안에 충전재로 든 것은 바로, 조미김이었다! 소포장된 한국의 조미김이 물건을 깨지지 않게 보관하는 데에 유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정말 해본 적도 없는데 기발했다. 구겨서 버릴 충전재보다는 이왕이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보내는 게 실용적이라고 생각한 지인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참고로 이런 소포장 조미김은 반찬코너에 있지 않고, 스낵코너에 있다. 서양 아이들은 이것을 간식으로 학교에 가지고 가서 먹는다고 한다. 짭조름한 게, 과자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건강식품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 푹신한 낱개 포장 조미김을 소포 충전물로 사용할 수 있다니! ⓒ 김정아
나에겐 친한 캐나다인 친구들이 있다. 나도 할머니지만, 나보다 더 할머니인 이 분들은 함께 바느질을 하는 모임의 멤버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식의 이미지는 건강한 음식이다. 함께 한식집에서 모임을 하기도 하는데, 채소가 나물의 형태로 조금씩 담아져서 나오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별거 아닌 콩나물 무침이나 두부조림 같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요리 중 하나로 여겨진다.
반찬을 좀 더 달라고 가볍게 요구하면, 그걸 공짜로 주냐며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채식주의 식당이 아님에도 여러 가지 채소가 고루 나오는 모습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해물파전이다. 한식으로 모임을 하면 꼭 주문하는 메뉴 중 하나다. 영어로는 시푸드 팬케이크(sea food pancake)라고 하지만, 주문할 때 굳이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파전이라고 할 만큼 좋아한다.
여전히 한국의 대표 음식은 김치
▲ 김치는 역시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가장 유명하다 ⓒ 김정아
하지만 여러 가지 K푸드가 있어도, 한국 음식으로 가장 알려진 것은 역시 여전히 김치다. 건강한 발효식품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그 맛도 냄새도 이제는 그들에게 더 이상 거부감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초기 이민자들은 김치 먹으면 출근해서 냄새난다고 아침에는 김치도 못 먹었다는데 지금은 그런 문화는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하긴 내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가 40년 전이었으니,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게 더 이상하긴 하겠다. 아무튼 캐나다인들 중에서 김치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우리 식구들만 하더라도, 캐나다인인 남편의 자식들은 다들 김치를 좋아한다. 우리는 노년에 재혼한 부부라서 각자의 자식이 따로 있고, 자식이라고 해도 이미 성인들이다. 그런 그들이, 내가 김치를 했다고 사진을 올리면, 달라고 손을 번쩍 든다.
하도 잘 먹길래 김치를 어떻게 먹느냐고 했더니, 비벼 먹고, 볶아 먹고, 그리고 모든 음식에 다 얹어서 먹는다고 했다. 김치에 밥을 넣어 와플을 만들어 먹는다며 내게 가르쳐줘서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우기도 했다. 이런 것은 어디에서 알았냐고 했더니 SNS에서 봤는데 맛있어서 해봤다고 했다.
▲ 김치로 만든 와플은 보다 바삭한 김치 부침개 맛이 난다 ⓒ 김정아
심지어 김치를 술에 타 먹는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크리스마스 때였는데, 자식들이 우리 집에 다 같이 모여서 시저라는 칵테일을 만들었다. 조개육수와 토마토 주스를 넣고, 거기에 매콤한 타바스코 소스도 넣는 특이한 칵테일이다.
막내아들이 타바스코 소스를 찾으러 냉장고를 열었다가 김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걸 본 큰 딸이, 그 칵테일에 김치를 넣자고 하자 다들 좋아하며 만드는 게 아닌가! 나는 사실 당황스러웠는데, 의외로 아주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김치의 매콤하며 새콤한 맛이 이 칵테일의 맛을 돋보이게 해 줬던 것 같다.
캐나다인들 앞에서 김치 특강
김치는 우리 식구들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느질 모임에서, 하루는 김치 만드는 법을 알려줄 수 있겠냐고 내게 물어왔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했는데, 재차 확인 전화가 왔다. 확실하게 날짜를 잡자는 것이었다.
졸지에 김치 특강을 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난감해졌다. 내가 가르쳐 준다 한들, 젓갈과 여러 가지 어려운 재료들을 과연 그들이 나 없이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배추도 절여야 하고 상당히 복잡한데 어찌할까 고민스러웠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나박김치였다.
지금의 남편과 사귀던 시절에, 캐나다를 방문해서 내가 그에게 해줬던 것이 나박김치였다. 딱히 마땅한 한국식 양념이 전혀 없던 그의 집에서, 서양 고춧가루인 케이얀 페퍼가루를 사용해서 만들어 줬다. 그는 아주 맛있게 먹었고, 내간 떠난 이후에도 남은 것을 두고두고 아껴 먹었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젓갈이 들어가지 않고, 절이지 않아도 쉽게 만들 수 있으니 레시피만 있어도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다들 조금씩 만들 것이지만 그래도 네 명이 만들 것을 사니 재료 구입도 편했다. 배도 한 개 사서 4등분으로 나눠 사용하고, 배추도 그렇게 하면 남을 부담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기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각자 용기를 가져오라고 할까 하다가,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하려면 뭘 들고 와야 할지도 모를 것 같길래, 김치통으로 쓸만한 것들도 각각 하나씩 돌아가게 구입했다.
레시피를 영어로 자세히 써서 출력을 했다. 설명을 해주고 그 자리에서 만들어 본다고 해도, 이런 생소한 외국 음식 만드는 법은 곧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말이다.
대망의 김치 만드는 날이 왔다. 이 귀여운 할머니들은 모두 흥분 상태였다.
각자 도마와 칼을 챙겨 와서는, 무를 썰라면 썰고, 배추를 썰라면 썰고, 내가 말하는 대로 착착 진행했다. 물론, 중간중간에 장난도 치면서 말이다. 마늘은 어떻게 썰까, 생강은 어떻게 썰까 물어보더니만, 결국은 각자 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했다.
▲ 열심히 김치를 만드는 모습 ⓒ 김정아
모두 베테랑 요리 실력자들인지라 자기만의 취향이 확실했다. 큰 덩어리 싫다고 모두 잘게 썰기도 하고, 나는 생강을 좋아하니 많이 넣겠다고도 하고, 고춧가루도 취향껏 다들 마음대로 넣었다. 결국 계량도 모양도 전부 주먹구구가 되어버렸지만 김치는 이미 아주 훌륭해 보였다.
어느덧 완성된 김치국물 간을 보면서 다들 무척 즐거워했다. 나박김치는 막 만들자마자부터 맛있는 냄새가 나면서 짭조름한 국물이 입에 착 감기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 맛있는 발효식품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 건강해지기 시작한 기분이 드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한두 주쯤 지난 어느 날, 한 분에게 연락이 왔다. 다 먹어서 다시 만들려고 하는데 한국 배를 어디서 사야 할지 물어보는 게 아닌가. 진짜 다시 만들어 먹겠다는 의지였으니 정말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리라.
아무튼 떡볶이
캐나다인 김치 팬 중에는 이웃집 모녀도 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까지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어제는 집으로 잠깐 놀러 오라고 했다.
어떻게 한국 음식을 알았냐고 물었더니, 집에 놀러 오던 엄마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종종 한국 음식을 해줬다고 했다. 그런데 뭔지 모르고 먹어도 하나같이 다 맛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녀는 그야말로 한국 음식에 매료되었다. 뭘 먹어봤냐고 했더니 김밥, 떡볶이, 잡채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그 밖에도 이름 모를 음식들도 다 맛있었다고 했다.
특히 떡볶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이후에 SNS에서 다시 봤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떡볶이 먹는 법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국수를 말아먹기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미 떡볶이는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른 음식인데 거기에 뭔가를 더 넣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해서 함께 웃었다. 사실 떡 종류가 찰지고 고탄수화물이여서 이런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 아가씨는 그 양념 맛에 매료된 것 같았다.
결국 SNS의 레시피를 보고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며, 자기가 만드니 덜 맵게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한국 음식을 마트에서 사 먹거나, 한식당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아는 것만 사봤다고 했다. 근사하게 보여도 안 먹어봤던 음식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리라.
결국 이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접하는 경로는 주로 SNS나 이웃을 통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새는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서 짧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영상들이 자주 올라온다. 맛있게 먹는 모습까지 등장하면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다. 유튜브에서 상세하게 조리법까지 영어로 알려주는 것을 보면 용감한 사람들은 또 과감히 도전을 해보기도 한다.
나는 페이스북을 좀 하는데,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한식 그룹들이 종종 보인다. 나도 호기심이 동해서 한 군데 가입했는데, 보고 있다가 질문이 올라오면 종종 대답을 해주기도 한다. 그들 중에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 조리법에 박식한 경우도 있고, 진짜 하나도 모르면서도 뭔가 열심히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룹의 활동을 살펴보면, 자극적인 매운맛의 라면이나 외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음식을 건강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슷하게 해 먹고 나도 이렇게 건강식 먹는다고 자랑을 하면, 거기에 칭찬하는 댓글들도 달리고 서로 격려한다.
한식으로 생일상 차리기
예전에 캐나다 서부에 사는 시누이 집을 방문했다가, 완전한 한식으로 생일상을 차려줬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주 잘 먹고, 한식에 대한 이미지가 확실하게 잡히는 것을 보았다. 함께 초대했던 시누이의 친구도 굉장히 신기해 하면서 먹었는데, 그 음식들을 시내 한식당에서 사 먹을 수 있도록 이름을 받아 적기까지 했다.
외국인들이 무슨 음식을 좋아할지는 대충 알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꼭 한 가지 공식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흔히들 미역은 미끈거려서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내가 차려준 사람 중에서 싫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청국장이나 냉이 된장국 같은 향이 강한 음식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잡채는 외국인에게 권했을 때 가장 인기있는 음식이다 ⓒ 김정아
한국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국의 음식도 가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접고, 그 대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다 다양한 음식을 시도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여러 가지 면모로 점점 더 외국에게 알려지는 지금, 마트에서 판매되는 인스턴트 음식들이 잘 알려지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음식이 맛있고 건강하다는 사실도 함께 전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계속 주변에 좋은 한국 음식을 전파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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