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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환경부가 삽 들고 오면 벌떼처럼 일어난다"

[세종보 천막 소식 103일-104일차] 금강과 낙동강의 만남... 두 강을 비춘 붉은 초생달을 보다

등록|2024.08.11 20:04 수정|2024.08.11 20:04
 

▲ 세종보 철거 기원탑 ⓒ 박은영

 
'세종보 해체 기원'

세종시민 우인정씨는 세종보 천막농성장 앞 금강변에 나와 리코더 연습을 한다. 오후에 부는 시원한 강바람을 쐬러 천막농성장을 찾았는데 한동안 돌을 고르더니 금세 멋진 탑을 쌓았다. 정성스레 하나하나 괴어서 촘촘하게 쌓은 돌탑을 보니 내 마음이 다 든든하다. 저 탑이 그대로 있다면 세종보 해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더위에 여기에 어떻게 있냐고 걱정하며 발걸음하는 이들이 있어 팥빙수도 먹고, 시원한 커피도 마시며 금강의 불타는 저녁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뿐인가. 흰뺨검둥오리가 저녁인데 어디를 그렇게 서두르는지 부지런히 강 저편으로 날아간다. 할미새들은 바쁘게 강변을 오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만난 이 강의 풍경이 또 감사한 하루다.

오후 7시가 되자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입추가 지났다. 야간에 농성하는 이들도 전보다 한결 낫다고 이구동성이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강물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

우리가 4월 30일에 이곳에 농성천막을 치지 않았다면 꽉 막혀있을 강이다. 말없이 흐르는 강이 말을 하는듯하다. 세종보가 담수됐다면 녹조도 창궐하고 악취도 진동했을 것이라고.

금호강 팔현습지… 수리 부엉이의 천국
 

▲ 팔현습지의 아름다운 모습 ⓒ 정수근

 
지난 10일, 보철거시민행동은 금호강 팔현습지를 찾았다.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등이 서식하고 있는 팔현습지는 낙동강의 지류인 금호강의 대구 수성구 구간에 펼쳐져 있다. 총 8킬로미터에 걸쳐 형성된 팔현습지에는 멸종위기종 19종이 살고 있다. 산과 강이 바로 연결되어 있어 야생동물들의 주된 서식지이기도 하다.

태초의 신비로움이 잘 간직된 이곳에 삽질을 하려고 하는 대들고 있는 자들이 바로 환경보호의 첨병이어야할 환경부다. 수리부엉이의 서식처 등 천혜의 생태계를 마구 난도질해서 보도교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보행교가 있는데 강의 우안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좌안의 도로에 이을 수 있는 보행 다리를 설치해서 주민 편의를 도모하겠단다.

그런데, 환경부가 구상하는 다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주민들의 단축 거리는 극히 적다. 가령 보행자의 경우는 5분, 자전거의 경우는 1분 정도의 시간이 줄어든다. 이를 위해 수만 년 동안 형성된 생태축을 완전히 단절시키고 허물어버린다는 게 황당할 따름이다. 지금도 이곳을 지켜달라는 천주교 미사와 주민탐방의 발길들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 팔현습지에 사는 딱따구리의 흔적 ⓒ 임도훈

 
특히 팔현습지의 왕버들숲을 걸어본 이들은 부처손이나 애기석위, 개밀과 같은 희귀식물들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그래서 팔현습지를 안내한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도심 속에 이런 습지가 남아있는 것은 큰 복"이라면서 "국가습지로 지정하고 잘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현습지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온 정 처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경고했다.

"윤석열 환경부에 강력 경고한다, 팔현습지에 삽질을 한다면 전국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날 것이다."(김병기의 환경새뜸 생중계 )

강 위의 초승달… 흐르는 강은 어디든 아름답다
 

▲ 낙동강과 금강에서 바라본 그 날의 초승달 ⓒ 임도훈

 
이날, 낙동강에 간 나귀도훈과 앞산(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구미보 아래 감천과 낙동강 합수부의 강물 속에 앉아 생중계 대담(김병기의 환경새뜸)을 했다. 합수부를 물들이는 붉은 초생달이 화면에 잡혔다. 세종보 농성장 위에 뜬 달과 같다. 생중계를 보며 댓글을 달았다.

"우리 같은 달을 보고 있네~"

강의 빛을 다르게 수놓는 노을과 초승달은 어느 흐르는 강이라면 어디든 아름답다. 마음으로 평화가 흘러들어온다. 이것이 강의 모습이다. 부드러운 모래 위를 얕게 흐르는 강은 화면으로만 봐도 아름답다. 모래강이 가진 본연의 모습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누구나 앉아서 강을 즐길 수 있다. 왜 이런 모습을 우리는 멀리 가야만 찾을 수 있게 된 것일까.

2박 3일의 현장조사를 통해 낙동강에 대해 더 알아간다. 강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존재다. 멀지 않은 우리의 삶 곳곳을 흘러왔고 누군가의 추억에 몇 세대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가족들과 물살이와 자갈과 모래와 함께 한 경험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 비둘기들이 회의하는 돌탑 옆 모습 ⓒ 박은영

 
'구~ 구~'

우인정씨가 쌓은 돌탑 옆으로 비둘기들이 나들이를 나왔다. 서로 모여앉아 강물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그늘에 잠시 쉬는 것인지, 서로 회의를 하는 것인지, 가끔 울음소리를 서로 주고 받는다. 새로 생긴 돌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법 가까이 다가가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키 큰 백로 한 마리가 고개를 아래로 하고 한참 강을 바라본다. 먹이를 찾는 모양이다. 반나절이 넘는 시간동안 한 자리에서 굳게 서 있다. 가만히 보면 먹이를 찾는다기 보다는 무슨 생각을 깊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끔 날개를 퍼덕이기도 하고 몇 걸음 걷기도 한다. 뭔가 안 풀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 오늘도 천막농성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임도훈

 
새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나른한 주말 오후의 풍경이 이제 낯설지도 않고 자연스럽다. 어쩌면 강에 남아 있는 이 친구들은 천막과 그 주변을 오는 사람들을 그렇게 경계하지도 않을 수도 있겠다. 100여 일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말이다. 여름이 지나면 또 새로운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지키지 않아도 이 강이 흐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금강이 흘러야 할 백가지, 천가지도 넘는 존재들이 결국 승리하기를 영겁의 시간을 지나온 저 하늘 초승달에 빌어본다. 마음 속에도 세종보 해체를 기원하는 돌탑을 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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