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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의사들이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서평>] 스텔라 황 지음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를 읽고

등록|2024.08.15 14:20 수정|2024.08.15 14:20
우리의 삶은 어떠한 형태로든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직업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을 할 때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만약 어떤 직업의 공급이 부족해지면 문제가 생긴다. 그 직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수록,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일수록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의료 이슈를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전문 의료 인력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국민들의 불안은 높아져간다. 국가와 의사의 대치가 길어질수록 환자들의 피해는 늘어난다.

돈이 안 되는 진료과목은 의사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한다. 연봉을 아무리 높여도 지방행을 자처하는 의사는 아무도 없다. 수술이 필요한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해 안타깝게 생명을 잃는 상황은 더 이상 사건사고가 아닌 일상이 되었다.
 

▲ 책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표지 ⓒ 동양북스

 
그래서 이 책에 더 눈길이 갔다. 인기가 많은 분야가 아닌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의 이야기, 피도 눈물도 없는 딱딱한 의사가 아닌 매일 우는 의사의 이야기는 낯설지만 궁금했다.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의 저자 스텔라 황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이다. 그녀는 예비의사 교육을 하면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아기를 돌본다.

매일 죽음과 함께하는 일상

저자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숨가쁜 일상을 그려낸다. 출산의 역동성과 죽음의 그림자가 깃든 중환자실이라는 조합은 뭔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녀의 삶은 두 가지로 채워져 있다. 아기들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는 환자들의 죽음.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의사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다. 사회적인 위치와 대우, 높은 급여는 언뜻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단 한 번도 직업인으로서의 의사가 부럽지 않았다.

저자의 삶은 과도한 업무와 긴장의 연속이었다. 매일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는 삶은 어떠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출산 후 어린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야간근무 이후 아이를 돌보던 그녀는 결국 번아웃을 겪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중한 이의 죽음에 익숙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다. 그녀는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생명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생이 아닌 죽음이 찾아올 때, 그리고 이런 상황이 끝없이 반복될 때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녀가 힘든 삶을 견디는 가장 큰 동력은 아기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저자는 위급한 환자들을 자신의 자녀처럼 대했다. 신생아들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손바닥보다 작은 미숙아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그녀의 삶에서 누구보다도 간절한 소명의식이 느껴졌다.

또한 그녀는 의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환자를 환자가 아닌 가족으로 대하며, 치료와 처방을 넘어 인간대 인간으로 공감하고자 노력했다. 그녀는 신분 상승과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환자(아기)와 그 가족들을 향했다. 위급 상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고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한결같은 긍지와 열정이 참 멋있게 느껴진다.

함께 일을 하는 저자의 동료들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피와 땀, 눈물을 나눈 동료들의 위로는 낙담한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만이 가능한 공감과 격려가 있다. 그들은 죽음보다 강한 결속력으로 서로의 삶을 채워나간다.

글쓰기는 그녀의 삶을 회복시키는 좋은 수단이었다. 자신의 건강을 잃어가며 환자를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의 일상을 글로 쓰며 자신의 무너진 마음을 재건한다. 마음을 다 주었던 생명들이 떠나갈 때마다 그녀의 삶 또한 소멸되는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지속적인 글쓰기는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죽음 앞에서 매번 우는 의사

책을 읽으며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순간이 스쳐갔다. 첫째 딸아이가 태어난 뒤 2시간이나 지났을까,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다. 신생아 빈호흡으로 아이가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 우는 아내를 달랠 겨를도 없이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부모가 된 지 하루도 안 된 초보아빠였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문제라도 생긴다면 당장 심장이라도 떼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하루에 삼십 분, 정해진 면회시간에만 가능했다. 회사에 출산휴가가 있었기에 다행히 매일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두려움과 원망보다는 간절함이 가득했던 것 같다. 자녀가 무사히 중환자실에서 퇴원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평생 안 하던 기도가 술술 튀어나왔다.
 

▲ 소아과와 산부인과 인력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에, 저자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고맙다. ⓒ chrishcush on Unsplash

 
모든 신생아가 무사히 퇴원을 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건강을 되찾고 가정으로 돌아가지만, 누군가는 끝내 숨을 거둔다. 딸아이의 담당의사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말했다.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하고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병원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보호자에게 말을 한다고. 그것이 대한민국 중환자실의 매뉴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벌벌 떨면서 그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중환자실에 있던 딸아이를 보며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기를 기도했다. 공부를 잘하고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밝고 건강하게만 커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앞으로도 성적이나 다른 것을 자녀에게 많이 바라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다.

저자는 죽음 앞에서 매번 우는 의사이다. 하지만 이 눈물은 연약함으로 인함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죽음을 마주하지만, 죽음에 익숙해지고 무덤덤한 의사가 되지 않기 위한 자기 다짐이다.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환자를 대하는 마음의 본질이며, 누구보다 의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프로의 열정이다.

한편에서는 저출생과 국가소멸이 화두이지만, 그녀가 일하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매일 치열한 죽음과의 사투가 이어진다. 소아과와 산부인과 인력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에, 저자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신뢰와 존중이 아닌 분열과 다툼이 가득한 세상이다. 코로나라는 힘든 시기를 지나며 누구보다 든든했던 의사들이 지금은 온 국민에게 욕을 먹고 있다. 저자의 삶을 보면서 환자와 의사라는 경계를 넘어 서로를 더 배려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의 사투는 여전히 진행 중일 것이다. 매일 죽음을 마주하지만 오뚝이처럼 씩씩하게 일어서는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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