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자서전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대목
[주장] 이제는 한국 축구의 '리더' 교체가 필요하다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024 파리 올림픽이 진행 중인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의 잔니 인판티노 회장과 면담한 걸로 확인됐다. FIFA는 6일(현지시간) "인판티노 회장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파리에서 만났다"며 면담 장면을 담은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 연합뉴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2003년 3월 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중계된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참다 참다 내뱉은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검찰의 민낯을 마주할수록, 노 전 대통령의 이 말은 명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40년 만에 한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많은 축구 팬들은 예년과 달리 올림픽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조용히 지나가도 모자랄 판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일까. 그는 최근 출간한 자신의 자서전 <축구의 시대>를 들고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을 만나기 위해 파리에 나타났다.
몇몇 언론들은 피파에서 제공한 사진을 두고 정몽규 회장이 인판티노 회장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선물하면서 '같이 읽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사진들을 아무리 봐도 그 책은 한글판이었다.
최고의 선수진
지금 많은 축구 팬들은 물론 대다수의 언론도 이번 정몽규 회장의 파리행을 두고 비판 일색이다. 그 이유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서 그간 그가 보여준 행보 때문이다. 아마추어 같은 축구협회와 달리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면면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기 때문에 축구 팬들의 마음은 더욱 답답하다.
공격진에는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의 손흥민, 역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며 최근 유럽에서 주목받는 전술가형 감독 로베르토 데 제르비 (마르세유)의 러브콜을 받은 황희찬이 있다. 미드필더진에는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유형의 미드필더로 명문 클럽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 분데스리가 올해의 미드필더 후보 15인에 선정된 마인츠의 이재성, 영국 2부리그(EFL 챔피언십)지만 이적 첫해부터 스토크 시티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배준호가 있다.
수비진에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함께 세계 최고의 팀으로 불리는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수비수 김민재, 올해 프리미어리그 브렌트포드 소속으로 프리시즌에서 주전으로 기용되며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김지수가 있다. 또 골키퍼에는 선방 능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코리아 데 헤아'로 불리는 조현우, 단순히 선방뿐만 아니라 독일의 노이어와 같이 준수한 발밑 기술을 요구하는 현대 축구 트렌드에 적합한 김승규가 있다.축구협회와 코치진만 좋으면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라인업이다.
그러나 이런 역대급 선수진을 보유하고도 최근 대한축구협회는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와 있고, 한국 축구는 부진에 빠져 있다. 실제로 대한축구협회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등 대한축구협회 행정에 대해 지난주 예비 감사를 마쳤고, 올림픽이 끝나고 본 감사를 계획하고 있다.
최악의 축구협회
도대체 최근 한국 축구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인가? 몇몇 굵직한 사건들만 한 번 상기해 보자. 단연 최근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과정에서 축구협회는 무능력 종합선물세트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홍명보 전 울산 HD 감독이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번 대표팀 감독으로 '면접도 없이' 사실상 특채로 선택되었다.
심지어 홍명보 전 울산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발표되기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가 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되는 게 불편하다"며, 울산 팬들을 향해 '걱정 마라'고 공언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1주일 만에 태도를 180도 바꾸며 울산팬들을 버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홍명보 감독은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라며, 그는 대표팀 감독을 수락하는 동시에 "나를 버렸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다. 이는 철저하게 '나 아니면 한국축구를 살릴 수 없다'는 영웅주의에 빠진 모습에 불과하다. 그냥 대표님 감독이 하고 싶었다고 말하고, K리그와 울산 팬들에게 사죄를 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러나 이보다 더 문제인 것은 지난 5개월 동안 대표팀 감독 선정과정에서 축구협회가 보인 무능이다. 축구협회는 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한 전력강화위원회(전강위)를 꾸렸는데, 전강위는 회의 중간에도 지속적으로 언론에 회의 내용을 발설하며 문제를 야기했다. 결국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제시 마시(현 캐나다 대표팀 감독) 후보를 놓쳤다.
또한,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지난 6개월 동안 축구협회는 두 차례 임시감독을 선임했다. 그 임시감독이 황선홍 감독과 김도훈 감독이었는데, 당시 황선홍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을 겸직하는 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축구협회는 황선홍 감독에게 겸직을 맡겼다.
이로 인해 황선홍 감독은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을 겸하는) U-23 아시안컵을 앞두고 사우디에서 열린 WAFF U-23 챔피언십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 축구대표팀은 무려 40년 만에 올림픽 진출이 좌절되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에선 그 누구도 이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
이외에도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문제, 클린스만호의 아시안컵 실패 과정 그리고 지난해 승부조작 선수 기습 사면 시도 등에서 대한축구협회의 아마추어적 행정력이 드러났다. 이에 정몽규 회장은 자서전 <축구의 시대>를 발간할 것이 아니라 <무능의 연속>을 발간해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정 회장은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가?
▲ 정몽규 <축구의 시대> 겉표지 ⓒ 브레인스토어
무엇보다 <축구의 시대>를 보면 그가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리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무식하고 언론이 잘못 전달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이번 자서전에 포함된 두 가지 대목을 살펴보자.
(1) "축구협회장에게 필요한 덕목은 높은 수준의 역량과 도덕성, 인내심, 참을성이다.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등 주요 대회에서 대표팀이 부진하면 온 국민의 원성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어느 종목도 국가대표팀 성적이 나쁘다고 회장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럴 때마다 축구협회장이나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민욕받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 "누군가 내 임기 도중 이뤄냈던 업적에 대해 점수를 매겨보라고 한다면 10점 만점에 8점 정도는 된다고 대답하고 싶다. (···) 나는 점수에 상당히 박한 편이라 내가 8점이라고 하면 상당히 높은 점수다."
정몽규 회장은 지금 자신이 왜 국민들은 물론 축구 팬들에게 비판을 받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런 리더가 가장 무섭다. 왜냐하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현재 자신의 조직의 문제점을 외부에서 찾기 때문에 '소통' 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리더 교체가 필요하다. 몇몇 축구팬들이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양궁협회장 정의선 회장에게 축구협회장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이제는 재벌총수가 아닌 전문경영인(CEO)에게 축구협회를 맡겨야 할 때다. 이제는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축구협회를 경영을 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 그 아래에는 인맥이 아닌 축구의 관점에서 한국 축구의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특히 현재 세계 축구의 트렌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이 포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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