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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경찰서는 집게손 피해자에게 사과하라"

[현장] 공정 재수사 및 재발 방지 시스템 요구... 수사팀에 2000여 명 연명 탄원서 제출도

등록|2024.08.08 14:58 수정|2024.08.08 15:25
 

페미니즘 사상검증 규탄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으로 구성된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 주최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열린 '페미니즘 사상검증 규탄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의 고소대리인인 범유경 변호사가 피해자 발언을 대독하고 있다. ⓒ 이정민

 
여성·인권·노동 단체들이 '넥슨 집게손 사건' 피해자의 고소 사건을 각하했다가 재수사를 결정한 서초경찰서 앞에 모여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공정한 재수사, 재발방지 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공대위)는 8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도 모자라 이제는 경찰이 '극렬 페미니스트가 집게손가락을 몰래 집어넣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조직 논리로 수용해 수사에 영향을 받는 데까지 이르렀다"라며 "미흡한 수사와 2차 가해한 점을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성평등한 관점에서 공정하게 재수사할 것을 약속하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건 처리 과정에서 성차별이 개입된 경위를 명확히 조사하고, 피해자 권리와 존엄성을 보장할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측 또한 "성실한 수사를 통해 절망한 피해자가 납득 가능한 수사 결과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측 범유경 변호사와 공대위 소속 10여 명은 "일부 남성들의 집단적 착각 멈추라", "시민을 두려워 않는 경찰은 각성하라"고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또 70개 단체, 1977명의 시민이 연명한 '성차별 수사에 분노하는 시민 탄원서'를 해당 사건을 수사한 서초경찰서 수사14팀에 전달했고, 수사팀 관계자들과 비공개로 면담하기도 했다.

피해자 "재수사 결정, 저 혼자라면 못 했을 일"
 

페미니즘 사상검증 규탄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으로 구성된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서초경찰서는 성차별적 풍토에서 벗어나 성평등한 수사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지난해 피해자 A씨는 이른바 '집게손'을 그리지 않았음에도 작업자로 지목돼 온라인 신상 유포와 악성 게시물의 피해를 당했다.

A씨는 이날 범 변호사를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불송치 결정 이후 암담한 나날들이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슬퍼할 틈이 없었다"라며 "(서초경찰서의 처음 결정처럼) 이 말도 안 되는 이유가 받아들여지면 제 뒤에 나올 피해자들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범 변호사님과 한국게임소비자협회에서 같이 머리를 맞대며 싸워주셨고,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연대해 주셨다"라며 "저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범 변호사는 서초경찰서의 최초 불송치 결정을 두고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부재하고 내부적 모순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서초경찰서의 수사결과 통지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풍토는 집게 손가락 동작을 기업 광고에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며 "잘못된 금기라면 수사기관이 동조해선 안 되고, 정당한 금기라도 모욕 등 범죄 피해가 발생한다면 (금기와 무관하게)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희는 고소 과정에서 (행여) 피의자들이 허위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해 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며 "그러나 이 결정서에서는 이러한 요청에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범 변호사는 서초경찰서가 "실익이 없어" 해외 공조 등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수사14팀은 고소인(A씨) 조사 당시 '고소 자료를 보충해 달라', '의견서를 추가로 달라'고 했다"며 "경찰의 성실한 수사를 믿었기에 (해외 공조 등)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불송치한 것은 실망스러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도 지적했는데... 경찰이 인지 못했다면 직무유기"
 

서초경찰서의 성차별적 수사에 분노!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으로 구성된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초서와의 면담에 앞서 '서초경찰서의 성차별적 수사에 분노하는 시민의 탄원서'를 전달하고 있다. ⓒ 이정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게임업계 내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지적한 것을 거론하며 "경찰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건 직무유기"라는 비판도 나왔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인권위는 해당 결정문에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닌 한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괴롭힘 대상이 되고 다수 집단 행동으로 직업 수행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며 "수사 시 관련 사건의 인권위 결정문을 참고하는 것은 기본임에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초경찰서의 수사결과 통지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이 작성한 공문서라기보다 혐오 댓글에 가까웠다"라며 "지독한 성차별 편향과 페미니즘에 대한 오류로 가득 찬 2차 가해 문서로 공문서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라고 질타했다.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도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여성을 향한 구조적 폭력과 성차별의 문제"라며 "(향후 재수사에서는) 성폭력 사건과 같이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는 서초경찰서가 "페미니즘에 동조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A씨가 고소한 온라인상 신상공개, 명예훼손, 모욕 사건을 모두 불송치했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첫 보도 후 '성차별 수사를 시정하라'는 취지의 온라인 집단 민원은 물론 정치권의 비판도 터져 나왔다.

보도 다음날까지도 "(A씨 회사 등에서) 오해를 받게끔 대응이 이뤄져 사람들이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비친 서초경찰서는 7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수사가 미흡했다"고 인정하며 "재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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