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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로 대기업 기술 유출 시도한 산업 스파이, 문익점이 떠올랐다

[리뷰] tvN <감사합니다>

등록|2024.08.11 15:21 수정|2024.08.11 15:21
기업 감사에 관한 드라마인 tvN 주말 드라마 <감사합니다>의 제7회와 제8회는 산업스파이 문제를 다뤘다. 처음에는 기술개발실에서 벌어진 직장 내 갑질 문제가 실은 산업 스파이와 관련된 문제였다.

드라마의 주 무대인 JU건설에서 기술개발실장으로 일하는 이지훈(신재하 분)은 회사의 명운이 걸린 기술개발 프로젝트인 J-BIMS를 외부에 유출하고 500억 원을 챙기는 음모를 꾸민다. 그는 음모에 방해가 되는 사원 오윤우(김신비 분)를 은근히 괴롭히며 업무에서 배제한다. 지속적인 괴롭힘을 참다못한 오윤우가 회사 로비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일을 계기로 포청천 같은 감사팀장 신차일(신하균 분)이 이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다.

산업스파이의 현실
 

▲ 드라마 장면 갈무리 ⓒ tvN

 
J-BIMS 프로젝트에 회사의 앞날은 물론이고 자신의 명운까지 걸려 있다고 생각하는 황세웅 사장(정문성 분)은 감사팀장 신차일에게 프로젝트 시연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신차일의 감사 업무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그의 감사가 J-BIMS 개발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차일은 사장이 탐탁지 않아 해도 이 일을 끝끝내 파헤친다. 결국 개발실장의 음모를 밝혀내고, 이 때문에 시연회는 행사 도중에 중단된다. 시연회 도중에 기술을 유출하려는 개발실장의 음모는 행사 도중에 무산됐다. 이 때문에 회사도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개발실장은 체포되기 직전에 USB를 빌딩 창문 밖으로 던져 차량 바퀴에 깔리게 했다.

<감사합니다>가 다룬 산업스파이 문제는 지극히 현대적인 사안 같지만, 실상은 매우 고전적이다. 산업이라 할 만한 현상이 인류 사회에 등장한 이후로 산업 정보를 훔치려는 시도들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 감사팀장을 맡은 신하균(좌)과 이정하(우) ⓒ SBS 갈무리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오는 과정도 크게 보면 산업스파이를 연상시킬 만했다. 1364년에 사신단 서열 3위인 서장관이 되어 쇠락기의 몽골제국(원나라)을 방문한 그는 양자강(장강) 지역에서 목화씨를 확보했다. 그는 이것을 붓대 속에 숨겨 고려에 반입했다.

그의 목화씨 반입은 비단 제조법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파되는 방법과 흡사했다. 고대 한나라 이래로 중국은 비단 제조법을 극비에 부치고 누에알 유출도 금지했다. 그런데도 비단 제조법은 한국·일본 등지로 전파됐다. 하지만 서쪽으로는 쉽게 전해지지 못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서양 종교인들의 산업 스파이 활동이다.

6세기 중엽,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성직자 3명이 누에알을 지팡이 손잡이에 숨겼다. 이들은 이것을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황제에게 바쳤고, 이는 유럽에서 비단 산업이 발달하는 토대가 됐다. 문익점도 이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목화씨를 들여왔던 것이다.

문익점의 목화씨 반입은 오늘날의 산업 스파이와는 비견도 되지 않는 역사적 의의를 띠었다. 네스토리우스파 성직자들의 행위와 비교해 봐도 더 높은 의의를 띠었다. 비단은 소수 부유층의 옷감으로 쓰인 데 반해 무명은 대다수 일반대중의 옷감이 되었다. 목화씨 반입은 한국에서 대중의 의류 생활에 혁명을 가져왔다.

신라의 쇠뇌 기술, 어떻게 옮겼을까

<감사합니다>는 USB를 통한 기술 유출의 시도를 보여줬다. 문익점의 경우에는 붓대가 USB 기능을 했고, 네스토리우스파 성직자들의 경우에는 지팡이 손잡이가 그런 기능을 했다.

고구마 재배 기술이 16세기 중엽에 중국으로 전래될 때는 돛 줄이 비슷한 역할을 했다. 명나라 상인 진진룡(陳振龍)이 고구마를 갖고 필리핀 루손섬에서 대만해협을 가로질러 명나라 복건(푸졘)으로 들어갈 때 그 배의 돛 줄에는 고구마가 숨겨져 있었다. 그는 고구마가 뛰어난 농작물임을 알아보고 그런 모험을 감수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당나라 황제 고종(당고종)이 신라의 방위산업 기술을 빼내 가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신라본기 문무왕 편은 당고종이 신라 기술자를 당나라에 초청한 뒤 기술을 빼내려 했던 일을 소개한다.

신라와 당나라가 나당 연합을 통해 고구려를 멸망시킨 이듬해인 669년이었다. 이해 겨울에 당고종이 신라 문무왕에게 국서를 보냈다. 쇠뇌 기술자 구진천(仇珍川)을 보내달라는 요청서였다. 쇠로 된 발사 장치가 달린 신라의 활 제조술을 전수받을 생각이었다.

문무왕 편에 따르면, 당 고종은 구진천을 불러다 놓고 쇠뇌 제작을 명령했다. 그런데 구진천이 만든 쇠뇌는 화살을 30보밖에 날려 보내지 못했다. 당고종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구진천에 "듣자 하니, 너희 나라에서 쇠뇌를 만들어 쏘면 1천 보는 나간다던데 지금 고작 30보가 아니냐? 어찌 된 일이냐?"라고 물어봤다.

구진천은 재료 탓을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가 '중국제'임을 지적했다. 활에 들어간 중국 목재가 시원치 않아서 그렇다는 답이었다. 신라에서 목재를 가져오면 1천 보 정도는 날릴 수 있다고 그는 자신했다.

고종은 사신을 새로 파견해 신라의 목재를 구해왔다. 그랬더니, 쇠뇌의 성능이 약간 향상됐다. 새로 제작된 쇠뇌에서 발사된 화살은 '60보'나 날아갔다. 어찌 된 일이냐고 고종이 묻자, 구진천은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목재가 바다를 거쳐올 때 습기를 머금은 까닭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둘러댔다.

고종은 구진천이 신라에 대한 애국심을 발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구진천이 일부러 실력 발휘를 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제대로 못할 시 중형을 주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협박은 통하지 않았다. 구진천은 끝끝내 재능 발휘에 실패했다고 <삼국사기>는 말한다. 신라 기술자를 초청한 뒤 고급 군사기술을 빼내려 했던 당 고종의 계획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신라의 쇠뇌 기술은 'USB'에 담아 옮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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