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십 된 로코의 여왕, 25년 만에 옛 연인 재회

[리뷰] 영화 <우린 어떻게 될까요?>

등록|2024.08.11 16:23 수정|2024.08.11 16:23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땀을 하도 흘려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가 되는 계절, 바쁜 한 주가 끝나는 주말이 되면 어릴 적 주말의 명화를 보듯이 한 편의 영화 같은 선물을 나에게 주고 싶어진다. 그렇게 이번 주에 고른 주말의 영화는 <우린 어떻게 될까요?> (원제 what happens later). 누군가 살면서 아쉽고 안타까운 인연 하나 있지 않을까. 바로 그런 다하지 못한 인연의 후일담을 담은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건, 스티븐 디츠의 <별똥별>을 옮긴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 외려 그보다는 익숙한 두 배우 맥 라이언과 데이비드 듀코브니라는 이름 때문이 아닐까 싶다. TV와 스크린에서, 로맨틱 코미디와 스릴러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익숙한 두 사람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에 손이 갔다.
 

▲ what happens later ⓒ 넷플릭스

 
25년 만에 우연히 만난 연인

영화 속 '윌레미나' 맥 라이언은 49살이라 한다. 물론 우스개다. 극 중 두 사람은 49살보다는 많은 오십 대로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w. 데비이스라는 같은 이니셜의 이름을 지닌 윌레미나와 윌리엄은 오스틴에서 보스턴으로, 보스턴에서 오스틴으로 가는 도중 폭설로 인해 낯선 한 공항에서 만나게 된다.

윌리엄은 15살의 딸을 가진 데다가 상사도 젊은 나이라 소통하기 힘들지만 여전히 출장을 다녀야 한다. 윌레미나는 보스턴에 있는 친구 지니의 정신 치료를 하러 가는 길이다. 이런 설정 때문인지 영화 주인공들은 50대로 나오지만, 실제 배우들은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여 초반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배우의 모습 그대로 60대의 해후로 했다면 차라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50대건, 60대건, 25년이건, 35년이건 두 연인의 해묵은 오해에 나이와 시간이 그다지 장애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이 작품은 2015년 <아타카>에 이어 맥 라이언이 감독이자 주연으로 나선 두 번째 작품이다. 폭탄 같은 폭설로 공항에 꼼짝 못 하게 된 하룻밤 동안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며 서로의 진심에 도달하기까지의 일종의 '소동극' 같은 설정이다. 비교가 무색하지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같은 설정이 언뜻 느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성형으로 인해 저 사람이 맥 라이언인가 싶기도 하지만, 총기 어린 푸른 눈빛과 티키타카 하는 대사를 통해 여전한 맥 라이언의 장기가 읽힌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연기를 한때 여심을 설레게 한 눈빛의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넉넉하게 받아준다.

두 사람의 운명
 

▲ what happens later ⓒ 넷플릭스

 
영화는 자신의 딸에게 '화해'를 호소하는 윌리엄으로 시작된다. 윌리엄은 무용을 하고 싶다던 딸이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 했다. 아내와 별거하고, 딸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않고, 젊은 상사와는 소통이 어렵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낯선 공간에 발이 묶이고, 공항에서 울려 퍼지는 요즘 음악에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25년 전 연인 윌레미나가 나타난다. 당시 윌리엄은 시끄러운 식당 한 켠에서 윌레미나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25년 후에 만난 윌리엄은 여전히 단호하다. 그러면서 25년 전 그때 떠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았을 인연이라고 말한다.

25년 만에 만났지만 멀리 떨어져 앉은 거리처럼 두 사람은 좀처럼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외려 기회만 되면 서로를 피한다. 그런데 비행기는 자꾸만 연착되고, 두 사람을 같은 공간에 묶어둔다.

이 과정에서 윌레미나는 장난스레 지갑 바꾸기 게임을 한다. 이 게임을 통해 둘은 25년 동안 굳었던 서로의 경계를 풀어낸다. 그는 2월 29일 낯선 공항에서 만난 두 사람이 '운명'이라고 말한다. 윌리엄은 윤달은 과학적으로 계산상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뿐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자유분방한 윌레미나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확신한다.

다만, 윌레미나는 윌리엄을 기억한다. 음악에 까다로운 게 여전하고, 긴장하면 턱을 만진다면서 25년이 지나도 어제처럼 그를 기억한다. 윌리엄은 그런 그녀를 친숙하게 느끼며 동시에 경계한다. 분명 윌레미나를 떠난 건 윌리엄인데, 그리고 윌레미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도 윌리엄인데 어쩐지 그는 상처받은 사람처럼 보인다.

연인의 속내
 

▲ what happens later ⓒ 넷플릭스

 
연인을 헤어지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살아가며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을 우리는 얼마나 수긍할까. 결국 두 사람은 오래도록 드러나지 않았던 속내를 서로에게 드러낸다. 겹겹이 쌓인 양파 껍질처럼 두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묘미, 영화는 맥 라이언과, 데이비드 듀코브니라는 배우들의 소동극을 넘어서 인연의 속내를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25년 전, 윌리엄은 자유분방해 보인 윌레미나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녀가 어울리는 남자 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을까 한 것이다. 결국 연인이라면 누구라도 있을 오해를 푸는데 25년이 걸린 것이다.

두 사람은 폭설에 묻힌 낯선 공항에서 오해를 풀어낸다. 그리고 이 과정이 두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실 폭설로 인해 머무르는 낯선 공항이라면 아비규환을 떠올릴 수 있다. 다만 영화는 '윤달'을 통해 공항을 운명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공항 안내 방송이 유머 넘치는 조연이 돼,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 공항의 라운지에서 로맨틱한 춤을 추게 만드는 판타지 같은 설정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판타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오해를 운명적으로 푸는 것이 아닐까.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후 각자의 여정에 오른다. 그래서 그 이후는? 영화는 또 다른 후일담으로 남겨진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