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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뒤집어놓은 한식... 그런데 그 식당은 왜 망했을까

[2024 글로벌리포트 - K푸드 월드투어]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이 만든 K푸드 열풍의 명과 암

등록|2024.09.07 11:13 수정|2024.09.07 11:13
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편집자말]

▲ 지난 2023년 7월 1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K-관광 로드쇼'가 미국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모습. ⓒ AP/연합뉴스


예전 같으면 20~30분 정도면 충분했다. 단골 식당 대기 시간 얘기다. 지난 금요일 오후, 워싱턴DC에서 기차를 타고 뉴욕에 도착하는 친구와 맨해튼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전화 예약은 불가능한 곳이니 30분쯤 먼저 가 웨이팅리스트에 올려놓으면 될 거라는 생각은 안이했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고요?"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생쥐 꼴을 한 손님에게 냅킨을 건넨 직원은 지레 단념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잠시 고민하다 웨이팅에 이름을 올려놨다. 이 시각 맨해튼 한식당은 거의 비슷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간 45분 후, 친구와 난 고대하던 만두전골을 영접할 수 있었다.

별 개수로 측정되는 세계

▲ 뉴욕 맨해튼 한식당 입구에 붙어있는 Michelin 2023 스티커 ⓒ 최현정


에미상 최우수 코미디 시리즈,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배우조합 남자 연기상.... 2023~2024년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디즈니플러스 TV 시리즈 <더 베어(The Bear)>는 뉴욕 파인 다이닝 식당의 셰프가 죽은 형이 남긴 시카고 변두리 낡은 식당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난관을 헤쳐 나가며 매일매일 성장하는 식당 셰프들의 전쟁 같은 스토리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미국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극 중 재능 있고 야심찬 여주인공 시드니가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각오를 보여준다.

"별 하나짜리 식당이 목표예요. 사업도 유지시켜 주면서 어느 정도 수준도 있다는 소리니까."

이 드라마 속 인물 서사에 설득력을 주는 '별' 얘기는 미슐랭 스타를 말한다. 치열한 스트리밍 시장 속에서 시즌 3까지 만들어진 셰프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미국 도심에서 식당을 한다는 것이, 나아가 성공까지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전쟁통 같은 경쟁 속에서 한국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속속 이름을 알리고 있다.

"공식적으로, 아토믹스(Atomix)는 여전히 북미 최고 레스토랑."

지난 6월 6일 트렌드잡지 <옵저버(OBSERVER)>는 하루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시상식 결과를 전했다. 국제 요식업계 전문가와 여행 미식가 1080명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세계 최고 레스토랑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디스프루타르(Disfrutar)였다. 1위가 유력했던 덴마크 코펜하겐 레스토랑 알케미스트(Alchemist)가 지난해 5위에서 올해 8위로 밀릴 정도로 치열했던 이번 투표에서 뉴욕 한식 파인 다이닝 식당 아토믹스(Atomix)는 6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이는 북미권에선 최고 순위로, 그다음은 일본식 메뉴를 선보인 캘리포니아의 식당이 46위에 있을 뿐이다.

나 같은 이에게 아토믹스란 이름은 신기루 같다. 예약도 어렵고 독창적인 한식 코스와 세련된 세팅, 서비스로 유명한데 무엇보다 언감생심인 가격 때문이다. 한국에서 관련 대학을 졸업하고 경력을 쌓은 젊은 부부가 2016년 식당을 열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 식당은 '뉴욕타임스 베스트 레스토랑 100(The 100 Best Restaurants in NYC)'에서도 별 세 개를 받았다. 신랄한 평론으로 유명한 <뉴욕타임스>의 레스토랑 평론가 피트 웰스(Pete Wells)는 2023년 8월에 쓴 글에서 한국 고급 식당들이 뉴욕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됐던 프랑스 요리의 패권을 종식시키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는 미쉐린 가이드 뉴욕판(2023년)에 9개의 현대 한국 식당이 별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뉴욕 어느 중국 식당도 그 별을 받지 못한 사실을 전한다. 중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고급 식사에 쓸 돈이 넘치는, 중국에서 이주한 뉴요커들이 그렇게 증가하는데도 말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

▲ 트레이더조 매장에 붙어있는 특별 안내판. "김밥을 찾는다면 직접 직원에게 문의해~" 직원이 창고에서 재고를 확인하고 갖다준다. 최대 2개까지. ⓒ 최현정


이런 고급 식당들 말고도 한식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걸 실감하는 곳은 일반 그로서리(식료품점)에서다. 환경을 생각하는 젊은 층이 주 고객인 트레이더조(미국 슈퍼마켓 체인)에서 냉동 김밥은 최대 히트 아이템이다. 운 좋게 재고가 있어도 단 2개만 살 수 있다. 그밖에도 Tteok Bok Ki(떡볶이), Bulgogi(불고기), Pa jeon(파전), Jumeokbap(주먹밥), Gochujang(고추장) 등등에 인쇄된 Korean란 단어는 안전, 청결, 맛,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서와도 같다.

미국에만 584개 매장이 있고 회원 수가 1억 3200만 명의 코스트코도 마찬가지다. 냉동식품 코너에 비치된 다양한 한국 Mandu(만두) 종류는 금세 재고가 바닥나고 치킨이나 즉석밥, 라면의 인기도 꾸준하다.

내 '최애'는 오뚜기 전복죽인데 떨어지지 않게 늘 한 박스씩 챙겨 놓는다. 최근엔 Rapokki(라볶이)를 비롯해 Crispy corn dog(크리스피 콘 도그 - 한국식 핫도그) 등 새로운 제품들이 쉴 새 없이 등장 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조건 한국 제품이면 구입하곤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도 없이 다양한 제품들을 만나고 있다.

소비자로서 아쉬운 물건은 8.99달러(1만 2000 )에 팔리고 있는 1.2kg짜리 김치제품이다. 매번 살 때마다 너무 시고 물러서 처음 제품을 맛보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줄까 걱정된다.

김치는 이젠 누구나 인정하는 대표적인 한국 음식으로, 건강식으로도 인기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대미 김치 수출량은 6600톤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0% 증가했다. 수출액 역시 2410만달러(약 330억 원)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18.9% 늘었고, 이는 역대 최고치다. 실제로 동네 벼룩시장에서 조차 조그만 유리병에 담아 파는 김치를 소중히 사가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인기가 실감된다.

지난 1월 25일, <NPR 뉴스>는 전 세계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한국 음식에 대해 리포팅했다. 직접 서울의 식당들을 취재한 기자는 BTS와 블랙핑크,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같은 노래, 영화, 드라마에 이르는 한국 문화의 인기가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소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달 뉴저지주 뉴어크(Newark)서 열린 아이유 콘서트에서 느낀 경험도 다르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티켓팅에 성공해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한국어로 된 모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춤추고 환호하던 팬들은 떼창도 한국어로 했다.

neoye geu han madi maldo geu useumdo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naegen keodaran uimi 나에겐 커다란 의미
neoye geu jageun nunbitto 너의 그 작은 눈빛도
sseulsseulhan dwinmoseubdo 쓸쓸한 뒷모습도
naegen himgyeoun yaksok.... 나에겐 힘겨운 약속

연음과 높낮이를 정확히 맞춰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이들에게 도대체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싶었다. 그들에게 한국 음식은 신비롭고 세련된, 독특하고 친근한 그 문화의 맛이 아닐까?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팝송을 흥얼거리면서 햄버거와 피자에 열광하던 그 옛날 나처럼 말이다.

▲ 지난 7월 15일 뉴어크에서 열린 아이유 콘서트. 1만 6755석이 가득찼다. ⓒ 최현정


30년 한식당이 문 닫은 이유

지난 2022년 뉴욕 플러싱에서 유명했던 30년 역사의 한식당이 뉴욕시로부터 강제 퇴거 조치를 당했다. 1992년 처음 문을 연 후 넓은 공간과 넉넉한 주차장 덕에 한인들의 단체 모임 장소로 애용되던 곳이다. MBC 무한도전팀이 뉴욕에 왔을 때 식사를 한 곳이기도 하다.

늘 문전성시였던 유명 한식당이 문을 닫은 원인은 노동법 위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뉴욕 법원은 직원의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등의 이유로 이 식당에 267만 달러(36억 6000여 만 원) 지불 판결을 내린다. 이에 불복한 업주는 강제 퇴거를 피하기 위해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이후 5번에 걸쳐 파산보호 신청 자진철회와 재영업, 파산을 반복했다. 결국 2021년 법원의 파산보호 신청금지 명령에 따라 다음 해 강제 퇴거당한 것이다.

뉴욕에 사는 많은 한인들에게 추억의 장소였던 크고 오래된 한식당의 폐업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식당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법률적인 문제, 특히 노동법에 대한 문제는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에겐 간과해선 안될 사항이다. 어쩌면 지금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분야의 오너들에겐 이 오래된 식당의 번영과 퇴거가 반면교사다. 한국의 뛰어난 맛과 높은 문화적 자부심으로 승부하되 준법정신과 선진 마인드,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 등은 또 다른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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