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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가 이렇게 무서운 영화였다니... 새삼 놀랍다

[늦더위를 잊게 해줄 나만의 영화] '설국열차'의 무서운 세계관

등록|2024.08.17 10:49 수정|2024.08.19 00:09
대한민국의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6월부터 가장 높은 평균 기온을 기록하고 있고 장마가 끝난 후에는 보름 넘게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기상청 기준). 기온이 올라가면 더운 날씨 때문에 각종 열대성 질병의 발병 확률이 높아지고 집중 호우와 산사태 등 수해로 인한 피해도 더 많아진다. 실제로 올해 7월 전국 강수량은 383.6mm로 평년 수치(245.9~308.2mm)를 크게 웃돌았다.

사실 기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비단 대한민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는 매년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돌파하고 있고 이에 따른 이상기후와 자연 재해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1988년에 설립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PCC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여러 환경 단체와 연구 기관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내놓은 곳은 없다.

'지구온난화', '이상 고온' 같은 단어를 뉴스에서 흔하게 접하다 보니 다소 무뎌진 감이 있지만 사실 지구 온난화는 인류의 존망 여부가 걸려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방치하면 공포 영화 같은 끔찍한 상황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고 살포한 냉각제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처럼 말이다.

▲ <설국열차>는 빙하기로 멸망한 인류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생존하는 열차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 CJ ENM


머리 칸에 저항하는 꼬리 칸의 반란

지구온난화의 대책으로 79개국 정상들은 'Cold Weather'라는 이름의 냉각제 CW-7을 살포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냉각제 살포로 온도가 적정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적인 뉴스가 나온다. 하지만 CW-7의 과작용으로 지구는 빙하기가 찾아오고 살아남은 인류는 윌포드(애드 해리스 분)가 만든, 완전 자급자족 시스템으로 1년 동안 세계를 횡단하는 '설국열차'에 타 얼어붙은 지구를 달리며 생존했다.

영화에서는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CW-7을 살포하고 빙하기가 찾아오면서 인류가 멸망하는 과정과 윌포드가 만든 열차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되는 과정이 모두 생략됐다. 대신 영화는 열차 안 생활이 익숙해진 2031년의 시점에서 출발한다(열차 꼬리 칸에서의 초반 내용은 윤태호 작가가 다음 만화속 세상(현 카카오 웹툰)에 연재했던 5편짜리 단편 웹툰 <설국열차:프리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열차는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 철저히 계급이 나눠져 있다. 꼬리 칸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정체를 알면 끔찍한 '단백질 블록'을 먹으면서 삶을 유지하고 앞쪽 칸에서 채울 수 없는 인적 자원을 충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1년에 두 번 씩 싱싱한 생선회를 먹고 술과 약에 취해 흥청 거리는 머리 칸의 삶은 꼬리 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가 이끄는 꼬리 칸 사람들은 반란을 계획한다.

꼬리 칸 사람들은 감옥 칸에서 열차의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를 만나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머리 칸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커티스와 남궁민수, 그리고 남궁민수의 딸 요나(고아성 분) 뿐이었다. 커티스는 어렵게 머리 칸에서 열차의 주인(이자 인류의 주인) 윌포드를 만나고 윌포드로부터 열차의 비밀과 함께 자신에 이어 열차를 이끌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커티스는 영화 초반에 잡혀간 티미가 기계 내부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영원할 거 같았던 '엔진'의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된다. 커티스는 자신의 팔을 희생해 티미를 구해내고 마약인 줄 알았던 '크로놀'을 모아 만든 폭탄이 터지는 순간 남궁민수와 함께 요나와 티미를 감싸고 폭발에 휩쓸린다. 그렇게 어른들의 희생 덕분에 요나와 티미가 극적으로 생존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식인과 대학살이 등장하는 무서운 영화

▲ 꼬리 칸의 리더 커티스도 길리엄을 만나기 전까지는 생존을 위해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다. ⓒ CJ ENM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설국열차> 역시 특정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영화다. 세계 멸망 이후를 다룬 재난 영화의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꼬리 칸 사람들이 용감하게 싸우며 앞으로 전진하는 장면들은 여느 액션 영화 못지 않게 박진감이 넘친다. 하지만 커티스가 남궁민수와 인류의 마지막 담배를 피우며 과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섭고 으스스하다.

커티스는 열차 출발 당시 무임승차로 꼬리 칸에 올라탄 후 굶주림에 이성을 잃고 사람을 마구 죽이고 식인도 마다하지 않았던 '칼을 든 무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칼을 든 무리는 꼬리 칸에서 발견한 갓난아이를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길리엄(존 허트 분)이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 아이를 구했다. 그제서야 꼬리 칸 사람들은 이성을 찾고 살인과 식인을 멈췄고 길리엄은 꼬리 칸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당시 칼을 든 남자는 다름 아닌 커티스 자신이었고 그가 잡아먹으려 했던 갓난아기는 커티스의 친동생 같은 존재였던 에드가(제이미 벨 분)였다. 비록 그 장면들은 영화 속에서 영상으로 직접 보여주진 않지만 크리스 에반스의 진중한 연기 만으로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관객들에게 전달됐다. 이처럼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몰려 이성을 잃으면 어떤 행동을 할지 짐작하기 힘들다.

윌포드를 비롯한 머리 칸의 사람들 역시 '열차운행'이라는 목적을 위해 최소한의 인간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머리 칸에서는 엔진의 부품들이 떨어지고 엔진의 작동을 위해 인위적인 조작이 필요해지자 꼬리 칸에서 티미와 앤디를 강제로 데려간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앤드류에게 냉동시킨 오른팔을 박살 내는 형벌을 가한다. 이미 머리 칸 사람들은 꼬리 칸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구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꼬리 칸의 반란 유도와 대학살 역시 비인간적이긴 마찬가지다. 아무리 열차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힘을 가진 자들은 함께 살아보겠다는 상생의 미음보다는 '우리만 살자'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꼬리 칸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학살한다. 이 때 꼬리 칸 사람들의 대학살을 지시하는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 분)는 '살처분'이라는 무서운 표현을 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잃지 말아야 할 것들

▲ <설국열차>에서 얼어버린 지구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이었다. ⓒ CJ ENM


<설국열차>는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를 비롯해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같은 연기파 배우들과 <살인의 추억>, <괴물>의 명콤비 봉준호 감독-송강호가 뭉치며 개봉 당시부터 크게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 934만 관객을 동원한 <설국열차>는 중국과 프랑스 등에서 흥행했지만 정작 북미에서는 456만 달러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설국열차> 역시 관객들의 취향이나 영화를 감상하는 시기, 환경 등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올해처럼 유난히 긴 무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는 여름에 <설국열차>를 감상하면 영화 속 캐릭터들이 겪는 상황과 이야기들이 충분히 무섭고 으스스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설국열차>처럼 너무나 배가 고파 인간을 죽이고 잡아 먹는 극단적인 상황까진 아니더라도 인간은 힘든 상황에 몰리거나 달콤한 유혹에 빠지면 나쁜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특히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서는 인간의 의지와 참을성이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설국열차>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최소한의 양심과 인간성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무서운 '공포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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