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에게 배운 대로... "살아남을 것이다 존엄하게"
[2024, 지금 김남주] 아름다움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고자 한다.[편집자말]
▲ 경주 불국사 템플 스테이 ⓒ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얼마 전 경주 불국사 템플 스테이에 다녀왔다. 고등학생 때 불국사로 다녀왔던 수학여행에서는 석굴암이 한창 보수 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본 기억이 없었다. 석가탑과 다보탑 역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뭐 사진도 그럴싸하게 찍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보수 공사가 끝난 석굴암 내부에서 예불을 드릴 수 있는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 한 달에 한 번 열린다니, 신청하지 않고 배길 수가 있나 싶었다. 마침내 삼복염천에 경주 불국사에 도착해서,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내가 또다시 떠올리고 만 것은 어째서 서정주 시인이 신라 정신에 매료되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의 영원한 아름다움에의 추구가 그의 죄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고 여긴다. 덧붙여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따라 추구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의 행보에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더라도 그와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여하간 개인의 수행 정진을 강조하면서도 타인 그리고 이웃에 대한 연민의 마음, 보살들이 열반에 이르는 대신 중생을 구제하려 현세에 남는 마음에 깊이 감동 받았지만, 지상에서의 고통이 이 지상에서 해결될 일이 요원하다는 점에서 마음 깊이 반감이 일었다.
법사님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방법을 들으며, 상사의 부당한 요구나 위정자의 부정 등에 대해 내가 참고 보살의 마음으로 연민할 것이 아니라 투쟁하고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고 경질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한낱 중생으로서 과거 현재 미래를 통달해 도를 깨닫지 못하고, 현재를 바꾸려고 덧없는 고통을 불러들이는 그런 상태가 된 것만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고 불교의 묘리를 내가 다 이해한 것이 아니기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템플 스테이라는 대중적 프로그램에서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모든 사람에게(최악의 독재자와 살인마, 고문관에게도) 불성이 있음을 안 믿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불성이 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믿기 때문에 서로를 해치지 않도록 지금 이 세상을 애써 바꾸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한낱 미물도 서로를 해하는 것보다 상생하려 하는데 인간이라면 응당 서로를 위해야 하는 것 아니냐 버럭 외치고도 싶었던 것이다.
시의 언어로 보여준 인간의 존엄
김남주 시인이라면 내 의견에 동의해 주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김남주 시인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방법을, 그러면서도 지극히 그 자체로 아름다운 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지난한 물음, 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란 물음, 시가 삶과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가(혹은 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김남주 시인만큼 전심전력으로 답한 이가 있었는가 싶다.
김남주 시인을 제대로 꼼꼼히 읽은 것은, 부끄럽지만 작년 즈음이다. 최근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다시 훑어보며 김남주 시인을 다시 만났다. 나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소위 순문학파 위주의 작품을 주로 읽고 그런 작품들의 작품성만을 문학적 성취라고 배워왔다.
맞다. 핑계다. 얼마든지 찾아 읽을 자유가 있었음에도(나는 해금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던 시대에 나고 자랐다) 김남주 시인을 찾아보지 않았다. 삶으로 시를 갈음한 시인 정도로, 존경할 만한 시인 정도로, 다소 관념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려두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김남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내가 그려왔던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아름다움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나 그간 내가 좋아해 왔던 시와 시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설픈 나의 신념 탓이라고 / 모두가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고 / 나는 지금 쓰고 있다 / 주먹밥 위에 / 주먹밥에 떨어지는 눈물 위에 / 환기통 위에 뼁끼통 위에 / 식구통 위에 감시통 위에 / 마룻바닥에 벽에 천장에 쓰고 있다 /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쓰고 있다 / 발가락이 닳아지도록 쓰고 있다 / 혓바닥이 쓰라리도록 쓰고 있다 // 공포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는 가장 좋은 무기이다라고"(시 '진혼가' 부분)
가공할 만한 폭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잃는지 이렇게 엄격하고 신랄하게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독자로 하여금 그대로 체험하게 하면서도 그것이 자기 연민이나 자기방어에 취하지 않은 이의 단단한 언어가 내게 준 것은 충격과 감동이었으며, 그것은 곧 아름다움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으리라.
내가 그에게 진정 감동한 것은 그가 파괴되지 않은, 인간의 존엄을 시의 언어로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그 어떤 추구에도, 압력에도 부서지지 않는 인간이 있었다는 것에 더해, 그것을 그 자신만의 목소리로 발화해 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대체 불가능한 한 예를 보여준 것이라고 느껴진다.
나더러 김남주처럼 써보라고 하면 나는 절대 쓸 수 없을 것이다. 시대나 권력에 불화하기보다 잘 융화되기를 권장하는 세상이다. 김남주 시인이 살아가던 세상 역시 그랬다. 김남주 시인과 다른 시대에, 즉 나는 김남주 시인이 일궈놓은 시대, 적어도 국가 폭력이 한 개인을 향해 난사되지는 않으리라 믿기는 시대(실제로 그러한가 물으면 그 답은 다를 것이다)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더러 김남주처럼 쓰지 말라고 하면 나는 당신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냐고 화를 낼 것이다. 나는 김남주 시인의 언어를 그대로 베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남주 시인의 존엄에의 추구는 베끼고 싶다. 그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방식을 내 식으로 소화하고 싶은 것이다.
김남주 시인에게 배운 것
▲ 김남주 시인 ⓒ 김남주기념사업회
김남주 시인을 알기 전에 불국사에서 내가 본 것은 다보탑, 석가탑의 아름다움, 부처의 세상, 그러니까 지극히 아름다운 지상 이상의 지상을 이루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꿈이었다. 불국사 경내에 뜬 보름달과 스님들 독송의 어우러짐이 주는 신성함에의 경배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김남주 시인을 알고 난 후에 불국사에서 내가 본 것은 돌을 깎는 석공들의 지난한 노동이었고, 경내를 말끔히 청소하고 잔일을 도맡아 하는 보살님들(주로 중년의 여성들)의 울력이었다.
"노동이 있기에 /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 산에 들에 내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 산에 들에 쟁기질하는 총각이 있기에 / 산도 있고 들도 있고 /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시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부분)
아름다운 모든 것에,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에 노동이 있다. 김남주 시인은 이 노동하는 뭇 범인들의 존엄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김남주 시인의 근간에는 인간 존엄에의 추구가 있다. 그것만이 모든 시대를 통틀어 요청할 수 있는 시급한 사안임을 배운다.
나는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부 출신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 이후 전라남도 지역 태생 사람이라면 아마도, 비슷한 교육을 받아왔지 싶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인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은, 데모하지 마라, 함부로 이름 적지 마라, 앞에 나서지 마라 등등이었다. 종합하자면 '눈에 띄지 마라'였다. 다시 말하면, '참아라'였다. 그리고 덧붙는 말이 있다. '살아남아라'.
산다는 것이 곧 참는 것과 동의어가 되어 버려, 참는 게 인이 박혀버렸다. 하지만 살수록 점점 더 '참으면 안 됨'……을 알게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점점 더 못 참겠음, 이대로는 안 됨을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문제는 '어떻게'다. 단박에 온갖 곳에 참여하고 모든 일에 참지 않는 사람이 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꾸준히 참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살아남을 것이다. 존엄하게." 이것이 내가 시인으로서 아름다움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김남주 시인에게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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