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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패소와 혈세 1300억, 한동훈의 침묵

[取중眞담] '삼바 분식회계' 사건, 영전을 거듭한 검사들과 세상을 떠난 한 사람

등록|2024.08.18 10:52 수정|2024.08.18 10:52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2018년 7월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참여연대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관련으로 검찰에 고발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연대


그가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일 때 얘기다. '4조 5000억 원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2018년 5월, 김경율 소장은 누구보다 진실 규명에 진심이었다. 경제부에서 취재하던 기자는 금융당국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모두 회피하는 상황에서 회계사인 김 소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와 주고받은 카톡, 통화가 족히 100여 통은 넘을 터다. 급한 마음에 불쑥 예고 없이 연락하더라도 항상 친절하고,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는 단순히 한 회사의 회계 부정으로만 볼 건이 아니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짧게 언급하자면, 설립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내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돌연 약 1조 9000억 원의 흑자를 냈다.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면서 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부풀린 결과였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조사 끝에 이렇게 최종 결론을 내렸다.

같은 해 5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의 주식은 없고, 제일모직의 지분은 23.23%나 가지고 있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유리하게 결정됐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약 46%를 가진 상태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불법적인 분식회계를 감행한 것은 결국 이재용 회장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국의 조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 무렵이었던 2018년 7월, 김경율 소장과 나눈 통화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증권선물위원회가 분식회계에 대한 최종 결론은 미룬 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시 누락만 문제 삼아 제재를 내린 다음 날이었다.

김 소장은 기자에게 "이재용 재판과의 연관성을 따지면 공시 누락이 직접적으로 더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오히려 공시누락 건이 삼성의 경영승계 과정과 더 깊은 연관이 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더 미칠 수 있어, 삼성 입장에서는 오히려 허를 찔린 격이라는 분석이었다. (관련 기사 : 삼성바이오 공시누락, 국정농단 대법 판결 앞둔 이재용에 더 치명타 https://omn.kr/ryzg)

이후 같은 해 11월에야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로 회계 기준을 위반했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고,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삼바 수사, 윤석열·한동훈·이복현이 있었다

▲ 왼쪽부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윤석열 대통령,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 오마이뉴스


검찰 고발 이후 이젠 더없이 유명해져 버린 인물들이 등장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고발 사건을 배당받은 곳은 바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였다. 수사 지휘 라인에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3차장 검사, 수사팀에는 현재 금융감독원장인 이복현 검사 등이 포진해 있었다.

검찰은 수사 끝에 이 회장을 기소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올해 2월 1심 판결이 나왔는데 재판부는 이재용 회장 등에 대해 회계 분식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뇌물 제공'이 주된 혐의였던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다 지난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의 첫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 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에서도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는 재판만으로 끝난 일이 아니다. 전 국민의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최대 6000억 원대의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정되고, 앞으로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로 수천억 원의 혈세가 빠져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ISDS 문제의 중심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있다.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승소했던 ISDS 판정에 대해 취소 소송을 강행했다. 한 대표는 당시 승소를 자신했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는 이 소송에서 패소했다. 당시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취소 소송에 회의적이었는데, 한 장관이 이를 밀어붙이면서 소송 비용과 배상원금에 대한 지연이자만 더 늘어나게 됐다.

해당 ISDS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의 반대에도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에 따라 제일모직에 유리한 비율로 합병된 사건의 연장전이다. 엘리엇은 이 같은 국민연금의 결정을 '국가 행위'로 판단해 2018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 판정을 신청했고, 지난 2023년 6월 한국 정부가 패소한 바 있다.

이에 따른 국고 손실 예상액은 13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엘리엇에 줄 배상원금은 5359만 달러(690억 원)이고, 두 회사 합병 가결 전날부터 2023년 6월 중재판정일까지의 지연이자만 300억 원 이상이다. 여기에 ISDS에 들어간 법률 비용 부담도 추가된다. 당시 일각에선 이 법률 비용만 300억 원대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었다. 법무부가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승소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부정적 전망이 더 많다. 추가로 투입될 혈세는 눈덩이처럼 커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영전을 거듭한 검사들... 그리고 남은 '1300억 청구서'

▲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2023년 7월 1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과 관련, 이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이 사건 주역들의 근황을 살펴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두 회사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회장의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을 받아 합병에 개입한 사실이 국정농단 수사에서 드러났고, 이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이 회장의 뇌물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대로 박 전 대통령과 이 회장은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또 청와대 지시로 국민연금을 압박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도 2022년 4월 유죄가 인정돼 실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은 각각 2022년 9월, 2023년 1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 사건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은 영전에 영전을 거듭했다.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한동훈 3차장 검사는 여당 대표가 됐다. 이복현 검사도 금융권 주요 사건의 초동 대처를 지휘하는 금융감독원 수장이 됐다.

김경율 회계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참여연대를 떠났고,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을 창립해 대표로 활동 중이다. 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아래 지명직 비대위원으로 임명돼 활동했다.

차마 언급하지 못한 이도 있다. 김경율 회계사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거대 기업 삼성의 분식회계 문제를 세상에 알린 또 한 명의 회계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다.

이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범죄 피의자들과 정치인 및 관료로 변신한 검사들 사이엔 6000억 원대의 국민 노후자금 손실, 1300억 원을 훌쩍 넘긴 '혈세' 청구서가 놓여있다.

그럼에도 ISDS 판정 취소 소송을 강행했던 한동훈 대표는 패소 결정이 나온 뒤 현재까지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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