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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도, 모래도 사라져 버렸어요"

[인터뷰] 격포항에서 수산업을 하는 김현채씨

등록|2024.08.12 11:55 수정|2024.08.12 13:32
위도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7월 31일 격포와 변산을 둘러봤다. 격포에서 오랫동안 수산업을 한 어민과 횟집을 운영하는 상인, 그리고 변산에서 관광해설 일을 하는 주민을 만나면서 바다의 변화를 인터뷰했다. 그리고 새만금 방조제 부안 쪽 입구에 들어선 국립 새만금 간척박물관을 들렀다.

격포항에서 20년째 횟집을 하는 한 주민은 "20년 전보다 자연산이 확 줄었어요. 한 80%는 준 것 같아요. 바다에 펄도 많이 쌓였다고 해요. 해삼을 손질하면 해삼 내장에 펄이 가득 차 있어요"라며 최근 바다 상황을 알려주었다.

격포항에서 수산업을 하는 김현채씨는 59년 격포 출생으로 10대조 조상부터 대대로 격포에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어업을 안 하셨지만, 자신은 1986년부터 해녀들과 함께 해삼, 전복 등을 채취하는 일과 도매업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 격포 채석강 수산 김현채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준

 
- 언제부터 어업에 종사하셨나요?

"1986년부터 해삼 전복 해녀들을 데리고 자연산을 포획하고 채취하는 그런 일, 수산업에 종사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죠."

- 어린 시절의 바다에 대한 기억은 어떠셨어요?

"격포항부터 지금 여기까지 다 바다였어요. 여기가 싹 다 모래 백사장이었고 고기를 잡아 오면 거래하던 소규모 위판 소가 있었어요. 지금처럼 다리도 없었고 다 바다니까 고랑 따라서 배가 들어오고 나가고 했죠. 그래서 고랑을 통해서 지금 저 다리 밑에 배가 운집해서 고기를 판매하고 사 가고 그랬어요. 그때는 차가 없으니까, 어머니들이 머리에 이고 손수레에 끌고 부자지간에, 형제지간에 다니면서 변산면 일대, 멀게는 부안까지 가서 팔았다고 해요.

내가 눈으로 본 것은 우리 변산면에 격포만 해안이지 넘어가면 다 내륙이니까. 그런 데 가서 곡물로 바꿔오고 팔아오고 했어요. 초등학교 때 꼭 이쪽으로 와, 왜냐하면 여기가 그래도 좀 번화가여서 고기도 있고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러다 고기 한 마리씩 누가 주면 그걸 풀에 껴서 집에 가지고 갔죠.

그때도 마을이 컸죠. 다른 지역은 산 밑에 집 하나 있고 몇 미터 떨어져서 집 하나 있고 했는데 아주 질서정연하게 온 동네가 돌담에, 돌집이었어요. 그런데 70~80년대 새마을 사업한다고 그냥 그걸 다 걷어냈어요. 내가 1983년부터 마을 이장을 했어요."

- 그러면 격포가 가장 어업으로 번성하던 때는 언제입니까?

"1995년도부터 2000년대 전후 좀 번성했어요. 정식으로 수산업협동조합이 생기고 오징어가 많이 잡혀 무역선이 들어오고 했죠. 우리 주민들은 오징어잡이를 많이 했거든요. 갑오징어 그렇게 해서 갑오징어 생산량이 많다 보니까 우리가 유통 과정을 모르고 어민들이 유통할 수가 없으니 여기서 중간 외부 상인이 들어와서 무역선을 띄워 놓고 했어요."

- 2000년대 이후부터는 어떻습니까?

"어업 기술이 발달하고 국가로부터도 지원책도 굉장히 많이 늘어났지요. 국가에 전문 어업인을 양성하기 위해서 어민 후계자라고 하는 제도를 만들어서 전문 어업인 청년 어업인들을 양성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굉장히 배도 많이 늘어나고, 인력도 증원되고. 과학화된 교육이 연간 2회 정도 실시되면서 어업 기술력이 발달하니까 어획량도 많이 나오고 소득 향상도 되었죠."

"전복은 거의 80~90%가 생태계 파괴로 없어졌어요"

- 그럼, 언제부터 안 잡혔습니까?

"5년 전부터 조금씩 감소하면서 어획량이 60%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역에 서식 기반을 두고 살았던 어류, 조개류가 다 잠식되어 버렸어요. 주종을 이루었던 어패류가 이제 다 없어져 버렸어요. 1990년부터 2000년도에는 격포가 주꾸미 전국 생산의 많게는 70~80%를 점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았는데 지금은 10%도 안 돼요. 5년 전에는 하루에 500kg씩 잡히던 주꾸미가 지금은 20~30kg 잡으니 정말 많이 줄었죠.

소라 껍데기로 주꾸미를 잡았어요. 먹이 사슬 풍부하니까 주꾸미가 소라 껍데기에 다 들어가서 알을 까고 그랬는데, 지금은 놓아도 펄이 계속 유입되니까 묻히고 다 가라앉아서 없어요. 소라가 묻혀버려 주꾸미나 또 다른 조개류 어종이 산란하고 클 수 있는 그런 기반이 안 되지요.

새만금 방조제만의 문제는 아니기는 한데, 그래도 최근에 새만금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그런 생태적 변화를 불러온 것은 분명하다고 봐요. 기후 변화도 좀 있고. 어류도 무단 포획하다 보니까 고갈 현상도 일어나는 것 같고요. 피부로 더 느끼는 것은 새만금 해수 유통이죠. 일주일 이상 안에서 있던 물질들이 바다로 내려오면 어디로 가겠어요. 그게 진짜로 어류나 생태 환경을 파괴하는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만금 방조제 안에 퇴적물이 쌓여 있는 걸 썩으면 내려보낼 것이 아니라 상시 해수 유통을 해야죠. 해수가 유입되고, 또 나갈 때 함께 나가서 남태평양으로 가든 북태평양으로 가든 민물하고 짠물하고 교차할 수 있게 해야죠. 대학리 새만금 전시관 앞에서부터 가력도까지, 아니면 가력도에서부터 신시도까지 일부 구간 10km 정도는 방조제를 헐고, 다리를 놔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시 해수가 유통되고 그 구간만이라도 다리를 통해서 거가대교, 영종대교처럼 다리 건너 신시도에 가고 군산에 갈 수 있도록 해서 바다도 살리고 육지도 살리고 해양도 살리고 내륙도 살리고 하는 것이죠."

- 전복, 해삼 채취를 하신다고 했는데 5년 동안 어떻게 변했습니까?

"전복은 거의 80~90%가 생태계 파괴로 없어졌어요. 전복은 가장 해조류가 많은 곳, 바위가 많은 곳에 살아요. 미세한 펄도 빨아 먹고, 해조류도 빨아 먹고 그래서 전복이 좋다는 거예요. 가장 영양소가 많은 해조류를 먹으니까. 그런데 환경이 파괴되니까 전복은 거의 다 없어졌어요. 해삼도 바닷가에 펄이 유입되면서 생산량이 줄었어요. 4~5년 전에 어촌계에서 40~50톤씩 생산했는데 지금 20톤 생산하는 현실이에요."

- 마을은 어떻습니까? 생산량이 줄어서...

"흉흉해졌죠."

우리는 인터뷰를 마치고 변산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휴가철이라 피서객들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완만해야 하는 해수욕장 모래사장이 가팔랐다. 관광안내소에서 일을 하는 직원에게 왜 모래사장이 가파른지 물었다.

직원은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완만했는데 해마다 침식이 돼서 가팔라진 것 같아요. 매년 모래를 채워 넣고 있는데 그래도 계속 침식되다 보니까..."라고 말했다.

2022년 부안 독립신문에는 아래와 같은 보도가 실렸다.

"덤프트럭 412대 분량 총 7천㎥ 분량의 모래를 해수욕장에 보충해 빠져나간 모래로 인해 가파른 사면을 완만하게 만들어... 변산해수욕장은 새만금 물막이 사업 이후 지속적인 모래 유실로 인해 제 모습을 잃어갔다. 이에 해수욕장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은 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에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하고, 공익 감사를 청구해 실질적인 새만금 사업으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았다. 이에 새만금사업단 측은 변산해수욕장이 더 이상 모래 유실이 일어나지 않고 제 기능을 할 때까지 지속적인 양빈 작업을 해마다 이어가기로 했고 2011년부터 지금까지 12년째 모래를 채우고 겨울철 육지로 유실되는 모래를 막기 위한 비산방지막 설치도 지속해 오고 있다. 올해 변산해수욕장 양빈 작업을 위해 4억 원의 사업비가 책정됐다."

해마다 가력 방조제 수문과 가까운 해변의 모래 침식을 막기 위해 수천수만 톤의 모래를 보충하고 있는데 그 많은 모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위도와 격포의 어민들이 앞 바다에 모래등이 생겨서 뱃길이 바뀌고 수심이 얕아지고 있다는데 이런 침식이 바깥 해역 피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 모래가 침식되고 있는 변산해수욕장 ⓒ 유기만

 
변산해수욕장을 떠나 부안 쪽 새만금 방조제 앞에 있는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을 찾았다. 방조제 바로 앞에는 예전에 포구가 있었던 모양이다. 포구 근처에 오래된 배들이 방치되어 있었고 물이 들지 않아 쓰러져 있는 배들이 있었다.

박물관은 새만금뿐 아니라 전 세계의 간척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홈페이지에는 "간척은 인간이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자연을 변화시키는 행위이다. 큰 강이나 호수 주변의 낮은 땅에서 시작하여, 점차 갯벌과 바다를 메우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새만금 간척 사업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방조제를 건설한 간척 사업으로, 인류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네덜란드, 독일 할 것 없이 간척을 많이 했던 나라에서 추진하고 있는 역간척의 역사는 없었다. 네덜란드는 2001년부터 방조제를 철거하고 갯벌을 복원하고 있으며, 독일은 1980년 후반 법으로 모든 간척을 중단했고, 일본은 1980년대부터 갯벌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는 역간척의 역사는 없었다. 또한 한국도 2021년 갯벌 등의 관리 및 복원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갯벌 복원에 나서고 있으며 지자체 마다 역간척을 추진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도 없었다.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 했다. 자연재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노력도 소중한 역사이지만 필요 이상의 개발로 발생하는 더 큰 자연재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근대적 사고와 세계 최대 지상주의가 전시되고 성찰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씁쓸히 박물관을 나섰다.
 

▲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앞에 녹슬고 있는 배 ⓒ 유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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