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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떠들썩한 제자 김홍걸을 만났다

[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200회- 그에게 바라는 것

등록|2024.08.12 11:06 수정|2024.08.12 11:06
 

▲ 몇 해 전 겨울 아버지(김대중 전 대통령)가 자주 가셨던 식당으로 안내한 뒤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 나(오른편)를 앉히고 식사 대접을 했던 김홍걸 의원 ⓒ 김정호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다. 이제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 말을 새겨보니 금언이라, 이즈음 가능한 이를 실천하려고 애써 노력한다. 그런데 평생 아파트 한 번 분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좀 창피한 얘기로 늘그막에 내 이름으로 된 단 한 뼘의 부동산도 없는, 지지리 못난 나로서 솔직히 열 지갑도 없다.

그래서 가능한 입을 닫고 지내면서 이즈음 내 언저리를 하나하나 정리하며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1980년 초 이태 동안 국어를 가르친 바 있었던 김홍걸 전 의원의 얘기가 요즘 늦더위보다 더 뜨겁게 SNS를 달구고 있다. 이대로 계속 지켜보기만 할까? 아니면 서로 마주 앉아 그간의 곡절을 보다 자세히 들어볼까? 무척 망설였다.
 

▲ 이희호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일 날 ⓒ 박도

 
그런 가운데 그의 어머니 이희호 여사님 생전, 마지막 만났을 때, 그분이 어찌나 내 손을 꼭 잡으셨던지 지금도 그 손아귀의 장력이 남은 듯하다. 그 의미를 되새기자 당신 내외 사후 어려울 때 당신 아들 곁을 지켜 달라는 부탁 같아서 일단 한 번 만나 그의 얘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사람이 살다가 막다른 궁지에 몰렸을 때는 누군가 곁에 있기만 해도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마침 일전에 서울에 사는 여동생이 골절상으로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가야겠다고 작정을 한 다음, 이 기회에 김 의원도 만나야겠다고 그에게 연락을 했다. 이즈음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부산하겠지만 침착한 그는 예사 때처럼 반갑게 시간을 내겠단다.

지난 주말, 서울 도봉구 한 병원에 입원 중인 여동생을 문병한 다음, 곧이어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와 나의 대화는 그새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제나 이제나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우리는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눴다. 나는 주로 듣기만 하고 간혹 몇 마디 조언을 했지만, 행여 사제 간의 대화가 잘못 변질돼 다른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하고자 이 글에서는 고주알미주알 밝히지 않겠다.

나는 한 때 그를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에게 원론적인 얘기와 자네 아버지는 사형수로 교도소 안에서도 내일을 준비하고자 공부했다는 얘기 등으로, 이 힘든 시기를 부족한 실력 쌓는 시간으로 전화위복, 슬기롭게 잘 넘기라는 덕담을 한 뒤 그의 환송을 받으면서 귀가했다.

그의 고교 시절, 내가 교실에서 본 김홍걸 학생은 대단히 과묵하고 인문 지식이 넓고 깊은, 특히 시를 잘 쓰는 모범 학생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가 통일운동가로 활약한 뒤 훌륭한 시인으로 인생 마무리하기를 기원한다.
 

▲ 어느 해 초겨울,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 자택 문패 앞에서 ⓒ 김정호

 
[관련기사] 홍걸군, 그 시절 자네는 문학청년이었지(http://bit.ly/1dMhyp)
덧붙이는 글 (여분 사진 1장 편집부 판단으로 처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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